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슈아는 주미의 도시락통을 늘 부러워하였다.
주미의 등에 멘 책가방도 그렇게 부러워하였다.
그리곤 학교에서 돌아온 주미의 도시락통을 열어보고는 남겨온 물을 꺼내마시기도하고 가방에 이것저것 장난감과 책을 집어넣고 둘러메 보곤 했었다.
그 날 죠슈아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나의 영원한 아기 죠슈아가 유치원엘 간다고....
"엉덩이 닦아줘요" 라고 화장실에 앉아 외치던 아이가 이젠 "나 준비(닦을준비)됐어요" 라고 외침이 진보한걸 보니 조금은 컸나보다. 한밤중에 침대에 오줌을 싸고도 이건 실수였으니 엄마가 화낼 필요는 없다고 정색을 하며 내뱉는 적반하장으로 봐서도 정말 큰 것 같다.
내 눈엔 마냥 어리기만 한 저 철부지 귀염둥이를 험한 세상에 내보내기가 싫어 유치원엘 보내자는 데이빗의 말에도 흐지부지 아직은 너무 어리다고 만 대답했던 나였다. 이제 유치원을 시작하고 나면 학교를 시작하겠지. 그리고 학교를 시작하면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리라는 철없고 두려운 생각에, 마냥 내 곁에만 두고싶었다.
TV앞에 한나절을 앉아 바니를 보고 텔리토비를 보고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고 또 내일도 볼 그 똑같은 프로그램들의 영향을 받고있는 죠슈아를 더 이상 그냥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곁에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함께 놀아줄 만한 시간도 마련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내 곁에 앉혀 둔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TV 금지령을 내리고 유치원을 정하고 유치원 첫 등교의 바로 그 날이 왔다.
추파춥스 롤리팝의 양철통을 도시락 삼고 그 안에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와 요거트, 바나나, 음료수 하나를 넣어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등에 짊어질 가방속에는 유치원 측의 요청도 요청이려니와 혹 실수하여 바지를 버리지는 않을까 팬티와 여벌옷을 넣어주었다.
죠슈아는 몹시 즐거워 흥분하였다. 수퍼마켓에 딸린 놀이방에도 혼자 들어가길 꺼려하는 아이가 유치원엘 간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진작 보냈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다.
죠슈아의 즐거움은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흥분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양철통 도시락과 등에 멘 가방 때문이었다.
그 날 아침, 도시락통을 들고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주미를 늘 부러워하던 죠슈아는 드디어 자기만의 소유인 양철통 도시락을 들고, 오줌사태를 대비한 여벌옷이 담긴 가방을 등에 메고 부엌과 거실을 거닐다 드디어 아빠 차에 올라타서는 내내 나를 향해 그 작은 단풍잎같은 손을 흔들어댔다.
죠슈아에게는 새로운 출발이었다.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양철통에 알록달록 그림이 새겨진 예쁜 도시락을 들고다니며 배고플때 까먹는 재미같은 그런 맛 같은 것이 아닐까! 삶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살기보다는, 사실 그렇게 단순한 재미 때문에 사는 건 아닐까! 누가 더 예쁘고 멋진 양철통 도시락을 차지할 것인가의 경쟁 같은 말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살다보면 맞부딪칠 이런저런 상황에,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새롭게 꺼내 갈아입고 도전할 수 있는 비상 여벌옷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는 뭐 그런 것은 아닐까! 최고급의 좋은 여벌옷을 준비해두려는 치열한 경쟁 말이다.
반나절이 지나고 죠슈아는 유치원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했다. 주미도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귀가하였다. 나는 죠슈아를 부둥켜안고 오늘 첫날 무엇을 배웠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알록달록 새 도시락과 가방메는 재미에 유치원을 향한 아이에게 뭘 배우고 왔느냐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를 알면서도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죠슈아를 바라보았다.
죠슈아는 수줍은 듯 노래를 배웠다기에 마치 내가 어린애가 된 듯이 한번만 불러보라고 졸라댔다.
"아~구~니~우~니~차~ 아~우~니~, 아~구~니~우~니~차~ 아~우~니~...."
죠슈아는 곧잘 우스개소리로 사람들을 웃기곤한다. 물론 웃기고자 일부러 우스개소리를 지어내는것은 결코 아니며 죠슈아 나름대로 심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얼마전 죠슈아는 의사의 진찰을 받으러 가는 그라니(할머니)를 따라간적이 있었다.
의사는 그라니의 팔에 혈압을 재는 가죽부대같은것을 칭칭 감고 공기를 투입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 죠슈아가 의사실을 나서며 한 말이다.
"의사가 우리 그라니한테 바람을 넣었어"
주미는 첫딸이라는 전통적인 사명감같은 것이라도 타고 태어난것인지 아님 첫아이라는 사명감을 내가 아이에게 특별히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어찌됐든 죠슈아 하고는 사뭇 다르다.
어리광을 부리는 법도 없고 떼를 쓰는 법도 없다. 사뭇 철이든 사람말을 흉내내기까지 할때도 있으니까....
얼마 전 할로윈 축제기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유니폼이 아닌 평상복이나, 마녀와 천사를 비롯한 갖가지 분장을 하고 등교하여도 되는 그런 날이 있었다. 주미는 교복대신 평상복을 입고 등교하였으나 대부분의 교우들이 온갖 귀신분장을 하고 왔나보다. 서로들 나는 악마라는둥 천사라는둥 서로의 분장에 흥분하고 호기심에 즐거워하며 그날을 즐겼다하는데 평상복을 입은 주미에게 너는 왜 분장도 하지않았느냐고 누군가 물었나보다. 주미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팝스타' 야" 분장하지 못한것에 대한 소위 자존심에서 나온 대답인지 정말 팝스타들은 자기처럼 옷을 입는다고 생각한 것인지 나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그런면에선, 어른의 큰소리만 들어도 봇물터지듯 눈물을 빼던 어렸을 적 못난이 엄마는 닮지 않았나 보다.
동네 스포츠 대회 날, 고만한 어린아이들을 모두 집합시켜 달리기 시합을 시켰다. 주미는 저보다 대부분 큰 아이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겨우 꼴찌를 면하고 골인한 주미에게 아빠 데이빗이 눈치없는 한마디를 했나보다.
"주미! 달리기를 제대로 못 하더구나"
"그게 무슨 상관이예요. 1등을 한 아이도 과자와 사탕을 받았고 나도 똑같은 과자와 사탕을 받았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라면서 상품으로 탄 과자를 연신 입에 집어넣으며 개의치 않았다.
나이 6살의 주미는 스스로가 팝스타가 되는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마치 주위사람들을 위한 것인마냥 팝스타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 엄마아빠를 위해 쓰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감탄과 지지를 받을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믿어줘야 하는 것인지.....
한번은 학교에서 아이리쉬댄싱(민속춤) 대회가 있다고 학부모들을 초대하였다.
대회가 있던날 주미가 내게 하는 말이다.
"엄마! 트로피 받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구요" 춤을 가장 잘 추는 학생에게는 트로피가 선사된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주미 스스로도 이 트로피 받을 자신이 없으니 밑자리부터 깔고있는 품새였다. 그 날 유치부 전 학생들은 모두 작은 메달과 트로피를 받았고 그제야 안심(?)이 된 주미는 만나는 사람마다 춤춰서 트로피를 받았다고 자랑하였다.
한국에서라면 죠슈아 나이쯤엔 한글을 다 마쳤을테고 주미 나이쯤엔 책을 술술 막힘없이 읽을 수 있고, 방과후 다니는 피아노니 미술이니 등의 학원 두세 개쯤은 다니고 있어야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은 거기에 비한다면 너무나 태평하고 무엇보다도 한국아이들에 비하면 많이 뒤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을 상대로 경쟁심이나 내 만족을 위한 허영심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자유스럽고 행복한 어린시절의 추억을 갖게 해 주고싶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린사람이나 어린동물이나 내가 보기엔 본능적인 공통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맘껏 뛰어 논다]는 것이다.
얽매여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 놀고 많이 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팝스타(내겐 무척 의구심으로 다가오지만)가 되겠다는 주미. 주미의 작은 우상 Sclub7 이나 Britney Spares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주미는 온몸을 분주히 움직이며 춤을 추곤 한다. 한글자라도 더 가르쳐야 마땅할지도 모를 엄마인 나까지도 합세하여 대신 저녁이면 음악을 틀어 주미흉내를 내고 춤을 춘다.
몸을 빨리빨리 움직이며 춤을 춰야 더 멋진(cool) 춤이라고 말하며 몸을 흔드는 주미. 나는 주미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잠시 생각해 낸다.
국민학교 입학전이었으니 시골 외딴동네에 살았던 내가 아는 노래라고는 "아리랑"이 전부였던 것 같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라는 한맺힌 우리 한민족의 노래말이다.
나와 언니는 그 노래를 입으로 부르고, 몸으로는 한 팔씩 펼쳐가며 양팔을 너울거리며 느릿느릿 춤을 추웠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단에는 노래를 시킨 어른 관객에게 곱게 절하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 둘만 보면 아리랑 춤을 추라고 권유반 명령반을 내렸으며 어른말이라면 이유없이 고분거릴 당시에야 어디 춤출 기분이 아니라고 했다가야 될법이나 한 소리던가! 춤추기에 소질도, 그다지 좋아했던것도 아닌 내가 조금씩 철이 들면서 점점 누구앞에서 춤을 추워야 하는 것이 싫었었던 것 같다.
느릿느릿 팔을 휘저으며 님이 나를 버리고 가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는 가사를 뜻도 모르고 되뇌며 춤추던 나의 6살과, 오도 방정맞은 뜻 해석이 낯뜨거운 가사의 음악에 빨리 몸을 움직여야 멋있다는 6살의 주미, 분명 이것이 세대차이라는 것인가.
죠슈아의 유치원 첫날 저녁, 온 가족이 신바람이 났던지 주미 수준의 sclub7 에 춤을 추다 죠슈아가 그만 벽 모서리에 얼굴을 찧는 불상사가 있었다.
춤바다가 울음바다가 되고 그 다음날 죠슈아는 퍼렇게 멍이든 얼굴로 유치원을 향했다.
볼에 생긴 퍼런 1자 모양의 자국을 보고, 유치원 선생님이 죠슈아에게 물었다.
"얼굴이 왜 그렇지?"
죠슈아의 대답이다.
"어젯밤 춤을 추다 내 얼굴이 벽을 만났어요"
예쁜 도시락 통을 사려고, 그리고 그 도시락 안에 좀 더 맛있는 고급음식을 담기 위하여 삐걱대며 부딪치고 아파서 소리지르는 경쟁사회. 뭐 그런 아픈 부딪침들도 죠슈아의 표현처럼 그저 하나의 "만남"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리 아픈 기억일수만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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