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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번호 33 |
등록일 : 2002-01-21 오후 6:3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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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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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허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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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달 칼럼 "신세계 (1)"에서 다룬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살을 덧붙이고자 한다.
사랑하는 친구야!
"심성이 착해서, 마음이 약해서 혹은 우유부단해서" 라는 말들이 얼마나 나를 지치게 하고 또한 스스로를 오해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심성이 착한 사람도 마음이 약한 사람도 우유부단한 사람도 아니었건만 다만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과 부딪침에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방법을 몰라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문제를 대면했을 때 내 속사람, 내 속마음, 내 입장을 상대에게 분명히 밝히고 정확한 선을 그어 보이는 방법은 남을 다치게 하는 결과를 낸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내린 그런 결론은 내가 그동안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내 스스로가 내 생각에 맞게 받아들인 윤리였고, 그리고 그걸 내 머릿속에 세뇌시켜둔 나만의 도덕이었고 또한 몸에 밴 습관인,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렇기에 상대로 인해 내가 기분 나빠졌음에도 혹은 나의 정당한 요구를 할 만한 만남에서도 그 사람이 오해할까봐 다칠까봐 화를낼까봐 또는 나를 달리 생각할까봐 마음을 놓지 못하여 솔직한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곤 하였다.
결국 상대방을 염려한 내 식의 도덕적인 배려(마음)였다.
그런 배려와 마음을 우리는 흔히 "마음이 약하고 착해서" 라고 말한다.
나의 도덕은 나를 얽매이게 하였고, 그 결과는 내가 배려한 만큼의 댓가는커녕 허전함이나 당했다는 느낌이거나 씁쓸한 맛만 남길 뿐이었다. 오히려 문제가 끝에 가서는 더 확장되어 다가올 때도 있다.
실수로든 고의로든 남이 내 발을 밟았다면 나는 저절로 아프다고 "아야" 하는 소리가 날 것이며 그 소리가 결코 잘못된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아야"라는 말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혹은 무안하게 하는 일이라고 내 도덕에 맞추어 판결을 내리고 사는 삶이라면, 아플 때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사는 그 삶이라면, 그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이란 말인가. 또한 상대가 알아주기나 한단 말인가. 설령 안다고 할지라도 상대는 오히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니 괜찮아"라고 맘대로 이름짓고 내 가치를 상쇄시키는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나는 "내 스스로가 짜놓은 도덕(?)이라는 틀"의 상자 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었다.
자유롭게 벗어난다는 뜻은 쭈뼛거리거나 염려하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있고 당당하게 내가 상대에게 정확한 의사를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힘을 말한다.
우선 내 분명한 입장과 위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예를들어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상대에게 원하는 그것을 받기 위해 어떤걸 준비하였거나 주었는지 알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자신이 원하는걸 분명하게 알아냈다면 그게 옳다고 믿는가 하는 문제를 만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변을 개의치 않고 나의 의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도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그 말을 받아들일 힘이 없어 오해하거나 다치거나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다정한 친구야!
무슨말인지 알쏭달쏭한 혼동스런 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게 말해주고 싶다.
상대를 믿을 줄 아는 힘이 생기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을 믿는 힘이 강하게 길러진 이후의 일이며 상대를 믿게 된 이후에는 위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문제는 내가 차를 운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혼잡한 도로에도, 혹은 비좁은 구빗길도 운전을 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나는 상대방의 차를 믿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 운전자를 믿지 못한다면 언제 내 옆을 느닷없이 들이밀어댈지 내가 가는 길을 막고 나설지, 신호등을 지키지 않을지, 차선을 지키지 않고 반대차선에 들어설지 등을 내가 믿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운전도 하면 할수록 기술을 터득할 수 있듯이 정확한 의사전달도 훈련이 필요하고 강화가 필요하다.
다시말해 내 입장을 진실 되고 분명히 밝히고 선을 정확히 그어준다면 상대방도 쉽게 받아들인다.
물론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터이나 만약 그런사람이 있다면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것으로 족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고 진솔하게 말했다면 상대가 오해하는 경우는 없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간에 진실은 통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말의 어감에서, 의사가 잘못 전달돼서 혹은 자신의 이익이 상대의 진실보다 더 강하여 일부러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등 전달이 왜곡될 수는 있으나 사람자체가 그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또 한가지 중요한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내가 그렇게 의사를 전달했다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아볼 필요는 있다. 그 뜻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까, 이제부터 나를 달리볼까, 하는 염려가 아닌 그 상대가 제대로 내 의사를 받아들였는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눈 여겨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진실이 통하는 사회라면 어째서 사람과 사람끼리 문제가 발생하고 크고 작은 삐걱임들로 시끄러우냐고 너는 물을 것이다.
그건 가치관이 틀리거나 서로 상대에게 부당한 걸 요구할 때 생기기 때문이다.
상대방에서 원하는걸 내가 원하지 않거나 내가 할 수 없는걸 상대가 원할 때 등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러니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게 무엇인지, 부당한지 아닌지 분명하게 찾아내야 할 것이며 내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상대를 이해하였어도 내 욕구가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보다 훨씬 크므로 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항상 체크한다.
피차간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체크해야한다.
상대방이 원해서 내게 요구했을 경우 그래서 내가 그 요구를 들어줬을 경우그 댓가로 그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내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선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주고싶은 마음에서 했다면 그걸로서 끝을 내야한다. "나는 너를 위해 그렇게 해 줬는데 네가 이럴수가......."라고 뒷말을 달지 말아야한다. "네가 원하는 줄 알고 해줬어"가 결국 "네가 그런 애 인줄 몰랐어" "어쩜 사람이 그럴수가 있어?" 나 "내 맘은 그게 아니었는데"라는 씁쓸하고 허망한 말로 변하듯, 그건 잘못된 연산이고 잘못된 오해이고 실망이고 부딪침이고 하다.
나의 잘못된 연산을 여기저기 친절하게 베풀어놓고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은 주겠지..." 라고 막연하게 끈끈한 정을 풀어준다면 축축한 곳에 곰팡이가 생기듯 축축한 정(情)도 문제의 발단을 만들어 주는 원인으로밖에 간주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와 의사 전달에 있어 상대가 나한테 어떻게 대할것인지는 상대방의 작업량이니 그 걱정까지 내가 할 수는 없다.
내가 내 할 도리를 다 했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다.
안 되는 걸 어떻게 기를 쓰고 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귀하므로 가능하고 즐거운 일만 찾아해도 모자랄 판인데 안되는 일까지 걱정하고 비지땀을 흘려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너무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 피차간의 선(boundary)을 알아보고 실험해보고 실패하고 연속하다가, 처음에는 내 방식이나 선을 몰라 상대가 나를 오해하거나 헤메거나 하다가, 자꾸 연거푸 거듭되다가, 나중에 일관성 있게 정열이 된다.
여린 친구야! 다시 말한다.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를 수시로 주시(aware)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깨끗하게 볼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러면 내 자신과 주위가 깔끔하게 정돈이 된다.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 내 머릿속에서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떻게 되고 싶은지, 무얼 하고 싶은지 그걸 알아갈수록 내 맘이 정돈이 된다.
더 이상 뭐가 뭔지 혼동스럽지 않으며 깨끗이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전에도 말했듯 자신이 없다는 건 내가 알고있는지 모르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
이제 그런 힘이 나에게 생겼다면 그건 아주 강한 내면의 힘이 된다.
나처럼 겁이 많은 나의 애틋한 친구야!
너나 나는 신이 아니므로 실수나 잘못을 알게 모르게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문제에서 자유롭게 해방되고 싶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꼭 명심해야 한다.
내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무척 속상하고 다치고 자존심 상해하고 언성을 높이고 괴로워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 불편함에서 자유스럽게 해방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이나 약점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고 그래서 감추고 안 그런 척 하지만, 그러다 들키거나 지적당했을 때 역시 말할 수 없는 모멸감에 힘들어하게 된다.
그 또한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비로소 자유스럽게 해방될 수 있고 그건 더 이상 너의 약점이나 단점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면의 그런 강한 힘이 없기 때문에 약한 자 일수록 조금만 건드려도 자격지심과 소위 자존심이 다쳐 힘들어한다.
내면의 힘이 강하게 되면, 상대방이 내게 어지간한 언짢은 언행을 내게 했을지라도 내 기분은 전혀 상대방으로 인하여 망치거나 좌우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자신감이고 강한 힘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한가지 사사로운 예를 들겠다.
얼마 전 수퍼마켓에 들렀다.
유로로 환전되고 난 이후 추롤리(Trolly)에 넣을 동전이 기존대로 1파운드 동전을 넣어야 하는지 1 유로 동전을 넣어야 하는지 확실치 않아 인포메이션데스크에 가서 물었다.
그 데스크의 고객 서비스를 위해 유니폼을 입고 앉아있는 사람은 나를 힐끔 한번 쳐다보고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실례합니다만 쇼핑 추롤리에 들어갈 돈이 1파운드 동전인지 1유로 동전인지 알려주시겠어요?" 라고 물었다.
여자는 귀찮다는 듯 "유로"라는 단어 한마디만 내뱉고 저쪽을 또 바라보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참 보기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일반사람 같으면 유로로 돈이 바뀐 이후로 혼동된다는 둥 날씨가 오늘 어떻다는 둥 묻지 않는 말까지 구구절절 늘어놓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건만 이 여자는 찬바람 돌도록 "유로" 라는 단어 하나만 뱉어놓았다.
나는 50 센트짜리 두 개를 지갑에서 골라 "1 유로로 바꿔주시겠어요?" 라고 동전을 내 놓았다.
여자는 아무말없이 1유로 동전을 탁 소리가 나도록 데스크에 올려놓고는 얼른 얼굴을 돌려버렸다.
나는 1 유로 동전을 받아들고 "고마워요"라고 말했지만 역시 그 여자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친구야! 이 일이 너에게는 어떻게 생각되는가.
그 여자가 너무 무례하여 몹시 내가 불쾌했겠구나, 혹은 동양인이어서 차별을 받았구나, 하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말이다.
내게 자격지심이 있었다면 몹시 기분상해하며 그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뒤돌아서서 혼자서 불평하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여자의 불친절은 내 기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나는 동전교환을 요구했고 그 여자는 내 요구를 들어주었으므로, 내가 원하는 바를 그 여자는 들어주었으니 내 요구가 충족되었다. 웃음과 친절은 다만 그 위에 덧붙일 수 있는 보너스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가 나에게 그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내 마음이 강하게 서 있다면 쉽사리 내 마음벽을 뚫고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 여자는 내내 즐겁고 흥겨웠다가 갑자기 무슨 신변에 일이 생겨 몹시 불편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수백명의 똑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식상하고 피곤했을 수도 있다. 그건 그 여자도 사람이므로 가능하고 사람이 항상 친절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 여자의 마음과 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나는 결코 알지못하므로 내게 잠시 웃음을 주지 않았다고 내가 속상해한다면 그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상대도 이해할수 있다면 즉 마음이 강해지면, 쉽게 다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주위 환경이나 사람들로부터 내 기분이 영향 받지 않고 설 수 있는 힘이 진정한 힘이고 그건 자신감에서 나온다.
나약하지만 내 좋은 친구야!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화가 날때도, 마음이 아플때도, 슬플때도, 회의에 빠져 실망할때도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친구야! 이런 문제들이 너를 찾아오거든 그걸 받아들이고 그렇게 머물 것이되 억지로 아닌 척, 괜찮은 척, 명랑하고 행복한 척 하지 말아야 한다.
슬럼프에 빠져 견디기 힘들다고 하여도, 그 속에서 헤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문제와 함께 머물 줄 아는 힘이 진정한 힘이다.
슬픈일이 있어도 애써 이겨내려 하지말고 그 슬픔과 함께 머물러보는 힘도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그리운 소꿉 친구야!
매일 일어나는 매사에 매 순간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으나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최대한 즐기도록 하여라.
겨우 빈둥대거나 할 일없어 무료한 시간이라고 하여도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고귀한 시간이고 네가 살아 숨쉬고 움직일 수 있는 살아있는 시간이므로, 또한 즐거운 일은 꼭 복권에 당첨되거나 무슨 큰 상장을 탓을때만 느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생에서 기뻐할 날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작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여라. 그러면 기쁜 날들 즉 행복한 날들이 많아질 것이다.
현재를 살도록 하여라
과거에 남아있지 말고, 미래를 위해 살지도 말고 다만 현재를 살아라.
현재를 사는 것이 곧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오늘을 대충 그리고 괴롭게 사는 것은 미래를 위한 삶이라는 건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인가.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현재를 이야기함이다.
오늘을 즐겁고 보람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며 나는 네가 미래에 행복해지라고 축복하기보다는 현재 지금 순간이 행복 하라고 축복해 주고싶다.
미래를 위해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눈을 휘둥그래 뜰 일이지만 바로 미래의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오늘을 일한다는 것 역시 그 현재가 즐거움일수 있지 않은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라.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착한 사람"이 되려 스스로 짜놓은 도덕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여라. 선한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도 않고 우리는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없으면서 안돼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다만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자신을 깨끗이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러라.
그렇게 나를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그러면 상대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또한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할때 꼭 한가지 명심하여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기적이되, 결코 결단코 남에게 고의로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실수로 해를 끼쳤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사과하여라.
남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도록 하여라.
모든 사람들 눈에 착한사람, 좋은사람,얌전한 사람, 지적인 사람 등등으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그저 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라.
예를들어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잘 보여지려 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혹 나의 단점 즉 나의 참 모습이 드러날까 염려하게되고 그건 진실 되지도 못하며 다만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는 결과이고 실망일뿐이다.
나의 단 하나뿐인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야!
이제 내가 네게 하고싶은 말의 대략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네가 얼마나 이해하였는지는 모르나 너도 나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므로 많은 부분을 공감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어떤이는 "현대의 심리학은 곧 현대사회의 종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도덕이라는 내가 세운 법에 얽매여 있었던 허상의 내가, 이제 내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는 솔직한 내 심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라고.
끝으로 글을 마치며
내가 신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제껏 도움이 되어주었고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어 주실 게스탈트(gestalt) 심리치료전문의 (psychotherapist) 박순덕 여사에게 많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귀 기울여준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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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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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30 오후 7:43:13  |
요즈음은 그야말로 월드컵 열기로 전국이 뜨겁습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정신은 바로 '정정당당'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그 선수나 팀은 팬들에게서 외면당하게 됩니다. 세계 최고의 팀 프랑스나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은 실력 뿐만 아니라 깨끗한 플레이로도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최고의 선수인 프랑스의 '지단'은 겸손함으로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겸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아닙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격언에서 저는 '벼는 익어야지만 고개를 숙인다'는 의미를 동시에 찾고 싶습니다. 즉, 익지 않은 벼가 고개를 숙일리 없으므로 자신의 분야에서 또는 인격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지 않은 경우에 그것은 타인들에게는 '건방'이나 '얌전한 사람' 이상의 의미가 아닙니다. 익지 않은 벼가 겸손을 가장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기만이며 남을 얕보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저는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생활하며 타인들도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거라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그냥 얌전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제 얘기는 겸손의 덕을 갖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높은 실력이나 인격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겸손이라는 것을 염두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함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정정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함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정정당당함은 실력이나 인격의 높낮음과 별개로 모두가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정정당당함을 오래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압니다.
브라질 축구팀은 많은 다른 강팀이 자신들의 연습장면을 공개하지 않는데 반해, '축구는 팬과 선수들이 함께 즐기느 스포츠'임을 강조하며 모든 연습장면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감입니다.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실수나 실패가 오면 또 다시 그에대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자기 발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그러한 자신감을 갖지 못했습니다만, 많은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는 시기에 신영님의 칼럼들은 정말로 유익했습니다. 갑자기 게시판에서 어떤 분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우리끼리 다 해뭅시다.우헤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곧 정정당당을 버리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부정적인 수단을 강구하게 됩니다. 올바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성공이나 목적 달성 이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그 자체(축구로 비교하자면 축구 자체를 즐기는 것)'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자신감이야말로 외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정정당당을 유지해주는 힘입니다.
정정당당의 정신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또한 바로 스포츠를 통해 많이 길러지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통해 정정당당한 자세를 가르치느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에서의 정정당당의 정신이 일상의 생활로 들어왔을 때는 남과 나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자세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남을 비방하지 않음(축구에서의 백태클은 바로 퇴장입니다)도 정정당다의 자세입니다.
'거짓이 만연하면 진리는 간결하다.'갑자기 이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말인데 제가 적어놓고 저혼자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천포입니다.삼천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삼천개의 강에 비친 빛을 따라 올라가면 오직 하나의 달 뿐'..이라는 얘기는 또 왜 나오는 겁니까. 누가 나 좀 말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나가다가 막판에 이런 식으로 흘러 제 친구들이 좀처럼 저를 진지한 사람으로 봐주질 않는군요.
어쨋든, 오늘 하루도 자신감을 갖고 정정당당히 살아갈 것을 이 글을 읽어 주신 분들과 신영님 앞에서 맹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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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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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30 오후 7:48:35  |
신영언니께! 너무나 고맙고 반갑고 기뻐서 글 씁니다.
저도 나이가 꽤 들어서 언니라고 하는게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분들이 신영아줌마라고도 부르기에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봅니다. 한국의 대전에서...오늘 처음 아일랜드 검색어를 치고 들어와봤습니다. 단숨에, 그러나 찬찬히 읽어내린 신세계 1,2는 그야말로 오늘 저의 비뚤어진 마음을 돌려놓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주말에 약간 마음 상했던 일이 있어서 출근해서도 계속 제자리를 못잡고 있었는데 신영언니 글을 보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겉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치장하며 화살을 저쪽에 돌리고 싶어도 결국엔 원인이 내게 있다는 걸 인정하기 위한 몸부림 밖엔 되지 않는다는 거, 바로 보고 나니 풀어졌습니다. 그거 인정하는 거 죽기보다 싫었는데 살자니 어쩔수가 없데요 내가 사는 길은 오직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 외엔...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즐기며 또 보람을 느끼며 다른 이에게도 큰 도움과 행복을 주는 일 하고 계신 거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언니의 글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인연 맺게 될지 모를 아일랜드를 사귀어보기 위해 가끔씩 들를 것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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