난세 영웅(亂世英雄) 이라고 했던가!
평소에 얼굴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각자 일에 바쁘고 별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오늘같이 불미(?)스러운 날 이렇게 화합 할 수 있는걸 보니 그(난세영웅) 뜻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가 본론에서 너무 멀어진 듯한데 여기서 잠깐 이사벨을 말해야겠다.
이사벨도 역시 그곳에 동참하였고 그냥 빈손의 동참이 아니었다.
그녀의 딸아이 키어라 마리의 손에는 주렁주렁 목욕타올이 걸쳐 있었고 이사벨은 홍차가 들어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보온병과 머그컵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분명 갑자기 막노동꾼들이 된 동네 사람들을 위한 것임이리라.
보기보다도 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 보온병을 보고 있다가 이사벨의 눈과 그만 마주쳐버려 인사를 나누게 됐다.
"헬로우 신영"
"헬로우 이사벨"
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에 늘 자신이 없는 나는 더구나 주위에 몰려있는 동네 구경꾼들까지 의식하며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 이 순간이 너무 싫었다. 나를 대변해 줄 데이빗도 배(船)속에서 중요한 꼬막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렇다고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서 내 말주변을 도와달라고 손짓해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려는 속셈으로 얼굴에 미소짓기만 하고 있었다.
"신영, 추워 보이는데 괜찮아요?"
"내 괜찮아요, 달력상으로는 여름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군요"
평상시 같았으면 "괜찮아요"로 끝냈을 테지만 자립심의 발동도 발동이려니와 이사벨 같은 요조숙녀가 간단한 대답만 할 줄 아는 나를 너무 단순하게 보진 않을까 하는 우려와 그녀의 친절한 말씨에 성의 있이 대답할 필요를 느껴 원래 생각을 고쳐먹고 이곳 사람들 흉내를 내 만만한 날씨를 트집잡았다.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유식한 사람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날씨만큼 공감대를 형성 할 만한 주제도 없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에게 있어 날씨는 좋으면 좋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씹히고 또 씹혔다.
어떤때는 평생을 이곳에 살면서 정말로 고향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걸까 의심스럽기도 해 나는 가끔씩 이렇게 대답할 때도 있다. "우리에게 어떤 날씨든간에 날씨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에요. 날씨가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끔찍하겠는가를요."
내 대답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아주 짧은 침묵을 통해 그들이 내 답변에 의외로 놀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물론 그래요, 맞는 말이고 말고요, 부족함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 산다는 것 만 해도 다행한 일이긴 하죠" 라고 말은 하지만 오히려 그럴 땐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했나 싶어 미안스러운 맘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 여름은 정말 형편없어요, 좋았던 날씨를 손꼽을 정도니까요, 한국의 여름은 어떤가요? 이곳 보다 훨씬 덥겠죠?"
보온병이 무거운지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으며 이사벨이 내게 물었다.
"네, 습도가 높아서 무척 후덥지근해요. 여름은 장마철이 껴 있거든요"
나는 잠시 한국의 여름을 생각하자 온몸에 훈기가 돋는 듯 했다. 나는 유독 더위를 탔고 한국의 여름을 지내는 동안은 더워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 내가 느낀 훈기는 따뜻해서 좋았고 목욕탕 안 찬물에 담가 두었던 수박이랑 참외를 짝짝 갈라 먹던 생각까지 나자 갑자기 더워 사람 죽겠다던 한국의 여름이 그리워졌다. 쩌어억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잘 익은 수박, 그 빠알간색 단물의 응고체 안에 새까맣게 점이 박힌 미끈거리는 귀여운 씨들, 나는 까맣게 씨가 그것도 많이 박힌 수박을 좋아했다. 왠지 그런 수박이 훨씬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씨 없는 수박을 발명해 냈다던 아무개 박사야 삼척동자도 알만큼 대단한 발명임을 나로서도 시인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빨간색에 까만 점을 한 수박이 제일 보기에도 좋았고 보기 좋은 수박이 먹기에도 좋았다. 한 입 가득 배어 입에 물고 툭툭 씨를 뱉어내는 재미도 없이 뭣하러 수박을 먹는단 말인가. 그리고 반달 모양으로 잘라진 씨 없는 수박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리라고 한단 말인가.
수박 생각을 하며 마치 테니스 게임처럼 내 말이 끝났으니 이제 공은 이사벨한테 넘겨져 잠깐 동안 안심하고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름에 장마철이 꼈다고요? 이곳은 사계절 내내 장만데"
"맞아요. 계절 따라 비의 온도만 바뀔 뿐이죠. 여름이면 데워진 비, 겨울이면 찬비"
"하하" 우리 둘 다 웃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죠?" 이사벨은 화제를 바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 그래요, 그런데 [썰린 구하기] 운동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나는 시어머니 아일린을 통해 동네 소문을 포함한 이 소식 또한 잘 듣고 있었지만 적당한 말을 찾아 일부러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
"다음주에 수산부 장관과 미팅이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요구를 해야죠. 모든 절차들이 시간을 꽤나 끌어요."
여기서 잠깐 어떻게 추라모어는 오물 파이프 작업 계획에 들어갔고 왜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를 간단히 말해야겠다.
EU 가입국인 아일랜드는 EU 국가중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수준의 국가이다. 아일랜드는 그동안 EU로부터 도로공사나 국가 건물 시설 등에 필요한 도움을 금전적으로 받아왔다. 10여 년 전 내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놨을 때의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부실한 도로에서 훨씬 곧게 뻗고 새롭게 치장된 도로들은 거의가 다 EU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추라모어 건도 EU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고 금액 또한 상당한 것이어서 이 큰 공사로 인해 일거리도 많이 생길 것이며 당연히 돈이 모인 곳에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이었다. 마치 소똥 무더기에 쇠파리가 모이듯이...
"이사벨, 당신 활약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이 신영, 이사벨"
다행히도 우리 옆집에 큰 농장을 하는 엘시라는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며 대화에 끼여들어 줬다. 엘시는 말을 빠르게 많이 하는 게 특징인 여자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 여자가 내게 말을 붙일까봐 걱정이 될 정도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씩 하곤 했다. 엘시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많은 단어들이 목구멍 속에서 서로 빠져나오려고 단어들끼리 밀치고 당기고 하며 빠져나오는 즉시 혀를 타고 입 밖으로 먼저 나오기 경주라도 하는 것 같은 분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아직 영어가 서툴러 회화 책에서 배운 문장과 또박또박 발음된 미국인 성우들에 의한 영어에만 의존하고 있던 나에게 엘시는 같은 뜻을 가진 말이라도 꼭 내가 배우지 않은 말만 일부러 골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뭘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는 그녀가 그럴 리야 없었지만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귀가 마르고 닳도록 배워온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견을 물을 때 쓰는 말로 "What do you think of Ireland?" 라고 물어보면 좀 좋겠는가! 그렇지만 엘시는 "How did you find Ireland?"라고 물어 나를 당황하게 했었다. 직역하면 '어떻게 아일랜드를 찾았어요?'로 내 상식으로는 해석 됐었는데 나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었다. 분명 아일랜드를 어떻게 찾아왔느냐는 말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비행기 타고 왔더니 더블린에서 내려줘서 찾아 왔어요. 지도 보고 걸어서 물어물어 왔더라면 오다 늙을뻔 했어요' 라고 대답해선 안될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질문은 하지도 않을께 뻔했으므로 처음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한 사람에게 아일랜드를 넣어 물은 질문임을 명심하고 대충 때려잡아 "...Good...." 이라고 구렁이 담 넘듯 슬쩍 넘긴 적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메리(시누)와 문법으로 봐서는 말이 안되는 영어의 문장들이나 문법으로는 맞지만 뜻이 전혀 다른 것들을 놓고 괜한 메리를 그녀가 마치 영어를 만들어 내기라도 한 사람처럼 타박하기도 한다.
처음에 왔을 때야 몰라서 그랬다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실수를 하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역시 엘시가 물어왔던 그 문장이었다. 진공 청소기를 팔러온 세일즈 우먼이 우리 집에 왔었다. 열심히 자기네 청소기를 선전하느라 우리 집 카페트를 이곳 저곳 다 청소까지 해 주고는 내가 쓰는 구식 진공 청소기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고성능 신식 청소기 앞에서 얼마큼 내 것이 초라한가를 비교하려는 속셈인걸 모를 리 없었지만 나는 별수 없이 시어머니가 오랫동안 쓰다가 낡고 고장난 것을 데이빗이 고쳐서 쓰는 골동품을 가져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신식 옆에 놔두었다.
그러자 내 골동품을 보고 더 당당해진 그 여자는 내게 물었다. "How did you find yours?"
질문은 당연히 '써보니 어떻튼가요?' 하고 묻는 말이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 여자의 당당함에 기죽지 말고 '보기는 좀 흉하지만 그래도 성능은 좋아요'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역시 '어떻게 찾았어요?' 라고 직역을 해 놓고 '우리 시어머니가 줬어요' 라고 대답해 버렸다. 사실 난 그렇게 대답 해 놓고도 몰랐었는데 데이빗이 옆에 있다가 '쓸만해요'라고 대답할 때서야 내가 실수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창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사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웃기는 에피소드는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왕 말난 김에 한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임신한 몸으로 병원에 등록하러 간 날 이었다. 간호원이 내게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의료보험 V.H.I.(Volunteer Health Insurlance)를 말한다는 게 잘 못 말해 H.I.V.라고 말해버렸다. 다행히 그 간호원은 웃지 않았지만 나중에서야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H.I.V.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 에이즈를 말하는 거라고.
나는 그 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키득거리고 웃었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엘시의 등장으로 나는 슬그머니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미끄러져 나올 수 있었다.
그 날 하루는 동네 사람 모두가 피곤한 날이었다. 그래도 각자가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 PUB에 갈 기력들은 얼마든지 남아 있으리란 생각은 틀림없을 것이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해야 할 이야기들이 날씨를 빼고라도 얼마든지 많을 것이며 몇몇 사람은 혹시 낮에 불참했던 사람이라도 만났더라면 거의 2차대전 못지 않은 전쟁이라도 치른 것처럼 실감나고 과장되게 떠벌릴 것이다.
이곳 사람들도 말(言語)에 상당한 과장을 섞어 말하는 습관이 있다.
[썰린 구하기] 운동의 결과는 근 1년이란 세월을 보내고서야 결정이 내려졌다.
수산부 장관이 바뀌었고 바로 그 장관이 환경부 장관으로 교체되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오물 파이프 계획은 우리 동네의 용감한 주민들의 반대로 다른 방법을 모색하도록 결론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사벨의 학교 후원 바자회가 있어서 참석하여 다시 한번 짧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가 이사벨을 처음 만났을 때 배속에 있던 주미가 이제 4살이 되었다. 올 가을에는 입학을 시켜야하는 의무감을 갖고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할지 결정짓지 못하고 있을 무렵 학교 선생으로 있는 이사벨이 문득 생각났다. 이사벨은 우리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DUNMORE 학교에서 교무하고 있어서 내 아이 학교 문제를 의논하기에 안성맞춤인 사람이었다.
평상시 코빼기도 안보이다가 필요한 일 있으면 전화하는 얌체는 꼭 옆집 아줌마 흉이 아니었다. 나는 이사벨에게 안부 전화를 했고 이사벨은 친절하게도 키어라 마리가 주미랑 놀아줄 자리를 만들겠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하였다. 하지만 어찌 어찌하여 갈 만한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지난 가을, 대신 3년 만에 이번에는 애들 둘이나 데리고 한국을 다녀오게 됐다.
2개월을 목적하고 떠난 휴가였지만 갈 때 맘 다르고 올 때 맘 다르다고 가서 있다보니 더 있고 싶어 나는 내 딸 주미를 팔아 가며 데이빗에게 한달 만 더 있게 해 달라고 코맹맹이 소리까지 내며 졸라댔다.
'데이빗, 당신이 나 보고싶어 하는 만큼 나도 당신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주미는 내년 가을부터 학교에 입학 할 테고 그러면 다음부터는 이렇게 오래 있고 싶어도 못있게 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미가 라나랑 너무 재미있게 놀고 더 있고 싶다고 그러는 거예요. 죠슈아도 잘 놀구요. 집에 가면 주미는 친구도 없고 심심할 테니 이왕 기회 있을 때 실컷 놀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엄마나 언니 이곳 식구들이 너무 서운해하는 것도 큰 이유이기도 하구요.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조카고 손자들인데 한 달만 더 있으라는 걸 뿌리치고 가기가 너무 매정하기도 해요.
하지만 당신이 정 오라시면 당장이라도 갈께요. 사랑해요'
데이빗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고 아쉽기만한 나머지 한 달도 야금야금 다 지내버려 귀향 길에 올랐다. 귀국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들 영어가 문제가 돼버린 일도 있었다. 죠슈아야 아직 어리니 어차피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티가 안난다 치더라도 주미는 한국을 가기 전만 해도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영어를 깡그리 잊어버려서 조금은 데이빗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알아듣는데 문제는 없었다.
근 2주가 넘자 한 두개 단어를 시작하더니 다시 영어가 입에 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한테는 꼭 한국말로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는 그것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입장에서 아이를 키워본 선배들이 귀가 따갑도록 내게 일러주며 한국말 가르치려고 기쓰고 애한테까지 스트레스 줘봤자 나중에 깡그리 잊어버릴 테니 실망하지 말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었다.
주미는 가끔씩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거나 급할 때 튀어나오는 말로 나를 웃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Don't 때려 me" 또는 "smell 이 nice야" 라는 식.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주미를 어느 학교에 보내야 할지 아직까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나는 다시 이사벨을 생각해 냈다. 내가 내일은 이사벨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말하자 데이빗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사벨은 집에 없어. 집 나가서 닐하고 함께 산지가 꽤 됐는데 그것도 아직까지 몰랐어?"
"어이? 정말? 그건 그렇고 내가 어떻게 알겠어. 한국 갔다 이제 집에 왔는데. 3개월 동안 동네를 비웠더니 그런 일이 있었구먼"
나는 너무 궁금했다. 이사벨이 바람났다는 말인가 그렇게 얌전하고 박식한 여자는 바람나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나도 물론 닐이라는 남자를 잘 알았다. 던모어(Dunmore) 생선 경매장(fishermen's co-operation)에서 일하는 남자인데 가끔씩 경매를 직접 할 때도 있는 키가 크고 잘생긴 친절한 남자였다. 나도 어쩌다 신선한 생선을 사기 위해 경매장에 갈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내 대신 닐이 생선을 사 주었고 몇 마디 얘기도 주고받기도 했었다.
처음 경매장에 갔을 때는 경매하는 사람이 얼마나 말을 빨리 하던지 넋을 놓고 보다가 곤혹을 치른 일도 있었다. 내가 멍 하니 쳐다보자 경매자가 나를 보고 "거기 숙녀! 경매 한 것입니까?" 라고 물어서 얼른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경매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었다. 잘못했다간 수십 개의 박스에 든 생선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 뻔했었다. 경매장에서는 코도 못 푼다더니 그 말을 체험한 날이었다.
생선 도매상인들 틈에서 나는 번번이 닐에게 내 대신 경매를 해줄 것을 부탁했고 닐은 가장 적게 들은 박스 안에 골고루 든 생선들을 싼 가격에 사 주곤 했었다.
어떤 때 내가 생선 담을 그릇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그가 들고 온 서류 봉투의 서류를 다 꺼내놓고 그 봉투에 넣어 주기도 했다.
얼굴만 알고 이름을 알지 못했을 때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닐 위틀(Neill Whittle)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리쉬 이름인데 닐은 왕이라는 뜻이고 위틀은 희다라는 뜻이라고 가르쳐 줬었다. "그럼 당신은 흰 사람 중의 왕이군요" 라고 내가 대답해서 우리 둘 다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닐하고 이사벨이 사랑에 빠졌다니. 그래서 남편을 혼자 두고 집을 나갔다니.
그렇게 하기까지는 오랜 고민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나는 혼자서 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얼마가 지나고 나는 이사벨에게 학교로 전화를 했다. 이사벨은 여전히 선생님다운 차분한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었다. 전화 상으로 했던 약속대로 이사벨은 우리집에 왔고 나는 아이리쉬들이 의례 하듯 홍차를 권하자 카페인이 몸에 받지 않는다고 그냥 더운물을 달라고 했다. 가뭄에 콩나듯 홍차를 마시지 않는 아이리쉬는 봤지만 홍차 대신 찻잔에 더운물을 마시는 사람은 난 처음 봤다. 우리는 꽤나 친했던 사람들이 오래간만에 만난 것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들 부부가 별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있는 척 하지 않았지만 이사벨이 먼저 내게 물었다.
"신영! 내가 여기 안 산다는 것 알지요?"
이사벨은 우리 집에서 몇 분 안 걸리는 바로 썰린 앞에서 살았었다.
"아 아 드을은 것... 같아요"
나는 괜히 죄지은 것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겨우 대답했다.
이사벨은 남편과의 관계와 딸 키어라 마리를 위해서라도 집을 나와야 했었다고 말했다. 프랑크는 때에 따라 이사벨에게 폭력도 행사할 때가 있었나 보다. 나는 그게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십인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니. 아주 오랜 세월을 얌전한 이사벨은 프랑크의 학대를 조용히 참아오기만 하다가 어느 날 딸이 얼마나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안 후 서로를 위해 이사벨은 집을 나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동안 20년이 넘게 집을 가꾸고 가구를 장만하고 살아왔던 이사벨은 웩스포드의 허름한 집을 사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한다. 타일 바닥이 떨어져나가고 지붕에서는 비가 새는 새집 아니 헌집에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 '내가 좋은 내 집 놔두고 이곳에서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만 하나' 하고 혼자 독백하며 울었다고도 한다. (웩스포드는 워터포드 파세지 이스트라는 곳에서 페리(ferry)를 타고 가면 질러 갈 수
있는데 이사벨은 출퇴근길을 매일 이 페리를 이용했다)
그리고 이사벨은 닐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닐은 가장 좋은 친구라고 했다.
닐 역시 이사벨과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둘인가 되는데 부인이 행실이 안좋은 사람인지 어떤지는 말할 수 없고 다만 부인이 닐을 곧잘 손찌검까지 하며 구박했다고 한다. 나는 닐의 생선 경매장에서 노란 비닐 작업복을 입고 착해 보이던 얼굴과 선한 웃음으로 껄껄대고 웃던 모습이 생각났다.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행복해 보였는데 그런 슬픈 일을 당하고 사는 사람 이였다니. 그렇게 순한 사람이면 부인이 무슨 짓을 해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그런 사람이긴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혹시 한국 남자의 입에서 나올 범직한 [빙신같은 남자, 남자 망신 다시키는구먼, 그런 여자 하나 휘어잡지 못하고 얻어터지며 살다니] 라는 말을 제발 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예의 있고 착한 사람한테 할 말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여자보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잡아채거나 하지 않는 진정한 신사이고 마음 약한 사람일뿐이다.
글(영어)을 제대로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닐은 이사벨에게 공부하러 왔고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정을 알게됐다고 한다. 그런 닐에게 이사벨은 열심히 가르쳐줬고 그 결과로 닐은(검정고시 비슷한) 시험에 합격했다. 이사벨은 그런 닐을 자랑스러워했고 진심으로 축하해줬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사벨은 또 닐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고 낙인이 찍힘으로 인해 늘 자신감이 없고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했는데, 닐처럼 빨리 배우고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배운 실력으로 시나 에세이를 씀에 있어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써냈다고 하며 옛날 그 선생이 누군지는 몰라도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사람의 인격과 자신감을 심고 키워줌은 당연하거니와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힘부터 가르쳐야 하거늘 어떤 사람인지 닐의 옛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같이 흥분하며 맞장구 쳤다. 그러면서 이왕 흥분한 김에 넌지시 한마디 엉뚱한 자신감을 갖고 말하기를 닐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서 다행이라고 말
하자 이사벨은 펄쩍 뛰며 놀라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당치않게. 나는 내 딸하고 살고 닐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는 좋은 친구일 뿐이에요."라고. 닐도 부인을 떠나긴 했다고 한다.
나도 깜짝 놀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나는 조금 실망까지 했다.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여서 함께 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사벨이 프랑크와 헤어졌다는 것을 알자 사람들은 이사벨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줬다. 어떤 사람은 학부형인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사벨, 잘 결정했어요. 프랑크를 나는 전부터 싫어했었는데 정말 잘 나왔어요."
이사벨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세요? 당신은 프랑크를 싫어할 진 몰라도 나는 좋아해요. 그는 좋은 사람이예요."라고. 그건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이사벨이 자기 집으로 프랑크를 초대했다고 한다. 둘은 이제 사이가 많이 좋아져서 좋은 친구 사이가 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사벨이 다시 옛집으로 돌아가거나 부부로 합쳐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이사벨을 문까지 배웅하며 나를 믿고 자신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말해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다고 말했고 이사벨은 나를 살짝 안고 우리는 볼에 키스했다.
참! 물론 주미는 이사벨이 가르치는 던모어 학교에 입학시키기로 했다.
이사벨이 두 번째로 우리 집에 왔다. 부활절 주간이었는데 쵸콜렛으로 된 부활절 계란(Easter Egg)을 사들고 방문했다. 주미는 우리 집에 손님만 오면 좋아서 날뛰는데 가족 사진을 펼쳐놓고 이사벨에게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벽난로 위에 세워진 결혼 사진을 가리키며 주미는 신이 나서 말했다.
"저 사진은 엄마 아빠 결혼할 때 찍은 건데 나는 저 사진 속에 없어요. 대신 엄마 뱃속에 있었는데 나오고 싶었지만 나올 수가 없이 쳐 박혀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이렇게 나왔지만요." 결혼하고 5년 만에 주미를 임신하길 망정이지 잘못했다간 임신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걸로 오해받을 뻔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죠슈아의 벗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사벨, 이건 꼬치(꼬치는 한국말로)인데 아빠도 이렇게 생긴 게 똑같이 있어요." "그럼, 아빠도 있어야 하고 말고" 라고 이사벨은 대답했고 나는 얼굴이 빨개질 때로 빨개져 웃다가 더 이상한 얘기가 나오기 전에 주미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사벨은 내가 한국말로 주미에게 말하고 주미가 대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신기해했다. 입학하면 한국말을 애들에게 가르치라고 주미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나는 이탈리안 파스타와 스파니쉬 함과 올리브를 얹은 살라드로 점심을 준비했고 후식으로는 한국 쵸코파이를 더운물과 함께 내 놓았다. 이사벨은 쵸코파이 봉투를 이리저리 살피며 한글로 씌여있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맛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카톨릭에 대해서 얘기했고 북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이사벨과 있으면 다방면으로 많은 얘깃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시간이 금방 가곤 했다. 또 이사벨은 직업의식의 발동인지 나의 영어 공부를 들고 또 시작이었다.
"신영, 조금만 더 공부해서 시험을 보도록 해요. 어휘 실력이나 발음 다 잘 하고 있으니 좀더 해서 합격증이라도 따 놓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것인지 많이 보일 거예요. 닐을 보세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시험이라면 지겨운 사람이다. 난 시험이라는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 제도를 무척이나 싫어하는데 하긴 원래 공부 못하는 사람이 이유는 많은 법이라고 누가 따진다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나는 그 시험 소리에 전전긍긍하며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이사벨은 대답을 기다린 게 아니었다는 듯 나에게 3주간의 여유를 주겠다며 주제를 자유로 한 엣세이를 써서 자기한테 보이라고 했다. 내 엣세이를 보고 평가한 후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도와 주겠다는 제의는 호의 중에서도 대단한 호의였지만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일단은 숙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맙다고 했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그렇게 해 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이사벨은 3주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귀한 쵸코파이 두 개를 꺼내 이사벨에게 주었고 이사벨도 고마워했다.
한국에서라면 내년이면 교장이 된다는 이사벨에게 두툼한 봉투라도 쥐어 줘 보내야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사벨이 딸 키어라 마리와 함께 앉아 홍차 대신 더운물과 함께 쵸코파이를 먹으며 한글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내 얘기를 할 모녀의 다정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만약에 내가 두툼한 봉투라도 전했더라면 나는 그 귀한 친구를 물론 잃었을 테고 봉투 속의 것은 썰린에 뿌려질 뻔했던 오물보다도 더 더러운 것이 됐을 것이다.
두말 말고 선생에게 봉투 내미는 일이야 없는 나라이긴 하지만.
우리는 살짝 포옹했고 볼에 키스를 함으로써 안녕 인사를 했다. 그리고 현관문 밖에 서서 주미, 죠슈아, 나는 이사벨의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지금은 내 친구가 된 이사벨을 알게 된 걸 나는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번 여름에는 닐과 함께 초대하고 불고기랑 김치를 선 보여야겠다.
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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