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시는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이다.
직장의 영향 탓인지 아님 원래 그녀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런던지사 YEVES SAINT LAURANT에서 일하는 그녀는 정말 도시 멋쟁이 여자다.
고급제품인 YSL의 화장품부터 옷가지까지 회사로부터 지원받는 그녀는 멋진 직업에 패션의 첨단까지 함께 겸하는 현대 커리어우먼이다.
스테이시는 타고난 미모까지 갖추고 있어 YSL 로 치장한 그 외모가 더 한층 돋보이는 여자다.
내가 내 사촌 스테이시를 이렇게 소개하였듯, 나를 간단히 소개하라고 한다면 간단보다 더 간단한 짧은 단어하나로 나를 묘사할 수 있다.
나는 스테이시와는 "전혀 반대다" 라고...
내가 이제 37살이 되었으니 스테이시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다만 유일한 공통점일 것이다.
얼마 전, 몇 년만에 우연히 그 멋쟁이 스테이시를 수퍼마켓에서 만났다.
런던에서 거주하는 그녀는 아일랜드에 휴가차 왔다고 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애들 고무줄로 동여메고, 늘 그렇듯 화장한번 안해본 부스스한 얼굴, 치렁치렁한 빛바래고 닳아진 긴치마를 입고, 내 치맛자락만큼이나 치렁치렁 달라붙는 두 딸아이들과 그리고 남편.
좀 더 싸고 좀 더 필요있는 물건만 골라잡기에 정신없이 진열대의 제품들을 값 비교하고 있던 때였다.
스테이시가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으로 나와 내 남편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이었으므로 조금은 과장되게 이렇게 만나게되서 반갑다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도시 멋쟁이 스테이시는 그 여피다운 특유한 미소로 좀 더 돋보이려는 듯 말투까지 한껏 멋을 들여 말했다.
도시여자 멋쟁이 스테이시, 결혼하지 않은 미혼인 그녀는 아직도 날씬한 몸매였다.
다만 한가지 그녀의 모습에서 내가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은 37살이라는 나이를 그녀도 속일수는 없었던 듯 세월의 흐름이 그녀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도 별 수 없지. 그동안 늙었구나)
나는 그래도 맑고 깨끗한 자연속에서 자연인처럼 사는 사람이어서 내가 그녀보다 더 생기있고 젊을거라고 생각되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녀와의 대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몇 년만에 만난 사촌이었으므로 이곳까지 온 스테이시를, 집에 들러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해야 할 입장이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숲 속 오두막집은 늘 그렇듯이 하루도 정리 정돈되어 본적이 없었고, 늘 사방이 발디딜곳 없이 어지러진 집이었다.
그것은 내가 사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스테이시의 런던 복판의 여피족 아파트와는 반대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초대를 하고나니 내게 먼저 떠오르는건 어질어져있을 집안 풍경이었다.
스테이시의 번쩍거리는 머시디스(Mercedes) 가 우리집 덜거덩 거리는 차를 따라왔다.
스테이시는 오두막집에 들어서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토브 위에 놓인 잡다한 남비며 프라이팬, 씽크대 주위로 퍼져있는 컵과 접시들, 정신없이 어질어진 아이들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반반씩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집안풍경은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보여줄 만한 자랑거리는 되지 못했다.
스테이시는 약간의 감탄사를 집어넣고 내게 말했다.
"수잔! 이 오두막을 보니 마가렛고모가 생각나는구나. 마치 마가렛고모집의 분위기처럼 아기자기 한걸"
마가렛고모! 나는 순간 마가렛고모를 떠올렸다.
인정많고 늘 따뜻한 마가렛고모, 그 마가렛 고모집을 방문할때마다 마가렛고모는 스토브에서 금방 구어낸 빵을, 잔뜩 바른 버터와 함께 우리를 대접하곤 했었다.
그렇게 따뜻한 고모였지만 고모집은 늘 어질러져 있었고 고모가 물건을 찾을때면 온갖 소동을 부려 집안은 더 난장판처럼 되어버리곤 했었다. 마가렛고모집은 따뜻하고 훈훈한 집이었지만 또한 늘 어질러져있기로 유명한 집이었다.
지금 스테이시는 그 마가렛고모를 말하는 것이다.
그 어질러져있는 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가렛고모를 스테이시는 나를 보며 연상하고 있다니......
나는 스테이시가 나보다 더 나이들어 보인다고, 더욱더 단정적으로 그리고 그러길 다행이라고 양심의 가책없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쿠션꺼진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입담을 끝낸 후, 스테이시는 숲속의 오두막을 나와 시골길에 주차한 그녀의 번쩍거리는 머시디스를 타고 손을 흔들고는 저만치 사라져갔다.
그녀의 차가 시야에서 멀어지자말자 나는 남편에게 조금은 당당해진 듯, 자랑스러운 듯 이렇게 물었다.
"이봐 자기! 몇 년 사이에 스테이시도 정말 많이 늙은 것 같애. 어쩜 나보다 저렇게 더 늙어보이다니 말야"
남편은 뜻밖이라는 듯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고???? 아니야. 뭐 여전히 멋져 보이는데 더 늙어보이다니?"
"아니 뭐라구요? 사실대로 말해봐. 내가 스테이시보다 더 젊어보이지 않단 말이야?"
"아니! 스테이시는 그냥 멋져보일뿐인데....???"
아니 아니 이럴수가 있는가 말이다. 내 말이 이렇게 우습게 부끄러워지고 자존심이 짓이겨지는 순간이었다.
화가 났고 수치스럽고 정말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이 망할놈의 남편!!!
"다알링! 물론이지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고 당연 스테이시보다 훨씬 더 젊어보이고 말고" 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 그의 정직성에 치명타를 입힐정도인가 말이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해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남편은 못되는가 말이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통통 뛴다고 해도 스테이시는 멋쟁이 여자이고 여전히 멋진여자라는 사실을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날 오후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가 그의 작은 실수를 엄청나게 불려서 잔뜩 짜증을 부렸다.
남편은 내가 왜 그렇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욱더 나를 화나게 했다.
그걸 알았더라면 첨부터 그렇게 말할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러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남편에게 파리의 낭만을 불러일으키려는 말을 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던 것을....
나는 에펠탑이 있고 샹들리제 거리가 있는 낭만의 파리를 상상을 하곤 했다.
잿빛 침침한 하늘에 까마귀때가 음산하게 날아다니는 아일랜드의 겨울날, 구질구질하고 좁은 부엌 싱크대 앞에서 홍차를 타느라 머그잔을 흔들어 씻고있는 나.
남편이 들어와 내게 말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수잔! 지금 밖에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타고 공항으로 가자구. 거기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당신과 나 단둘이서만 주말을 보내는거야"
나는 깜짝놀라서 어리벙벙해진 표정으로 남편을 향해 말한다.
"하지만 이 설거지는 어떡하고 짐은 언제 다 챙기고 애들은?"
"그런건 걱정하지 마. 설거지는 내가 할테고, 짐은 호텔에 새로 산 물건들로 준비되어있고 특히 옷장은 새 옷들로 가득 차 있을테니 당신 지금 옷차림 그대로 떠나면 돼! 애들은 우리 어머니가 봐 주기로 했어"
"정말이예요? 믿을수가 없어. 설마 농담을 하는건 아니겠지?"
"물론 정말이고말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아름다운 파리에서의 주말을 즐기는 일 뿐이야"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더니 입가에 미소까지 삐져 나와 정말로 흥분되기까지 했다.
다행이(아니 불행이)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기 전에 남편이 퇴근길에서 현관문을 들어섰다.
나는 남편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틴! 파리의 샹들리제! 생각만해도 낭만적이지 않아? 우리 주말을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의 대답이다.
"파리? 파리는 개똥천지인 곳이야"
그 날로 내가 꿈꿔왔던 낭만의 파리는 개똥천지인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낭만의 도시였던 파리를 떠올리면 개똥천지 라는 말도 낭만이란 단어 옆에 기어이 떠오를 것이다.
남편이 내게 심어 준 새로운 파리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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