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36  등록일 : 2002-05-20 오후 6:50:36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글 : 허신영 ()

길을 걷다가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다 고개를 들면 깜짝 놀란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고향사람들의 생김새가 아닌, 코 크고 눈 파랗고 하얀 피부의 사람들이 선뜻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멈칫 놀라고 만다.
'아! 이곳은 내 고향 한국이 아니구나'
나무꾼의 각시 선녀처럼 아이들을 둘이나 낳고 산지가 벌써 몇해인데....아직도 깜짝깜짝 놀라는걸 보면, 해가 갈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는 토종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고향을 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상상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며칠이나 남았는지, 마치 어렸을적 소풍을 기다리듯 마냥 기다려지고 그러다 또 안타까워지고 만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처럼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그 기다리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처럼 나는 오히려 그날의 기다림의 날짜세기에 더 행복해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고향방문은 가을이었으면 하지만 내가 살고있는 현실은 가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차저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주신 덕분에 부활절 휴가가 생겼고 그 덕에 날짜를 쉽게 정하여버렸다.
6살의 주미는 지난 3 년 전의 한국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집을 떠나고 아빠를 떠난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듯 하다.
동글동글한 파마머리를 해 주겠다는 말로 꼬드겨 한국을 기대하는 사람이 꼭 나 혼자만은 아니게 되었다. 죠슈아야 아직 멋모르고 엄마를 따를테니....

여행가방 꾸리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고향가는 가방 싸기라면 손이 마다하지 않는다.

남아있을 남편에게 고맙기도하고 조금은 미안하기도하고, 내 몫 찾아먹는다는 정당함 등이 얽히고 설킨 자리 더블린 출국입구.
"Good bye and take care" 라는 말을 내놓고 내가 한 그 말이 생소해 눈물이 대롱거리지만 그도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하다.

그렇게 짐도 챙기고, 애들도 챙기고, 설레는 마음 담아 말로만 듣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흥분만큼 더 아름다운 희열의 감정이 어디 있을까!

새롭게 닦여진 신식건물이 국제공항답다는 생각이지만 철근구조물이 필요이상으로 강조되어 조금은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저 문밖을 나가면 나와 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내 좋은 사람들이 서성대며 나 만큼이나 희열의 감정을 가누느라 애쓰고 있겠지.

세관을 통과하고 문밖을 나오니 눈에 익은 모습이지만 흰머리가 조금 더 많아진 자그마한 어머니가 서 계신다.
나를 본 어머니의 첫 마디.

"야! 네 앞에 걸어나오던 사람이 많이 본듯한 사람인데 누군지 아냐?"
"몰라요. 그냥 애들한테 인사말하고 지나갔는데요?"
"아무래도 테레비에서 많이 본듯한 사람인데...탈렌트 같더라..."
"엄마! 오래간만에 본 딸인데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냐, 잘 있었냐 할말이 오죽 많것소. 내 앞에 걸어나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몇 년만에 이 모녀가 상봉한 자리에서 첫마디로 물어봐야 하것소? 참말로 엄마는 못말리요...."

뜻밖의 환대식이지만 엄마는 늘 평상시에 만나왔던 것처럼, 그다지 유난을 떨고싶지 않으신 탓일 게다.

찬란한 한국의 3월의 햇볕을 받으니 그간의 움츠렸던 몸이 녹는 듯 하다.
곧게 말끔히 새롭게 닦여진 쑥 뚫린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보니 정부가 큰 일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밤새 좁은 의자에 시달리며 날아오느라 눈은 몹시 피곤하지만 바깥구경은 하나라도 놓칠 새가 없다.

나는 늘 길눈이 어두워 고생하는 사람이지만 바깥풍경은 빠지지 않고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건물을 보고 건물 간판에 쓰인 제목은 모두 읽어 내린다. 간판을 읽어보면 그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요즘에는 무엇이 유행하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가 있다.

전에 본적은 없을 테지만 낯설지 않은 고향의 얼굴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고향은 늘 그곳에 있었듯이 나 역시 그 속에 살아오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방인이 아님이다.

용인까지 두어시간을 달려오며 나는 한 점의 녹색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직은 이른봄이어서 잔디도 나무도 삭막하게 말라있는 탓이겠지만 늘 사방팔방 녹색초원에서 녹색만 보고 살고있는 나에겐 한점의 녹색을 볼 수 없는 고향이 삭막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고국의 모습이니 그로서 족하다.

나는 12년 전 한국을 떠난 이후에서야 뒤늦게 눈이 뜨여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건 설악산이나 내장산의 명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뒷산부터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산에서 자랐고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는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엄숙함과 군자의 멋이 풍기는 소나무, 나는 소나무에 길들여져 좋아한다. 산에는 그런 소나무들이 있기에 나는 산을 좋아한다.

전 국토의 70%가 산으로 덮인 우리 한국, 안타깝게도 산행을 할 기회가 없었던 이번 방문에는 제대로 나무를 볼 기회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핏줄이 그립다는 말이 있다.
이제 그 말이 사실이 되어 내게 다가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핏줄이 무엇인지 나의 모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살았나보다.
그러고 보면 이제야 그런 말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니, 철들자 망령이라는데 내가 정말로 철이 들쯤에는 망령의 나이가 아닐는지.

한국인들은 내가 보기에 무례하였고, 사치스러웠고, 늘 아옹다옹하였고, 질서가 없었고, 부패가 연연하였고, 고리타분한 유교사상에 억눌린 채 힘들어하였고, 빈부에 차등을 두는 나라였고, 내세우기를 좋아하였고, 부자가 거만한 나라였고 늘 시끄러운 나라였다. 나는 이런 사회에 소속되어있는 게 싫었고 그래서 핑계삼아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이제야 고백한다.

나는 한국이 선진반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부당한 사회제도와 교육제도 사람들의 의식수준 이런 것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없는 나이의 생각없는 생각이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한국인이라면 한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변함이 없을테지만.

나는 못난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니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다
어느 날 난 내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했고 나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 빼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난 어머니를 다시 찾았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셨다.
어머니는 여전히 세련되지 못한 차림새와 말씨 그대로였지만 바로 그분이 내 어머니라는 사실에 그 털털한 모습이 오히려 반가웠다.
어머니와 나는 한 몸이었었음으로 우린 똑같은 생각을 하였고 똑같은 말을 하였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몸치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급한 성격과 때로는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는 어머니였지만 그런 성격까지가 모두 내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 안에 내가 있고 어머니 또한 내 안에 있는 우리는 한 몸이었다.
고국 땅 한국은 나에게 있어 어머니이다.

얼마 전 BBC 라디오 홈페이지에 한국에 대한 기사가 달갑지 않게 실려 무척 논란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략 이런 기사였다.

한국의 식민지시대 역사와 비참했던 월드컵 패배를 머리말로 시작한 이 기사는 한국인들은 개고기를 정력에 좋다하여 수시로 먹고, 빨리와 라는 말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아줌마들의 스테레오 타입과 격낮고 볼품없음을 꼬집었고, 화장실에서 쓰는 휴지로 식탁에도 사용하고, 식당에서 가벼운 손짓으로 웨이터를 부르기보다는 여기요 라는 말로 부르는 매너없음과, 영어에 미친 사람들이어서 혓바닥 수술을 하면 영어를 잘 할수있다고 믿는 사람들, 식탁에서 가위질을 하는 사람들 등등이었던 것 같다.

이에 반발한 몇몇 한국인들은 이 BBC 홈페이지에 조목조목 야무지게 따져가며 항의를 하였고 이 기사는 그 이후로 삭제되고 사과를 하였지만 난 그 기사를 읽으며 화가 나기보다는 사실 웃음이 나왔다.

그 기사를 쓴 사람은 한국인들의 습성이 왜 그러한지 속사정을 모르고 피상적인 것만 보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든 아니든 사실 맞는말이기도 하고 그건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각자 보고 느낀바야 자유이겠으나 BBC 홈페이지 방송을 탔다는게 문제였지만)

"빨리해" 라는 말을 하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 개고기가 없어서 못 먹지 군침돌게 맛있게 나를 유혹한다면 두 번생각하지 않고 먹을 나, 박스 화장지가 다 떨어졌다면 화장실용 화장지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나, 애들 국수사발에 가위를 넣어 쑥덕쑥덕 자르는 나, 등등... 바로 그게 나 이고 한국인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봤다고 욕하고 화낼 이유가 내게는 없다. 그게 바로 나 이기 때문이고 나는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니까.
누가 당장 정말 한국인들은 그러하냐고 묻는다면 난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유유하게 대답할 것이다.

"맞아요. 그래요. 그게 나 예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얽히고 설킨 우리만의 "통정"의 사회를 BBC가 알겠는가 CNN이 알겠는가!

내가 식탁에서 가위질을 하는걸 본 시누남자친구 독일인은 입이 떡 벌어졌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늘 그렇듯이 사용하였고 이제 그는 가위가 부엌용품 중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개고기 얘기하니 재미있는 얘기가 생각난다.
스페인 살 때다. 독일친구를 한국식당에 데리고 갔었다. 개고기를 먹는걸 이상하게 생각하던 이 독일친구. 한국식당에서 배불리 맛있게 먹고 나오며 참 맛있다는 말을 연발한다.
얄궂은 데이빗이 그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프랑크! 너 좀전에 맛있다고 먹었던 붉은색으로 된 얇게 썰어진 고기맛 생각나지?"
"응. 그래 매콤하고 맛있었어"
"그래, 바로 그게 개고기야"
"어? 정말?"
"그래, 맛있었지?"
"으으응. 맛 있 었 어"

삼겹살을 고추장에 볶은 요리였지만 우리는 끝내 그게 돼지고기이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그 식당을 드나들었다.

나를 꼭 닮았다는 내 딸 주미는 나의 고향 한국과는 또 한 다리 건너서인가보다.
주미의 고향은 한국이 아니었다. (하긴 나도 내 고향을 30이 다 되어 알아봤는데)
사물을 구별할 줄 알게 된 나이의 주미는 모든 것을 낯설어했다.
동물이 없고 새가 없고 잔디가 없고 나무가 없는 나라 한국, 밤이면 크리스마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조명불꽃들에 입이 벌어졌다가, 어디서 왔냐고 한마디 묻고는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황황히 지나가 버리는 사람들을 몇몇 만난 이후 왜 사람들이 무례하냐고 내게 묻는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과외수업을 하는 사촌을 보고 학교를 몇 개나 다녀야 하느냐고 묻는 주미.
롯데월드로, 서울랜드로 딸 앞에서 유세떨어 보이느라 데리고 다니며, "주미야! 아일랜드에는 이만한 놀이기구도 없잖아? 그러니 한국이 얼마나 더 좋으니!"
한번 눈을 끔뻑인 후 그래도 아일랜드가 더 좋다니 그래 네 고향은 내 고향이 아닌 아일랜드구나.

나는 늘 이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매 순간 순간을 꼭 즐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또 중간중간 놀라워하기도 하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이 이다지 많이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먹는걸 중요시하고 즐겨하는 나라 한국은 내 성격과 꼭 닮았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시내를 왕래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아쉬움이 치솟곤 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강산은 아름다운 자태로 뒷전에 앉아있으니, 감상은 잘해야 일년에 한두 번 계획한 날에나 가능한 일이었고, 대신 매일매일 만나는 도시 거리와 건물들은 바로 생활환경이다.

나는 이 생활환경이 관상하기에 좀 더 아름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 나무와 꽃과 잔디를 보기 위해서 특정지역에 날잡아 가야만 하는가!
우리 주변에는 나무가 메말라있다. 녹색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기후가 좋은 곳에는 얼마든지 식물들이 자라기 알맞다.
아파트 단지에 주차장만 만들게 아니라 대신 잔디를 심고 꽃을 가꾸고 주변에 나무를 심을수는 없을까!
지하 주차장을 지상의 것까지 한층 더 만들고 지상에는 녹색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꾼다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자동차대신 얼마나 보기 좋을까.

그 많은 갈비식당들은 휘황찬란한 불꽃놀이 조명으로 밤낮으로 전기세를 낭비하기보다 정원을 가꾸고, 아니 정원을 만들 터가 없다면 저렴한 돈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는 울긋불긋 화초가 담긴 화분장식을 식당 주변에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새로 개업하는 사무실에 하루면 시들어 버려질 비싸 화환보다는 살아있는 초록의 식물이 더 낫지 않을까.

전철역을 역 사이에 하나 더 만드는 수고보다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겠지만) 거리를 좀 더 푸르고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는가.
그건 선거공약에 득표할만하지 못한 이유인가.

화초를 파는 정원에는 란 이외에는 식물의 가짓수가 없는가.

도시 상가들에 화분을 놓을 자리가 없다면 벽걸이를 만들어 꽃이 담긴 바스켓을 걸어놓아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이 흘러 넘친다면 그야말로 꽃의 도시가 되지 않을까.

베란다의 옹기종기 모인 항아리들 옆에 울긋불긋 꽃을 가꾼다면 여름내 마음이 넉넉해질텐데.

내가 너무 꿈같은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실현가능성 없는 이야기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영국령의 Jersey 라는 섬에 휴가를 갔을 때 온통 꽃들이 천지여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살펴보니 그다지 특별히 아름다운 도시도 아니었지만 그 도시를 꽃들이 모두 덮어씌우고 있은 이유였다.

월드컵이니 뭐니 온 나라가 부산한 이때, 손님맞이를 위해 집단장을 하는 건 주인으로서의 예의이겠으나 집단장은 손님 보기좋으라고 가 아닌 내가 보기좋으라 는 이유가 첫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님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방문한 기간 한달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런저런 행사도 많았었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COEX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였다.
내가 함께 일하던 아일랜드의 학교원장들과 함께 서 있으며 꼭 비지니스만이 아닌 사람과의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들역시 나를 조금 더 알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 학교원장들은 한국의 위상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이렇게 큰 무역센터는 처음봤다는 갈웨이의 한 원장.
아일랜드의 개구리가 대해를 보았다고 한다면 너무 잘난척이 될까!
"이 무역센터가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인가요?"
나는 농담을 섞어 대답한다.
"글세, 미국에 있는 것이 무너졌으니 그쯤 될지도 모르지요"

한국의 세련된 첨단기술의 모발폰을 보고 한없이 부러워하던 눈초리
"당신 것을 좀 보여줘봐요. 으음... 이 정도의 크기라면 우린 냉장고라고 불러요"
껄껄대고 웃어대는 갈웨이에서 온 남자

"저 아래층을 한번 가봐요. 내 생전에 이렇게 분주하게 일이 많이 벌어지는 곳은 처음 봤어요"
정말 사람사는 곳이 어떤곳이라는 것을 맛보고 놀라는 더블린 학교의 한 원장.

음식의 맛에 감탄은 물론 (어디 삶은 감자에 감히 비할까....) 한국의 첨단기술과 정보망, 그 고급스런 건물들과 규모에 한국을 진정 몰랐노라고 말하는 그들, 친절한 한국인들의 인상이 좋다는 그들, 다음에도 꼭 한국을 찾아오겠다는 그들.

갈웨이 남자 둘의 숙소를 잡아줘야 할 일이 있었다. 그 학교에 다녔던 인천에 사는 여학생이 연결이 되어 인천 송도유원지쪽에 모텔을 예약했다고 한다.
모텔을 예약하고 아일랜드 군함이 방문한 인천항의 리셉션에서의 대화이다.

"현순씨! 모텔이라면 소위 말하는 러브호텔인가요?"
"네, 다 러브호텔밖에 없어요. 그뿐아니라 그 안에 러브체어라는게 있었고 거기에 체위별 그림까지 상세히 나와있어서 쓰레기통에 숨겨놨어요"

우리는 킥킥대고 웃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이봐요. 친구, 오늘 당신이 잘 곳은 러브호텔이예요"
"러브호텔? 하하. 근데, 왜 러브호텔이라고 부르지요?"
"우리 한국인들은 워낙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어서 러브호텔이라고 불러요"
갈웨이 친구는 내 대답에 배를 움켜쥐고 웃는다.

하룻밤을 러브호텔에서 잔 그 순진한 아이리쉬 친구의 말을 전해들었다.
"내 방 안에 이상한 의자가 있는데 아마 헬스기구 같았어요"
헬스기구가 아니라 러브체어라는걸 알게된 그 친구의 말

"그것도 일종의 헬스기구이긴 하네요"

주차장에 어두운 커튼을 드리우고 번호판을 숨기는 러브호텔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던 이 친구는 그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다 때마침 남녀한쌍이 호텔문을 나서자 부리나케 각자의 차로 달려가는걸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하니.

동이 틀 녘까지 온갖 담소를 나누던 언니와의 시간들은 내게는 더없는 추억거리였다.
둘 다 스테레오타입(?) 아줌마가 된 우리는 못할 얘기가 없었고 말 한마디가 끝날때마다 웃음도 따랐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여지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렇게 슬플수가 없다는 언니의 말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내가 서야할 공간을 찾아가야만 했다.
같은 집에서 태어났고 같은 집에서 자랐으며 내내 함께 살던 우리가 어느 날부터 왜 나는 그 머나먼 나라에 가야만 하는지 가끔씩 의아해진다.

그리운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였다.
만남과 헤어짐이란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것인가.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어떤말로 헤어짐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렇게 희열의 들뜬 감정을 안고 한달 전 찾아와서는 안주하며 살 사람처럼 들락거리다, 훌쩍 내가 떠나버리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쓸쓸할까.
"오거든 우리집에 사흘을 넘게 있지 말아라" 고 당부인지 다짐인지 못을 박는 어머니는 사흘이상 함께하여 나와 애들 자리가 더 깊어질까봐 이별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신다.

회자정리라던가!
그동안 실습해왔던 이별로 쳐도 이제는 어느정도 단련이 됐을법도 하건만 항상 출국입구에 서면 가슴이 아련히 메어오곤 한다.
남은 사람들의 쓸쓸한 표정과 이제 가면 또 한동안 볼 수 없다는 그 아쉬움이 꾹 다문 입술위로 눈물이 되어 흐른다.

붉어진 눈으로 돌아서자마자 통관대에 서는 것 또한 못할 짓이다.
출국입구와 통관심사 사이에 나같이 맘약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이라도 말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핏줄이 그립다더니 점점 어머니 땅이 그리워지는 요즘 나도 이제 나이 먹는 티를 내고 있는가보다.

나는 다시 내 공간에 내 위치에 돌아왔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양 생활하는걸 보면 불현듯 한달 동안 긴 꿈을 꾼 건 아닐까 싶다.

내 어머니 한국, 다음에 찾아갈 땐 예쁘게 단장하고 나를 맞이하는 어머니 같았으면 좋겠다.
물론 예전 모습처럼 털털하게 나와준다고 해도 여전히 반가운 어머니이겠지만...

(총 : 16 건)
미화 2003-06-30 오후 7:39:23 삭제

여전히 글이 조목조목 공감할수 있게 잘도 썼더라.
그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특히 외국인 누군가가 말하길,
자기가 의아하게 생각하는것 중에 하나가, 화장지가 아닌 화장실 두루마리 화장지가 식탁위에 있는것이다 라는것.

또 어느날 독일에서 독일인 부부를 우리집을로 초대해서
한국음식을 차렸는데 뭘 자를일이 있어서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데(무슨 음식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때 그 사람들
표정이 하도 충격적으로 보여 나 또한 자기들 만큼 당황하고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가위로 해물파전도
자르고 갈비도 자르고 고기도 자르고 라면에 파도 자른다.

얼마전 우리가 지금살고있는 미국의 어느 호수가에 우리부부와
또 다른 독일부부와 아이들이 같이 가서갈비를 구워 먹었어.
그때 LA갈비를 가위로 잘랐는데도, 이사람들은 이미 격의없는
미국문화에 물들여졌는지 아무 표정 없더라.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마음을 잘 읽을수 있었어.

이 저녁에 잔잔한 신영이 글 읽고 나니 나도 갑자기 한국이 그립다.

김지은 2003-06-30 오후 7:45:16 삭제
아침에 휴강이되어서 전산실가서 게시판을 돌아보다가
써놓으신 칼럼 읽었어요..

너무 감동적이여서,,특히 어머니에 대해 쓴글귀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네요..

전산실였는데..자꾸 눈물이 나와서 혼났어요.^^
저 참 웃기죠? ^^

저두 아일랜드 갈때 안울려고 생각은 하는데..
아무래도 눈물이 나올것 같애요..
괜히 엄마 걱정 끼쳐드릴까봐 엄마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아무래도 수속문이 닫히면 나오는 눈물을 주체 못할것 같은 느낌이..

저희엄마도 눈물이 많으셔서 동생이랑 미국이모네 갈때도
우셨거든요..

이젠 동생도 군대를 가고..저마저,,먼 타국땅에 가게 되니..
부모님걱정이 됩니다.

걱정 안 끼쳐드리게 제가 아일랜드 가서 씩씩하게 생활해야 겠지요..~


변함없이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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