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53  등록일 : 2003-07-20 오후 10:38:47

부정인가!인정인가! / 나를 위한 눈물
글 : 허신영 ()

"부정(不正)인가! 인정(人情)인가!"

주미 친구 "조안" 이라는 아이가 찾아왔다.
할 일없는 여름방학 어느 날!
좋아하는 친구가 찾아오는 일만큼 또 신나는 일이 어디있을까.
주미와 죠슈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문한 손님을 즐거워한다.

셋은 뒤뜰 정원에 있는 블랙베리를 따다 잼을 만들자고 합의를 본 후 베리를 따와 부엌에서 분주해했다. 숟가락으로 베리를 으깨는 일이었다.

주미보다 한 살이 위인 조안은 나이답게 제안을 했다.
따온 베리가 충분하지 않으니 더 따와야 하는데 죠슈아는 아직 잼을 만들기에는 어린나이이니 대신 베리를 조달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면 들은척도 않하던 녀석이 조안의 이 한마디에 부리나케 베리를 따러 뒤뜰을 향한다.
한참 뒤, 검은베리들이 담긴 비닐봉투를 찰랑대며 죠슈아가 들어왔다.
열심히 베리를 다듬던 주미와 조안은 베리가 모자라니 더 따오라고 죠슈아를 또 시키자 죠슈아도 이번에는 혼자 베리를 따는 일이 심심했던지 그러지말고 모두 나가서 따오고 또 모두 함께 들어와서 만들자고 주장했다.

지들끼리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내놓고 부딪치더니 결국 한사람씩 차례로 따 오자고 합의를 본 듯 했다.
나는 분주히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녀석들이 놀며 하는 얘기가 꽤나 재미있기도 해,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며 듣고있던 참이었다.

주미차례가 되어 주미가 베리를 채집하러 나가고 조안과 죠슈아가 남았다.
조안은 공책에 Joann 과 Joomie를 쓰더니, 이제 죠슈아는 심사위원이 되어 누가 잼을 더 잘 만들었는지를 눈 여겨 공정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조안은 베리껍질을 버리고 속알맹이만을 모아 놓았고 주미는 껍질과 함께 모두 으깨어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조안은 껍질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작품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죠슈아는 내가 심판이라니 이게 뭔 소린가 싶은지 그 큰 눈을 멀뚱대며 "이 이름에 내가 뭘 어째야 하는데?" 라고 물었다.
조안은 다시 설명해주었다.

"죠슈아! 나와 주미가 그 공책을 못보도록 한 다음 그 이름에 누가 더 잼을 잘 만들었는지 보고 네가 생각하기에 더 잘 만든 잼 이름옆에 이렇게 V로 표시를 하는거야. 너는 잼 심판관이니까. V 표시를 받은 사람이 이기는거야"

죠슈아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자밑으로 공책과 고개를 숨기고 열중해 하고 있는 듯 했다.
주미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안이 베리를 따러 갈 차례여서 조안이 밖으로 나가자 죠슈아와 주미만 남게 되었다.

죠슈아는 주미에게 자기가 잼 심판관이라고 자랑스럽게 혹은 위엄있게 자신의 새 임무를 소개했다.
주미는 "그럼 넌 누구 잼이 더 잘 만들어졌다고 할건데?" 라고 하자 죠슈아는 섣불리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댔다.
주미는 이럴 때 밀어붙이자 라고 생각했는지
"죠슈아! 너는 나를 한번도 뽑아준적이 없었잖아. 그리고 이 잼을 비교해봐. 내것은 껍질까지 섞여있어서 색깔이 검붉고 정말 수퍼에서 사온 잼처럼 생겼잖아. 그러니 내것을 뽑아 줘야해"
순진한 것인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것인지, 손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법칙이 작용했는지 간에, 죠슈아는 알았다고 주미이름 옆에 V를 순순히 표시해 넣었다.
그리고 조안이 들어오자 죠슈아는 성급하게 조안을 불렀다.

"조안! 보여줄게있어. 이것봐. 주미가 뽑혔어. 주미가 잼을 더 잘 만들었어"
실망한 조안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죠슈아에게 심판관 감투를 씌어주고 결정권을 주었으니 뭐라고 항의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왜 주미 잼이 뽑혔는지 알고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는지 죠슈아에게 물었다.
"알았어. 그런데 죠슈아! 주미잼이 더 좋다는 이유가 뭐지?"
옆에서 듣고있던 나는 괜스레 뜨끔했다.
(저녀석이 뭐라고 답을 할려나~ 이건 순전히 부정인데...)
하지만 내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죠슈아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주미잼은 색깔이 진해서 정말 잼처럼 보이지만 조안 네것은 색깔이 잼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라고 한마디로 끝냈다.

잼 경진대회?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나고 온통 부엌은 블렉베리들로 난장판을 이루었다.

"부정부패"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니 이런경우라면 "人情부패" 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인정이 부정의 요소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정을 없앨려면 인정에 냉철해야하는데 우리 한국사회는 특히나 정으로 뭉친 사회가 아니던가. 혈연, 학연, 지연을 다 따져 인정을 챙겨야하니 이것이 부정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누굴 탓하리요.
인지상정을 중시하는 우리네들 아닌가! 부정부패 안에 따뜻한 인정이 묻혀있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비난하고 볼 것은 아닌 듯 하다.


△ 빨래를 널고있는 주미와 죠슈아

"나를 위한 눈물"

못된 마녀가 죽었다.
생전에 못된일만 해 왔던 마녀는 죽어 천국에 갈 수 없었다.
못된 마녀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만 한 사람이라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겨우겨우 한 명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내고 그 눈물로 인해 개과천선하여 천국에 갔다는, 내가 본 옛날 한 만화영화 대목이다.

죠슈아의 절친한 친구 마이클이라는 아이가 찾아온 하루였고 마이클이 떠나고 집은 어지간히 어질어져 있었다.

죠슈아와 마이클은 둘도없는 절친한 사이인데 주미가 끼어 마이클과 함께 놀자 죠슈아는 몹시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 나랑은 안 놀아주고 주미하고만 논단말야. 그러니까 엄마는 나랑 고스톱이나 한판 치자구" 라고 나를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했다.
고스톱?
이건 수년전에, 시어머니가 데이빗에게 한국 화투 고스톱을 배워 딸 메리와 함께 맞고를 쳐 오던 이레, 이제 손자들과 함께 매일 고스톱판을 벌이게 된 유례다.
시어머니와 주미 죠슈아 이렇게 셋이 판을 벌이면 항상 죠슈아가 이긴다. 어떻게 해야 점수가 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짝만 맞춰오건만 용케도 끝에 점수가 날때는 죠슈아가 항상 이긴다.

하여튼 이렇게 고스톱 맛을 들인 죠슈아는, 마이클이 자기보다는 주미하고 잘 놀고있으니 엄마가 대신 자기의 고스톱 상대가 되어 달라는 말이다.

나는 물론 녀석에게 딴소리말고 어서 함께 나가 놀으라고 녀석을 내 쫓았다.
"이제 엄마도 나하고 안놀아주잖아" 하며 토라진 죠슈아는 입을 쭉 내민체 그 큰 눈에는 눈물을 담고 내 등살에 밀려 밖으로 나간다.

이렇게 절친한 친구가 찾아온 날 하루동안 서너차례 울고 웃고 삐지고 당기기를 한 죠슈아.

마이클이 돌아가자 주미는, 죠슈아가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툭하면 토라지곤 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소파에 길게 누운 나는, 죠슈아를 타이르고 또 협박도 하고 하며 함께 놀지 못하고 삐져있는 것을 나무랐다.
갑자기, 내가 발바닥 맛사지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죠슈아는 누워있는 내 발바닥을 주물거리며 내게 환심을 사려했다.
그리고 다가와서는 "마미! 아직도 날 사랑해?" 라고 물었다.
내가 꾸중을 하거나 화를 낼때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죠슈아! 나는 죠슈아가 어떤일을 하던 어떻게 생겼든 어디에 있든 전혀 상관없이 항상 사랑한단다. 네가 뭘 잘못했던 잘 했던간에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

아직 죠슈아는 내 말뜻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듯 하다. 여전히 사랑한다는 간단한 말로서 확인이 되면 그만이었다. 사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었고 그 외는 군더더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사람이 욕심을 부리고 질투를 하는 것은 결코 나쁘다고 정죄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자책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받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에서 온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그렇다면 그것을 나쁘다고 평가할 수 는 없는 일 아닌가. 다만 방법이 문제다.
죠슈아가 친구의 사랑에 질투를 하고 혼자만 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부리는 것을 내가 탓하는 이유는, 질투와 욕심은 마음이 행복하지 못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롭고 슬프고 스스로를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물질이든, 혹은 음식이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훨씬 더 여유롭고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며 그것은 타인을 위함이 아니라 진정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소파에 길게 누운 내 머리맡에, 주미는 앉아서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흰머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아예 족집게를 들고와서 길고 뻣뻣한 흰머리 하나를 뽑아냈다.
뽑아낸 흰머리를 보고 내가 감탄과 한숨을 섞어 말하자 주미는 신이나서 "엄마. 이쪽에 흰머리가 무지 많아" 라고 내 한숨을 돋구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죠슈아가 묻는다.
"왜 흰머리가 생기는데?"
"사람이 늙으면 흰머리가 생긴단다. 엄마가 늙고있다는 얘기야."
죠슈아가 또 말한다.
"마미가 늙는 건 싫어"
"죠슈아! 엄마는 늙어야 해. 그래야 죠슈아가 키가 커지고 어른이 될테니까. 엄마가 늙지 않으면 죠슈아는 그대로 어린아이로 있어야 한단다. 그래선 안되겠지?"

죠슈아는 이내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여버렸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붉어진 눈자위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죠슈아! 이리와 엄마품에 안겨보렴"
죠슈아는 말없이 내 품에 안긴 체 벌게진 눈을 끔뻑거렸다.
나도 말이 없고 죠슈아도 말이 없다.

한참후에 일어난 죠슈아는 마치 늙음을 가져다주는 그 누구에게 항의라도 하듯이 대들 듯 소리쳤다.
"마미! 마미가 늙는 건 싫어. 그래서 내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죠슈아는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버린 늙은 여자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나보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세명은 확보해 둔 셈이니, 내가 본 만화영화에 따르면 나는 아마래도 천국은 넉넉히 입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 : 6 건)
오경아 2003-07-27 오후 5:37:19 삭제
신영님!

이번 달에는 칼럼을 2편씩이나...!!! erin홈 새단장 기념 독자들을 위한 선물인가요??
주는 기쁨이 받는 것 보다 좋다고들 하지만...저는 아직도 이렇게 받는 것이 좋답니다. 예상치 않은 칼럼 보너스에 즐거워서 독후감을 빙자삼아 들어왔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과목 중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 과목이 있었는데...쓰기 싫어서 이리저리 꾀를 부리다...마감시간이 지난다음 성의 없이 제출한 결과 "D" 학점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이 있는 제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잘쓰지도 못하는 독후감을 이렇게 자주? 올리다니..... 세상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많지만...
저를 이렇게 스스로 독후감을 쓰게끔 변화시킨 요인은♧마음에 드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번달 칼럼 제목 부정인가! 인정인가! 를 한자없이 쓰여진 칼럼 제목에서 읽었을 때는 부성애에 대한 글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며 클릭**(언젠가 컬럼 독후감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제목을 보며 그 속의 내용을 상상해 보고 나서 읽는 버릇이 있답니다. )

들어와보니..바르지 못한 일을 일컽는 부정(不正)이더군요. 부정부패를 신영씨 표현대로 따뜻한 인정이 묻어있는 인정(人情)부패로 인정(認定) 하기에는 너무나 그 수위가 높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그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부정부패라는 말만들어도 알레르기(Allergie)가 일어나 어떤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없는 단어가 되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블랙베리 잼을 만드는 과정을 그림같이 동화같이 예쁘게 묘사해 놓은 다음 부정이라는 말을 끄집어내니....그동안 부정(不正)이라는 단어에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이 스스로 녹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며 ...펜의 힘의 위력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그리고...죠슈아가 주미누나 잼을 뽑아준 것은 부정도 인정도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나중에 입력된 정보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도 주미가 나중에 베리를 따러가고 조안이 죠슈아에게 자신의 잼이 껍질까지 없애는 정성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분명히 죠슈아는 조안 것에 손을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신영씨가 독자들에게 글의 주제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죠수아의 행동을 부정과 인정에 촛점을 맞추어 묘사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지만.... 죠슈아의 팬으로써 죠슈아의 결백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한마디 해 보았어요. 죠슈아는 확실한 팬을 가지고 있는셈인가요??^

[나를 위한 눈물]도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자신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줄 사람을 확보해 놓아서 천국을 넉넉하게 입장할 수 있다는 그 누구가 부럽고 샘이나서 독후감을 못 쓰겠어요..
말도 안되는 것을 질투한 죄목까지 추가되었을테니 저의 천국입장은 점점 힘들어지겠지요^-^;;

늘 건강하시고 매일의 날들이 민트차처럼 싱그럽고 향기롭기를 바랍니다.

ps. 지금 민트잎을 머그잔에 넣고 팔팔 끓는 물을 부어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Thanks a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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