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44  등록일 : 2002-12-30 오후 8:59:45

값없는 아이
글 : 허신영 ()

어린시절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가 나중 인생을 얼마나 크게 좌우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을 받을 수 있는 때가 바로 어린시절이고 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경험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인생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은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주미와 죠슈아에게 외조부모를 볼 기회는 안타깝게도 드문 일이지만 다행이 길건너 친할머니가 계시는 건 행복한 일이다.

주미와 죠슈아는 언제 어떤 상황이든 지간에 길건너 할머니집에 놀러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들이 조잘거리는 얘기를 시끄럽다고 핀잔하기보다는 들어주고 말상대가 되어주며, 집에서는 먹지 말라고 말리는 쵸콜렛이며 과자들을 그곳에서는 먹을 수 있고, TV를 보려면 있는눈치 없는눈치를 보면서 허락받아야 하는 것과는 달리 할머니집에서는 보고싶은 채널을 맘껏 돌려가며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신나는 할머니 집을 자주 드나들수록 아이들은 식사테이블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보여 크게 다짐을 받아놓았다.
앞으로 할머니집에 가서 달라고도 하지말고 할머니가 주셔도 절대로 아무것도 먹지 말 것.
군것질은 일요일만 할것.
그래도 배고프다고 뭘 좀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할머니는 쵸콜렛이며 샌드위치며를 곧잘 주시곤 하시는가보다.
할머니에게도 단단히 다짐을 받아놓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도 죠슈아가 학교 방과후 할머니 집에 놀러갔다.
죠슈아는 잔돈이 들어있는 양철통을 가지고 놀다 동전을 삼켜버렸단다.
할머니는 은근히 걱정하였고 아빠인 데이빗은 "돈의 가치가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죠슈아에게 물었다.
"죠슈아! 너 오늘 할머니 집에서 먹은 것 있니?"
(할머니네를 갔다올때마다 습관적으로 묻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죠슈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없어 엄마! 동전 빼고는"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데이빗이 벽난로가에 세워진 집게젓가락을 들고나서며 죠슈아가 얼마전 삼킨 동전이 변기에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10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집어왔다.
검게 퇴색된 동전 두 개를 내게 내보였다.
"하나를 삼킨줄 알았는데 두 개나 되다니?"

"이자가 붙어서 나올땐 두배로 나온걸거야" 라고 데이빗이 답했다.

이번엔 내가 말했다.
"다음 번에는 지폐를 한 움큼 삼키게 하여보면 나올 땐 또 두 배로 나올까?"

죠슈아는 담담하게 그 날 두 개를 삼켰노라고 실토했다.

아빠 데이빗이 말했다.
"너는 이제 값어치를 상실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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