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내 사랑"
오늘로서, 이제까지 나는 죽은 사람을 두 번째로 보았다.
예상치 않은 만남이어서 내심 놀라기도 했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한다고만 생각하였을 뿐 죽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 같다.
코오크 (Cork) 지방의 카릭툴 (Carrigtholl) 이라는 작은 시골동네는 데이빗 선친의 고향이어서 그 동네는 내 남편 성씨 Sheehan 성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선친 Pat 은 3남5녀 중 3번째였다 하니, 데이빗에게는 어지간히 많은 사촌들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내 시아버지이신 Pat이 살아계셨더라면 올해 80살이라고 한다.
나는 Pat을 사진으로만 소개받았고, 아직 생존해 계신 그의 형제 일곱명 중 내가 알고있는 세명은 이미 작고하였고 네명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Pat 의 동생이었던 Dan은 가장 낯익은 얼굴이고 가깝게 느껴지는 가족이다.
내가 14년 전 아일랜드에 처음 왔을 때 데이빗은 나를 데리고 이 엉클단의 집을 방문하였었다. 지금도 나는 그 소박한 분들의 넉넉한 환영을 잊을 수가 없다.
데이빗의 숙모(auntie) "노라", 그러니까 단의 부인인 그녀는 요조숙녀요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데이빗은 그녀를 "안티노라" 라고 불렀고 나도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그들 노부부에게는 장성한 다섯명의 아들들이 있었고, 엉클단은 큰 목축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안티노라는 조용한 여자였지만 또한 늘 분주한 여자였다.
여섯 남자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짬이 날때면 자선단체에 가입해서 퀼트를 만들거나 수공예품을 만드는 등 손놀림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 여자였다. 그뿐 아니라 친척들, 아들 친구들 등등 쉴새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한결같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는 분이었다.
마치 아들이 먼 객지에서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대했다.
나도 그 집을 방문했을 때는 객지에서 돌아온 아들이었다.
글쎄. 말해놓고보니 나는 왜 그 여자를 아름답다고 말할까!
아름다운 여자는 조용하고 얌전하며,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찾아온 손님들을 잘 대접하는 것! 이라고 설마 나도 그렇게 규정짓고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은 여자는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인가!
갑자기 정신이 버쩍 든다.
다시 말하자.
그 여자는 그 여자만의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는 여자였기에 나는 그 여자를 아름답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서둘러 둘러대자.
도로를 중앙에 두고 세워진 작은 동네 카릭툴 마을은 10여년이 넘어도 변한 구석이 없다.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도 변할 것 같지 않은 마을이다.
엉클단이 사는 집은 이 변함없는 마을에서 샛길로 접어들어 한참동안이나 굽이진 시골길을 지나야 한다.
차 한대가 지나가기에는 그다지 불평할 만큼 좁은길은 아니었지만, 그 길이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때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길이다.
찔레나무, 하얀가시나무, 층층나무, 덤불초 등으로 설키고 엉킨 울타리 담장이 높게 양쪽으로 솟아있고, 그 가운데로 하얗게 트여있는 길은 마치 가르마를 구비지게 타 놓은 것 같다.
여니 담장과는 달리 양쪽으로 높이 솟은 이 울타리 담장은 쉽게 길을 넓힐 수 없는 이유인 것 같다.
나는 매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생각나게 하는 그 길을 접할 때마다 내가 처음 그 길을 만났던 것처럼 지금도 똑같은 질문을 혼자서 되풀이한다.
[만약 반대쪽에서 차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디 물러설 곳도 없는데, 다시 마을쪽으로 후진을 해야하나, 아니면 상대편 차가 후진을 할까! 이곳에선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싸움질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서로 비키라고 몰상식하게 싸우지는 않겠지! 하긴 모두 다 훤히 잘 아는 이웃들일텐데... 차 사고가 난적은 없었을까. 저 담장을 허물고 길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등등]
걱정하다못해 신기해하기까지 하는 나의 궁금증에 데이빗은 한술 더 뜬다.
"이런길을 사촌들은 시속 50 마일로 달리는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면 작은 농가가 나온다.
농가는 그 집과 어울리는 작은 정원이 있고 정원에는 마냥 소박하기만 한 내가 모르는 꽃들과 화초들이 들쑥날쑥 자라있다.
대문이랄 것도 없는 이 집 마당을 들어서면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아있으며 그 문을 똑똑 두드리면 안티노라가 굽은 어깨를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눈가의 주름을 모으며 반가운 표정으로 살며시 포옹하며 맞이한다.
코크지역은 지역특유의 억양이 있다. 아직 영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이나 처음 이곳억양을 듣는 사람이면 이것이 영어인가 귀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 특유의 코크 억양은 얼핏들으면 노래를 하는듯도 하고, 토속적이고, 허물없고 재미있다.
이렇게 이 카릭툴 작은 농가를 방문하면 내 고향도 아니면서 코크의 방언을 들으며 고향을 느낄 것 같다.
다섯명의 아들 중, 몇 년 전 넷째아들 올리버가 마지막으로 장가를 갔고, 그는 여전히 아버지를 도와 농가일을 한다. 올리버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당시에는 항상 그 작은 농가에서 노부모와 함께 살았었다.
올리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데이빗 사촌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줄여 "올리" 라고 부른다.
올리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했다. [그는 잠을 잘때도 웃으면서 잘까]
그렇게 그의 표정은 늘 웃음이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어도 웃고있는 듯 했다.
사실 아버지 엉클단도 그랬고 어머니 안티노라도 그랬다.
올리보다 두 살 어린 막내 데클린도 그랬다.
몇 년 전, 방문한 우리를 데리고 올리는 농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농가 뒤쪽으로 넓게 펼쳐있는 초록의 평야와 굵직하고 믿음직스런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여니 땅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렇게 푸르른 자연의 신선한 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걷다, 올리는 한 지점에 서더니 자신은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 참나무(oak)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3 에이커 정도되는 땅을 보여주며 그곳에 3년 전 참나무를 심었다고 하였다.
성장이 더딘 특성을 가진 참나무들은 아직도 어렸고, 더러는 말라죽기도 했으며 더러는 건강하게 살아있었다.
그 더딘 참나무를 키워 어떤 소득을 올릴 것인지 궁금해하는 내 질문에 올리는 간단히
"난 참나무를 좋아해" 라고 말했다.
참나무를 좋아하는 선한 웃음의 올리!
안티노라를 두고 데이빗은 곧잘 이렇게 말하였다.
"안티노라! 아마 그동안 찾아온 객들에게 방값을 1파운드씩만 받았어도 안티노라는 백만장자가 되었을 거예요"
안티노라는 그냥 선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의 과장된 농담이지만 충분히 안티노라의 손님환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안티노라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인사불성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80을 바라보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적은 희박했다.
얼마 안지나 안티노라의 죽음을 알려주는 사촌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그 날로, 우리가족 모두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몇 년만에 카릭툴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 변함없는 카릭툴 마을을 지나고, 샛길로 접어들어 그 협소한길, 울타리담장이 높게 쳐진, 똑같은 질문을 또 반복하게하는 그 길을 접어들었다.
이 시골 마을은 대 가족들이 사는것인가 착각할 정도로 샛길입구부터 장례식 길안내를 하는 동네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시골길의 교차로마다 Sheehan"s Removal 이라는 매직펜으로 쓴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참고로, 장례식의 뜻인 Funeral 이라고 하지 않고 Removal (이전) 이라고 하는 이유는, 집에 안치된 시신을 교회로 옮기어 하룻밤을 교회에서 묵도록 하는 날 이라하여 옮긴다는 뜻의 Removal 이라고 한다.
다음날 교회에서 죽은자를 위해 예배를 올리고 관을 묻는 날을 Burial (매장) 이라고 한다.
이를 통틀어 Funeral 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의 장례식은 경야 (經夜/wake)라는 것이 있다. 영어단어 wake의 직역대로 사람을 "깨우다" 라는 뜻이다.
죽은사람을 집에 모셔두고 밤새 시끄럽게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파티를 열어 죽은 사람을 깨우려는 의식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이 행여 죽지않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것을 우려한 의도이고 또한 상을 당한 가족들의 이런 행사로 조금이라도 슬픔에서 헤어나게 하려는 의식이다.
이렇게 첫날은 Wake 둘째날은 Removal 셋째날은 Burial 로 장례식이 치러진다.
경야는 시대의 변천으로, 지역마다 치르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곳도 있다.
카릭툴에서는 이 경야의 풍습을 지키고 있었다. 시대의 변천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 마을과 함께 내 생각을 굳혔다.
이전(removal)은 밤 8시에 있었고, 우리는 부지런히 서둘러 겨우 그 시간 안에 당도했다.
작은 농가는 여전하였고 작은 정원도 여전하였다. 우리는 정원을 가로질러 부엌문이 아닌 현관문을 향하였다.
아일랜드의 시골집들은 아직도 현관문으로 출입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삼간다.
장례식 또는 카톨릭 신부가 찾아오는 날이나 현관문을 사용하는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동안 우리도 항상 부엌문을 이용했던 것 같다.
정원에서 창문안을 보니, 작은 거실안에 다섯명의 아들들이 정장차림으로 둘러서 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들이었고 특히 올리와 데클린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반갑기까지 했다.
세명의 아들들은 물론이고 데클린도 그리고 잠잘때도 웃을까 싶은 올리의 얼굴도 내가 전에 보지 못한 침울한 표정이었고 한결같이 그들의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그들의 표정에 쉽사리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나는 지금 장례식에 와 있다는 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었다.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하려는 줄에 서서 나는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뚜렷한 슬픔의 감정도 없이 그 작은 거실에 들어섰다.
큰아들부터 차례로 빙 둘러서 있었는데 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큰아들 데즈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데즈는 나를 너무나 세차게 끌어안고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팔의 힘이 얼마나 세던지 나는 더욱이 어리벙벙해져 버린 것 같다.
영국에 살고있다는 데즈는 대단한 모험가였다고 만 들었었다.
나는 뭐라고 적당한 답변을 준비해오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지만 적당한 말은 있을 것 같지 않아 생각을 포기하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미홀차례였다. 미홀은 내가 직접 본 사람 중에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고 기억되는 인물이다. 역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난 역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셋째아들은 죠였다.
죠는 내가 처음 봤을때부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어 쉽게 기억되는 얼굴이었다.
아직도 수염을 그대로 길렀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올리였다. 올리의 붉어진 눈동자와 침울한 표정에서 나는 올리도 슬퍼하는 표정이 있었구나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천만예요 같은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올리에게도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가장 마음씨가 선하다는 데클린 차례였다. 데클린은 아들중에서 가장 인물이 잘 났다고도 했다. 몇 년전 부인이 집을 나가고, 혼자살게 되었다는 데클린을 보며 나는 또 엉뚱하게 그 부인도 오늘 장례식에 참석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너무나 많이 늙어버린 엉클단이 조그맣게 겨우 서 있었다.
엉클단은 나를 처음 대했을 때 "한국인이 우리집에 온 것은 처음있는 일" 이라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곤 했었다. 한국사람들은 무엇을 먹는지, 젖소를 키우는지, 그들도 술을 많이 마시는지, 등등... 겨우 걸음마 영어를 배우고 있던 나에게 그것도 시골 농부의 심한 코크억양의 그의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멍하니 데이빗 눈치만 보고있었던 14년 전 이었다.
엉클단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데클린과 올리가 데이빗의 아내라고 설명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와줘서 고맙다고 곧 끊길 것 같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그가 너무 기운이 없어 곧 쓰러질것만 같아 불안했다.
마지막인가 했더니 엉클단의 누이 어거스틴 수녀가 의자에 작게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수녀의 볼에 키스하였다.
21살에 수녀가 된 안(Anne)은 쌍둥이중 한명이었고 그 한쪽 자매는 일반인으로 살다 몇 년전에 영국에서 작고하였다.
가난하고 갈곳없는 노인들을 돌보는 수녀원에서 평생을 수절한 어거스틴 수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알지 못한다. 그녀가 세상을 구경할때는 일년중 두 번의 반나절 외출시간이다. 그때마다 수녀는 시어머니네에 들르곤 한다.
세상일을 잘 모르는 것을 순진하다고 표현한다면 분명 이 어거스틴 수녀보다 더 순진한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얼마전 수녀의 방문 때, 나의 시어머니 아일린은 수녀에게 썬글라스를 선물하였다. 햇볕에 눈이 부실 때 끼면, 눈을 찡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수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썬글라스를 좋아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며 이날 장례식날도 하루종일 이 썬글라스를 끼고 문상객들을 맞이하였다는 작은 어거스틴 수녀! 볼 때마다 몸이 점점 줄어드는 그녀가 정말 순진하게 앉아서 문상객들을 만나고있었다.
나는 이제 상주들에게 인사를 다 하였으므로, (결국 한마디 위로의 말도 하지 못했지만) 입구를 향해 나가야했다.
어거스틴 수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떼고 돌아서는 순간 그곳에 정작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눠야 하는 사람이 누워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입구를 들어설 때 관은 입구벽쪽에 붙어 있었고 나는 상주들에게 인사하느라 그 관을 미쳐 보지 못했었다.
생각지 못했던 관속의 안티노라를 보고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관속의 시신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아름다운 안티노라! 그녀의 입술은 꼭 다물어져 있었고 맞물린 입술은 약간 푸른빛이 돌았다.
푹 꺼진 눈은 무척이나 깊게 파여 보였고 마른 광대뼈 위의 살갗이 팽팽히 당겨져 보였다.
살아생전처럼 늘 그렇게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뒤로 묶었다.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고, 자선단체를 위해 퀼트를 만들던 두손은, 깍지껴 모아, 배 위로 올려져 있었다. 그 깍지낀 두 손위에는 자잘한 묵주가 십자가와 함께 걸려있었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과 모아진 두 손을 보며 죽으면 피가 다 어디로 사라지는걸까 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처럼 백인종이 아닌 나도, 죽으면 저렇게 백지장처럼 하얗게 보일까, 아니면 누렇게 보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관속에 나를 넣어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뒤에서 상주들과 문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으므로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조금 지나고 문상은 다 끝났는 듯 하였다.
이제 관을 덮고 시신을 교회로 옮겨야 한다.
관을 덮기전에 마지막으로 상주들은 시신에게 작별인사를 해야한다.
관 옆에 가장 가깝게 서 있던 너무나 늙어버린 작은 노인이 관속의 아내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혀, 죽은 늙은 아내의 푸른빛이 띠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굿바이! 굿바이 노라! 굿바이 내 사랑!"을 힘없이 외치는 늙은 남자는, 뭉쳐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맥없이 통곡하였다. 그의 통곡이 조금만 더 힘이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슬픔에 겨운 눈물이 자꾸만 눈 안에 고이는걸 느꼈다.
나는 또 생각했다.
내 핸드백 속에 휴대용 티슈가 있을까! 가져오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눈물 콧물을 조금만 흘려야 한다고. 나는 시신이 있는 작은거실 문앞에 바짝 기대서 있으며 실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바로앞에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그곳에 커다란 티슈박스가 있었다. 그 티슈박스는 좀전부터 그렇게 있었었지만, 내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여 의식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야 필요성을 느끼며, 새롭게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맘놓고 울어도 될것에 안심하며 한웅큼 집어들었다. 눈물이 계속 나올지도 모르니까.
많은 손자들이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트렸지만 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엉클단의 비애에 찬 힘없는 모습에만 그렇게 마음이 아렸다.
[다음에 내가 다시 이 카릭툴을 찾을때는 저 엉클단의 장례식이겠구나] 싶었다.
그렇담 그 장례식에서는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섯아들과 한 사촌은 관을 어깨에 매었다. 양쪽에 세사람씩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한 자세로 관을 옮길 차 까지 작은 정원을 지나 걸어나갔다.
검은 영구차에 시신을 넣고 차는 교회로 향하였다.
영구차를 따르는 조문객들의 차는 끊일 것 같지가 않다. 마을로 접어드니 경찰차까지 동원되어 교통정리를 하고있었다.
작은마을의 교회치고는 실내가 무척 크다. 대부분 Sheehan 성씨 가진 사람들이겠으나 타운사람들은 다 모인 것처럼 발 디딜 곳 없이 꽉 들이찼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시신은 교회에서 하룻밤을 묵게된다. 많은 사촌들을 만났지만 나는 엉클단의 아들들 외에는 그 줄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겨우 그 많은 사촌들의 얼굴을 본듯한 얼굴로 기억하는 정도인데 반에, 그 많은 사촌들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안부를 묻는 것이 그렇게 고맙다못해 황송할 수가 없다.
그것도 완벽하게 "Shinyoung"을 발음한다.
데이빗만 남겨두고, 하룻밤 자기집에서 묵고 가라는 사촌들을 사양하고, 나는 또 내 삶을 살기 위하여 아이들과 내 집 워터포드를 향한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며 내가 혼동스러워 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아니 사실 아주 많이 있다.
무언가에 혼동스러워한다는 것은 분명 거기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며,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하다는 말과는 다른 뜻이다.
난 지금 또 혼동스럽다.
인생을 살면서 그다지 많은 사람을 알고싶지 않으며 더욱이 깊게 알고싶지 않다는 마음과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 내가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깊게 사랑하며 살고싶다는 마음의 사이에서.
천천히 달리고 싶다. 앞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천천히 달리고싶다.
나는, 때론 후진을 해야할 상황이라면, 상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멀리까지 후진을 하겠다.
상대는 선한웃음으로 손짓을 할테고 나도 선한 손짓으로 답할 것이다.
혹은 반대로, 상대를 후진하게 해야 할 때도 있을테고 나도 그에게 선한 손인사를 할 것이다.
내가 양보를 해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섭섭해하지 않겠다.
종종 나도 그럴때가 있으므로 나 스스로를 용서해주는 마음에서다.
맞부딪쳐 서로 내가 먼저 가야겠다고 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싶다.
그건 피차간에 아무런 득이되지 못하는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나는 성장할 수 있겠으나, 내 마음까지 변해버리지는 않겠다.
변함없는 마을 카릭툴! 그곳에서 살아가는 변함없는 사람들, 그렇게 시대가 변해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만 깊게 알고싶다는 생각도 내 욕심인지 또 혼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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