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7  등록일 : 2000-10-13 오후 2:03:54

내친구 이사벨 1
글 : 허신영 ()

My Life, My Happiness

아일랜드 - 삶의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랑하는 '내 친구 이사벨' 1

모래사장에 누워 뒹구는 '소시지들'

내가 이사벨을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 어느 여름날 썰린의 해변가에서였다. 이웃에 사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 전에도 살짝 살짝 안면은 있었으나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라도 주고받았던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나는 임신 7개월의 제법 부른 배를 하얀 비치가운으로 살짝 덮고 발에는 여름 샌들, 왼쪽 어깨에는 왕골 비치백을 멘 채 데이빗의 도움을 받으며 경사지고 좁은 지름길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지름길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것도 아닌데 왠지 그 길을 이용하지 않고는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 으레 이 길로 다니곤 했지만 너도나도 다 이 길을 이용하는 바에야 남들보다 빨리 왔다는 옹골진 생각까지 가지기에는 어차피 무리였다.

7월쯤으로 기억되는 그날은 햇볕이 따사롭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연푸른 날이었다. 햇볕이 귀한 이곳 아일랜드에서는 보기 드문 날씨였다. 이런 날은 사람들이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쇳가루처럼 여기저기서 바다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샌드위치, 음료수, 소설책 그리고 비치타월 등을 챙겨들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을 모색한 다음 모래사장에 누워 마치 그릴에서 굽혀지는 소시지처럼 몸을 굴리며 해를 숭배하고 즐겼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살갗이 더워지면 아틀란틱의 차갑고 깨끗한 바닷물에 몸을 식히고 그러다 오히려 추워진 몸을 포근한 햇볕을 이불 삼아 다시 모래밭에 눕히고는 또 소시지가 되어 뒹굴었다.

나도 그날은 그들 중의 하나였다. 불툭 튀어나온 배를 위로 향한 채 볼품없이 누워있을 둥글둥글한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남편 데이빗이 나를 놀릴 말을 미리 떠올려봤다. '바다 하마', 데이빗은 나와 함께 침대에 누우면 텐트 속에 있는 것 같다느니 혹은 내 배가 만져지면 '아, 신영이 이 근처에서 자고 있구나'라고 알 수 있다느니 곧잘 놀리곤 했지만 나는 가볍게 웃어 넘겨 버리곤 했다. 결코 듣기 좋은 농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듣기 싫은 것만도 아니었던 데다 그의 눈에 담겨 있는 행복함이 내게도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협소한 지름길을 빠져나와 키가 큰 해변 잔디 사이를 걸어 나오고 있을 때 이사벨은 딸아이와 함께 자리에서 막 일어나 돗자리와 소풍 바구니를 챙겨 들고 우리가 방금 헤쳐나온 지름길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만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발이 멈췄고 으레 그렇듯 날씨를 주제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이, 데이빗."
"헬로우, 이사벨."
데이빗은 거기까지 말하고 "아직 신영이와 정식으로 인사 나누지 않았지요? 이사벨"하면서 인사를 시켜준다.

여름 낙엽들과 물고기가 제멋대로 그려진 파란색 반바지와 주황색 얼룩무늬 티셔츠를 입은 데이빗은 이불 호청처럼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마치 등산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흰 양말과 운동화를 단단히 챙겨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쩌면 겸연쩍게도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사벨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날씨와 세금만 빼면 살기 좋은 나라

데이빗은 태양을 반가이 맞이하고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태양은 데이빗을 그리 반가워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태양 앞에서는 몸조심을 해야 했다. 일년 내내 양말과 신발 속에 감추어져 있어 하얗다 못해 백짓장을 연상시킬 정도인 발을 햇볕에 섣불리 내놓았다가는 벌겋게 데어 잘 익은 토마토 색깔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심해지면 토마토로 끝나지 않고 물집과 따가움으로 고생까지 해야 하는데, 그것은 함부로 햇볕에 발을 보인 데 대한 형벌이었다.

"아니, 아직... 길에서 잠깐씩 얼굴은 봤었어요.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요, 신영. 우선 축하부터 해야겠군요. 예정일이 언제인가요?"

내 배를 살짝 훔쳐보며 말을 잇는 이사벨은 얌전하고 여자다운 목소리로 단어 하나 하나를 분명하게 발음하였다. 어쩌면 외모하고 꼭 닮은 그런 말씨였다. 나보다도 더 작은 키에 마른 체구였고 곱슬곱슬한 머리는 아마도 선천적인 것 같았다. 약간 붉은빛이 도는 머리색깔과 연약하고 주름진 하얀 피부는 영락없는 '아이리시'였다. 아무튼 다부져 보이는 여자였다.

"10월9일이에요."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무슨 얘기든 좀더 길게 많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난 언제나 그런 것처럼 처음 만난 사람에겐 말을 많이 이어갈 수가 없었다. 단지 말하기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기 때문이었다. 친절하고 말을 많이 하는 아이리시에 비하면 그건 내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너무 간단히 끝나버린 것 같은 내 말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대신 생글생글 웃음이라도 지어야 했다.

"임신 7개월인데도 몸매가 아주 단정하니 임신한 사람 같지가 않네요. 보통 그런 경우를 딸이라고 하던데 알고 있나요?"
"몰라요."

나는 또 간단하게 대답해 버렸다.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어요. 그저 건강한 아이인가가 중요하죠."

나의 간단한 대답을 보충하기 위함인지 어쩐지 얼른 데이빗이 내 말 뒤를어어 말하며 온통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이죠. 딸이냐 아들이냐는 맨 나중에 걱정해도 될 문제지요. 나도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일이 엊그제 같은데 키어라 마리가 벌써 10살이에요, 금방이죠."

이사벨은 옆에 서 있는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키어라 마리는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에 이사벨처럼 파란 눈을 하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숙여 맨발로 모래밭에 뭔가 쓰는 시늉을 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그냥 집안에만 있기가 너무 아까워서 나왔어요. 이런 날씨가 자주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비싼 돈 주고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되구요."
"맞아요. 아일랜드도 날씨만 좋았더라면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일 텐데... 아, 참. 그리고 세금하구요."

데이빗은 이사벨의 말에 맞장구치며 말했다.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난 이제 가봐야겠어요. 내일 학교에 가져갈 애들 학습도구를 준비해야 돼요. 숙제는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라니깐요. 데이빗, 이웃에 살면서 제대로 얼굴도 못 보고 사는 게 안타까워요. 그리고 신영, 만나서 반갑구요. 우리 집에 언제라도 놀러와요. 즐겁게 놀다 가구요."

이사벨은 단숨에 말을 한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럼 잘가요. 이사벨, 키어라 마리."
"잘가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도 힘을 주어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이사벨은 숙녀답고 분명한 인상이었다. 간단명료한 세 마디로 이사벨을 만난 후 더 이상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인사치레로 했음직한 놀러오라는 말을 듣고 덥석 찾아가기도 뭐한 일이었고 찾아간들 또 특별히 나눌 만한 얘기도 없었다.



마을 앞바다 구하기에 나선 썰린 사람들

그해 여름쯤 해서 '썰린 구하기' 운동이 벌어졌다. 썰린(Saleen)은 우리 집 부엌 창문을 통해 내다보이는 밀물이 들어오고 빠지는 바닷가 이름이다. 그 앞으로 추라모어(Tramore) 동네가 내다보이는데 그 추라모어 마을 앞바다에 오물 파이프를 연결시켜 추라모어의 배설오물을 바다에 토해낼 수 있도록 큰 작업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큰 비상이 걸린 셈이다.

추라모어 앞바다와 맞은편 썰린은 같은 물이었고 특히 썰린의 개펄에는 많은 어패류와 바다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 데다가 철마다 찾아드는 철새들은 제 외하고라도 그곳을 주거지로 삼고 사는 새들만 해도 어지간한 숫자였다.

나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의 오염이나 새들의 집 걱정까지 해줄 정도의 환경보호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당장 쫄깃하고 맛있는데다 캐는 재미까지 더한 그 꼬막이 인간들의 배설물에 오염돼 먹을 수도 캘 수도 없게 될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꽤나 심각한 문제로 와 닿아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오물 파이프는,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썰린 갯벌에, 물이 밀려올 때마다 더러운 오물을 실어 나를 것이고 그곳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오염될 것이 뻔한 일이었으므로 문제의 심각성은 상당했다.

몇 명 사람들을 주축으로 동네 사람들은 그날부터 '썰린 구하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밤마다 모임을 가졌고, '썰린 구하기'라고 쓴 스티커를 만들어 승용차 뒷유리에 붙이고 다녔고, 서명운동을 벌였고, 지방 신문과 라디오 방송에 뉴스거리를 제공했고, 모금운동을 벌였고, 특수 엔지니어를 초빙하였고, 유망한 지방의원을 불러 자신들이 유권자들임을 상기시키며 문제 해결을 요구하였다.

바로 이 운동에 이사벨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주축이 되었다.

격한 감정의 표현으로 우선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들을 달래며 그녀는 회의 때마다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차분한 말로 모두 대답해해 낼 수 있는 박학다식한 여자였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했거니와 흥분하는 법 없이 조용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음성으로 회의를 진행하였다. 작은 체구에 비해 커다란 힘을 가진 여자였다. 지방 방송 뉴스 때마다 나와 운동의 진척과정을 전해줘서 그야말로 작은 명성을 날릴 정도였다.



트럭 동원한 '꼬막 도둑들'과의 일전

운동의 열성에 비해 속시원한 해결책이 당장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신경만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8톤 트럭 두 대가 썰린에 차를 세우고 트랙터에 갈고리를 달아 꼬막을 쓸어 잡아 싣고 있으니 빨리 가서 이 무법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너도나도 서둘러 썰린을 향했다. 나도 불룩한 배를 최대한 감싼 다음 그 행렬에 동참했다.

어쩌면 내가 나섰던 것은 꼬막 도둑을 막아보자는 근본 목적에 동참했다거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머릿수 채우기 보다, 나도 이 고장 소속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싸움 구경만큼이나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였는지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어떤 사람은 몽둥이를 들고 있기도 했다. 잠시 후 경찰차가 도착했지만 두 명의 경관은 참관 정도만 하고 있었다. 우리측에선 썰린의 꼬막은 이곳 사람들의 것이며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썰린의 꼬막은 소유자격증으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므로 캐가도 무방하다고 반격하고 나섰다.

처녀가 애기를 배도 할 말은 있다던가! 그렇지만 그들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래서 경관들도 참관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썰린 구하기' 운동에 신통한 결론이 내려지고 있지 않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람들에게 소유권이니 보호권이니를 들먹이며 논리를 따진다는 것은 먹혀 들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벼르고 있던 참인데 '웬 놈이 용케도 잘 걸렸다'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목소리 크고 기운 센 놈이 이긴다는 원칙은 이곳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인 때가 있나보다. 당연히 사람 수로 보나 기세로 보나 우리 쪽이 월등했고 그걸 눈치 못 챘을 리 없는 트럭 운전사와 일꾼들은 일단은 논리를 접어두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빛이 역력했다.

웩스포드(Wexford) 번호판이 붙은 이 트럭은 임대한 차였고 소행의 주범은 영국에서 건너온 상습적인 꼬막도둑에 의한 것이었다.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무법자들의 행동은 더 이상 그들에게 유익한 판결이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패배감을 대변해 줬다. 시비(是非)가 정확히 판결나진 않았지만 비굴하게 감춰진 꼬리로 보나 뭘로 보나 이미 다음 행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났다.

동네 장정들은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너나 할 것 없이 옷을 벗고 꼬막 가마니를 트럭에서 꺼내 바다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싹쓸이에 착수했는지 트럭 안은 꼬막 가마니들로 제법 꽉 차 있었고 '꼬막 구조활동'은 그래서 그렇게 금방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특히 여름이면 꼬막 캐는 재미를 톡톡히 보는 나이지만 썰린에 이렇게 많은 꼬막들이 서식하는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내가 꼬막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으며 종종은 장난삼아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한국 사람 열 사람만 이곳에 산다면 썰린의 꼬막은 며칠만에 멸종하고 말 거예요. 신영이가 이곳에 산책 나와 걷는 소리만 듣고도 꼬막들은 미리 겁을 먹고 숨죠!"라고. 사실 오물 파이프 사건이 터지며 꼬막들의 오염 문제에 따른 식용불가라는 예상을 하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데이빗은 언제 집까지 다녀왔는지 보트를 바다에 띄우고 꼬막들을 실어 날라 이미 물이 찬 조수지에서 최대한 안쪽으로 풀어놓는 일에 열심이었다. 여름이 빨리 지는 아일랜드의 8월 오후는 꽤나 쌀쌀하기 그지없었지만, 더구나 차가운 물 속에서도 모두들 불평은커녕 자기 일처럼 성실했고 아이리시 특유의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즐겨하는 빛도 없지 않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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