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3  등록일 : 2000-10-13 오후 1:24:51

머클은 못말려
글 : 허신영 ()

며칠 전 오래 간 만에 친구한테서 온 전화를 받았어요. 물론 이곳 아이리쉬 친구인데요 그다지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만나는 친구예요.

내 주변 친구(여자)들은 거의 데이빗 친구들 부인 정도인데 전화를 한 이 친구 역시 데이빗 친구인 마이클 부인 "메리암" 이라는 여자였어요.

마이클은 데이빗보다 두 살 위고 별명으로는 "머클" 이라고 불러요. 당뇨병 때문인지 장기간 사용한 두꺼운 안경 때문인지 눈알이 톡 튀어나와서 내가 머클을 처음 봤을 땐 나도 모르게 개구리가 생각나서 얼마나 속으로 웃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머클이라는 별명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머클은 근 40이 다 돼서야 메리암과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전에는 얼마나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야말로 속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침을 질질 흘리고 다녔는지 몰라요. 이곳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혀에 걸려 넘어지겠다(Trip over his tongue)" 라고 말해요. 여기 아이리쉬 남자들도 뭐에 홀딱 반하면 혀가 절로 기어 나오는 건 여느 나라 남자들이나 마찬가지인가 봐요. 얼마나 혀가 길게 빠져 나왔으면 자기 혀에 밟혀 넘어지겠어요! 과장법 대단하죠? 어쨌건 머클이 그랬어요. 그런 머클은 당뇨 때문에 몸 생각해서인지 술은 꼭 기네스를 마셨어요. 기네스 stout 아시죠? 몸에 좋다는 일명 "흑 맥아주(麥芽酒)" 인데 이것은 맥주가 아닙니다. 일반 맥주와는 달리 malts(엿기름)와 볶은 보리를 혼합해서 만든 술이라고 하는데 철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한국 산모들이 미역국을 먹는 대신 이곳에선 산후 기네스를 마셨대요. 파인트(pint. 570ml)잔에 세 번에 걸쳐 술을 따라야 하는데 그건 침전 시간을 기다리느라 그러는 거고 진한 검은색이 밑으로 다 가라앉으면 위에는 아주 미세한 흰 거품이 크림처럼 떠서 보기에도 특이해요. 같은 기네스라고 해도 얼마큼 잘 따라내느냐 하는 기술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고 하대요. 애주가들은 고소하다고 하기도 하고 마실수록 혀에 인이 박인다고도 하는데 난 쓰디쓰기만 하지 별맛 못 느껴봤어요. 참고로 기네스(Guinness)는 스타웃(stout) 회사 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상표이자 회사 이름이예요. 옛날 우리 럭키 치약, 유한 락스하듯이.

하여간 그 쓰디쓰고 걸쭉한 기네스를 한 파인트만 마시면 이 친구 머클은 어디서든 (대부분 펍에서) 꾸벅꾸벅 조는 거예요. 그렇게 졸다가도 희한하게 예쁜 여자만 지나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벌떡 고개를 쳐들고 여자 뒤 꼭지가 (특히 엉덩이) 사라질 때까지 위아래 전신을 훑어보곤 하거든요. 난 그런 머클을 여러 번 보았었는데 툭 튀어나온 두 눈으로 열심히 고개까지 위아래로 끄덕여가며 여자를 보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지 몰라요. 그러다 여자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시 꾸벅꾸벅 졸아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야한 농담을 얼마나 진하게 하는지.... 어떤 농담을 하기에 그럴까 궁금하죠?

한 예를 들자면 여름 휴가 여행을 가서 (보통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곳, 스페인이나 지중해 지역) 처음 본 아가씨한테 이렇게 말한대요.

"당신한테 뭐가 어울리는지 아세요?
Do you know what looks good on you?"

그래놓고 여자가 어리둥절해 하면.
"나요,
Me on you"라고 한 대요.

영어를 직역해 보세요. on은 위 란 뜻이잖아요. 그러니 흐흠...

또 그 날 기분에 따라 이렇게도 물어본대요. 역시 여자에게
"Do you want some Irish in you?" 본래의 뜻은 미국이나 호주에 아이리쉬 들의 이민으로 아이리쉬 혈통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에서, 세인트 파트릭스 데이(St. Partrick's day 아일랜드에 삼위일체를 전하고 뱀을 말살시킨 아이리쉬 파트릭이라는 성자를 기리는 날) 같은 때 "당신도 아이리쉬(여기서 말하는 뜻은 혈통이나 분장)가 되고 싶으세요?" 라고 묻는 질문이지만 머클이 뜻하는 바는 in you를 직역해서 다른 뜻으로 한 말이에요. 해석하면 역시 "당신 안" 이란 뜻이 돼요. 그러니 이 머클 알아줘야 되겠죠?

이런걸 double meaning 이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는 이렇게 한가지 문장 안에 두 가지 뜻을 포함한 이런 농담들이 많이 있어요. 대부분 코미디 대화도 이런 식이 많아서 두 뜻을 다 알아야만 웃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영어 한마디 배웠으니 회화 연습한답시고 어디 가서"Do you want some Korean in you?" 라고 써먹지 마세요. 뺨 맞아요. 그러고 보면 머클이 이런 말하고 다니며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나로선 신기할 따름이에요.

그런 반면에 머클은 인정이 무지무지 많고 자상한 사람이기도 해요. 우리 집에 가끔 방문 할 때면 꼭 몇 백 원짜리 쵸콜렛을 사들고 와서는 애들 손에 쥐어주는 그런 잔정이 있고 따뜻한 사람이어요.

이 머클이 얼마나 또 깔끔한지 말도 못해요. 그가 입은 셔츠와 바지에는 잔 구김 하나 안 가게 항상 반듯이 다려져있고 (물론 직접 자기 손에 의한)집 정리를 얼마나 깨끗이 하는지 몰라요. 친구들과 그리스로 여행 갔을 때 친구들 모두 바닷가에 누워 썬탠 하며 즐기는데 머클만 친구들 빨랫감까지 챙겨 빨래 바구니 들고 공중 세탁소를 그 뙤약볕에 왔다갔다하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한대요.

메리암은 정신병 환자 간호사로 (psychiatric)있으면서 머클과 처음 데이트했었는데 데이빗이 메리암한테 "머클과 사귀면서 환자 심리를 연구해 보게 돼서 좋겠군요!" 라고 해서 한판 웃었어요.

메리암이 나한테 전화한 이유는 친구들끼리 주말을 이용해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을 예약하려고 하니 꼭 참석하라는 말하려고요.

그래서 지난 토요일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이곳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 무슨 얘기를 하며 떠들고 먹고 마셔댈까 궁금하기도 할 거예요.
사람 먹고사는 거야 어디 가나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문화와 생활 습관이 다르니까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해요. 때에 따라 많이 나기도 하고.

그 날 트라모어(Tramore)라는 우리 집에서 조수(潮水)지를 건너 반대편에 있는 작은 타운에 위치한 식당에 다 모였어요. 애들은 베이비 씨터(Baby sitter)에 맡기고요. 이곳은 베이비 씨터가 보편화 돼 있어요. 보통 중 고등 학생들이 많이 하는데 내 경우도 역시 이웃집 여자아이를 불러오고 한 시간에 2파운드 줘요. 그러니 하루 저녁 외출하면 10파운드 정도 드니까 1파운드를 한국 돈 천원 쓰듯 한다고 생각하면 만원인 셈이죠.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학생들 아르바이트라고나 할까요!

아르바이트라는 말이 났으니 잠깐 한소리하고 넘어갈게요. 이미 알고 있는 얘기를 쓰잘때기없이 하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원래 아르바이트는 독일어이고 뜻은 직업, 일(arbeit) 이예요. 그러니 학생들 이 하는 시간제 일을 말하는 건 정확히 아르바이트는 아니에요.

그냥 "시간제 일" 이라거나 굳이 영어로 말하고 싶으면 "part time"이라고 해야 맞겠죠! 참고로 독일어로는 시간제 일을 teilzeitarbeit 라고 한대요.

외국물 마시고 산다고 이런 저런 말은 틀렸으니 고쳐 쓰라는 건방진 소리가 아니라 다만 알고 쓰자고 한마디했어요. 영 고까우면 내가 여기서 마시는 수돗물 소포로 보내줄게요. 그럼 나랑 똑같이 외국물 마신 같은 입장이 될 테니까요. 말이 되는 소리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하여튼 다음으로 넘어가서.

식당에 우리 부부까지 포함해서 11명이 모였어요. 부부들을 나열하자면 우선 머클과 메리암, 나이젤과 마티나, 폴과 폴린, 키어린과 린, 리치, 데이빗과 신영.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나이젤은 한(漢) 약사 자격증을 2년 전에 따낸 한약사로 키가 크고 키에 맞는 육체미와 잘생긴 얼굴을 한 재미있는 친구이고 별명은 백(Beg), 부인 마티나 역시 긴 흑발 머리에 날씬하고 큰 키, 무척 섹시한 타입에 항상 재치 있는 말솜씨가 탁월하고 숙녀답고 겸손해서 내가 좋아해요. 한 3년 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송년 파티를 나이젤 집에서 하기로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린 그때 스페인으로 놀러가서 없었지만. 여기선 12월 말일 날 New Year's Eve 라 해서 파티를 많이 해요. 근데 말일 파티를 이틀 앞두고 나이젤이 크리스마스 때 먹다 남은 햄에 붙은 비계덩이를 벽난로 불에 던지는 불장난 하다가 불똥이 튀겨 옆에 놔둔 페인트 통에 불이 붙어버렸대요. 페인트는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불길이 거세게 번져 점점 옆에 있는 가구까지 타 들어가기 시작했고 소방차가 20분만에 와서 다행히 불길을 잡긴 했지만 그래도 20분 동안 훨훨 탄 거죠. 2층집이었는데 불은 아래층에서 났어도 그을음 때문에 온 집을 다시 페인트칠하고 카페트까지 다 교체했었던 일이 있었어요. 물론 파티는 못했죠. 새로 이사 간 집이었는데 덕분에 깨끗이 단장이 됐어요. 프랑크라는 친구가 하는 말이 "이봐 나이젤! 파티 하기 싫으면 그냥 말로 하지 왜 집까지 태우고 그랬어?"

프랑크는 스페인에 휴가 여행 중이어서 그 날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 친구는 친구 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괴짜예요. 자신을 스스로 미남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모습을 흠모하는 친구인데 다음 번에 이 친구에 대해서만 써 볼게요.

폴은 아담한 체격에 항상 우스개 소리를 해서 좌중을 웃기곤 하고 별명은 쿠 라고 해요. 부인 폴린은 임신 3개월 째 중인데 화장을 너무 진하게 많이 해서 얼굴보다는 화장이 먼저 눈에 띄는 여자예요. 폴이 친구들과 휴가를 갔었는데 별장을 빌려 거기서 여럿이 묵었대요. 하루는 아래층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며 술 마시고 있는데 위층에서 "쿠 쿠" 이런 소리가 나더래요. 그래서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올라가 봤더니 아무도 없고 내려오면 또 "쿠" 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서 가보면 없고 하여튼 쿠로 불리는 폴은 수 차례 오르락내 리락 했었는데 알고 봤더니 지붕 위에서 다름 아닌 비둘기가 쿠쿠 거렸대요..

키어린은 머클의 동생인데 머클의 동생답게 역시 결혼 전에(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라면 얼마나 기를 쓰고 쳐다보는지 몰라요. 우리가 스페인에 살 때 놀러왔었던 적이 있었는데 스페인 여자들이 워낙 예쁘거든요. 함께 길을 걷다 없어서 뒤를 돌아다 봤더니 자기 혀에 걸려 넘어졌는지 정말 스파니쉬 세뇨리따들을 쳐다보고 넋빠진 사람처럼 오다 넘어져서 허겁지겁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내가 보고있기가 민망할 지경인 사람. 그런 사람을 우먼나이저 (Womanizer) 라고 여기선 말하는데 나는 "넋빠진 놈"이라고 부르지만. 용케도 여자들은 한결같이 그 남자를 싫어해요. 형제는 용감했다더니.
하지만 키어린은 머클에 비하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대요. 기계 조립공으로 Bausch & Lomb(레이반 Ray Ban 썬 글라스로 유명한 미국 회사. 워터포드에 있어요) 일 하다가 이마를 좀 심하게 다쳤대요. 난 설명을 듣지 않고도 왜 다쳤는지 척 알 정도였어요. 그 회사는 여자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기계 밑에서 누워 기계를 손보고 있었는데 마침 여자들이 치마를 입고 그 옆을 지나갔더래요. 여자들의 날씬한 종아리를 본 키어린은 조건 반사였는지 무조건 반사였는지 그 여자들을 좀더 자세히 얼굴까지도 보고싶은 마음에 벌떡 일어나다가 기계에 머리를 정통으로 들이받아 버렸다는군요. 난 예상했던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재미있게 웃었는지 몰라요. 생각해봐요. 얼마나 쌤통인지.

결국 병원까지 가서 이마를 수술하고 지금은 흉터만 남았어요. 나는 지금까지도 그 흉터를 보게 될 때마다 몰래 킥킥대고 웃어요.

어찌된 게 그런 남자가 소위 부인복은 많은가봐요.

부인 린은 우선 나이부터가 10살이나 어리고요, 키어린은 키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린은 패션모델처럼 키가 크고 예쁜 여자예요. 린이 한번 외출 할 때마다 옷을 차려입고 나오면 패션쇼 장에서 모델 하다가 나와있는 사람처럼 멋있어요. 그 날도 물론 그랬어요.

거기다 여자답고 항상 친절하고 조용히 웃는 모습이 너무나 순진해 보이는 그런 아름다운 내면과 외면을 다 갖춘 여잔데 어째서 키어린같은 남자를 죽자살자 쫓아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이런 말하면 "너는 데이빗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듣기 힘든 그 먼 데까지 시집갔냐?" 라고 우리 엄마가 한마디 할 테니까 더 파고들진 않겠습니다만.

마티나, 메리암, 린 속에 내가 끼어 걸어가며 얘기할 때는 한참 위를 보고 말해야 되는 불편함이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겨우 내 소개를 이런 식으로 하다니.

리치는 엘레너와 한 쌍인데 몇 개월 전에 정식 별거하고 있는 중 이예요.
리치는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재미난 얘기를 잘 하는 목수가 직업인 사람이예요. 몇 년 전에는 루마니아에 가기 위해 성금 모아서 학교 짓는 일 도와주고 왔어요.

그 이후에 루마니아 인들이 무슨 일로 왔다가 리치랑 식사할 기회가 있었대요. 식사가 막 시작되면서 삼부카인지 뭔지 술에 불을 붙였다 끄고 마시는 술이 있는데 리치가 손님들을 환영하는 입장에서 근사하게 일어서서 "축배"하고 잔을 입에 뎄다가 입술이 불에 달궈진 술잔에 닿자 잔에 입술 껍질이 붙어 나왔대요. 그때 상황을 한번 생각해 봐요. 뜨거운 것도 뜨거운 거지만 얼마나 바보스럽고 부끄러웠겠어요. 리치는 이런 일이 무지 많이 생기는 사람이예요. 펍에서 깨진 유리잔에 털퍼덕 앉았다가 엉덩이 쳐들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그 후 2주 동안 서서 식사하고 엎드려 자고....

내가 이렇게 나열했듯 한결같이 이곳 아이리쉬들은 유머 센스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친절하기로 세계에서도 유명해요.

그 날 우리가 간 식당은 꽤나 분위기가 있는 그런 식당이었어요. 참나무로 된 식탁이나 그 위에 놓인 촛불,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연한 조명과 창틀과 구석에 놓여진 화초들. 그리고 벽에 걸린 희한한 그림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어요. 전위예술이라고 하던가요?

난 예술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예술이란 창의도 창의지만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산물이라고 생각해서 예술과 아름다움은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그러니 도깨비인지 사람인지 말도 안 되는 그림이나 무대에서 미친 사람이나 할 법한 행동들을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각자 취향이 다르니 뭐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그저 골머리 쓰지 않고 봐서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게 바로 예술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주관이고 안목이에요. 어쨌거나 그 집 식당 벽에 걸린 그림들 중에 돼지 머리가 반절 쪼개져 있는 그림도 있었고, 멀쩡한 주택가 골목에 하늘을 나는 물고기 그림이 있었고, 철사 줄 같은 것이 엉켜있는 것 같은 그림도 있었어요.

마티나가 돼지 머리를 보더니 돼지 발(족발) 먹는 얘기를 꺼냈어요.

여기서도 족발(족발만 따로 팔거나 요리된 것을 crubeen 이라고 해요)을 먹는데 소금물에 마늘도 안 넣고 예닐곱 시간 무조건 삶아 대는 거예요. 그런 대로 한 개 정도는 먹을 만 하지만 먹고 나서 김치 생각 엄청나요.

마티나는 자기 삼촌이 삶은 족발을 가져와서 온 얼굴에 기름으로 범벅을 하고 먹는 모습을 보고 구역질이 나서 혼났다고 하며 날더러 먹어봤냐는 거예요. 족발 하니 한국에서 먹던 반질반질한 밤색 빛의 족발 생각이 버쩍 드는 거예요. 마티나는 허연 기름 덩이의 족발을 생각했겠지만 나는 오돌도돌하고 감칠맛 나는 진짜 족발을 생각하고 있었죠.

얼른 "응, 좋아해!" 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내 생각은 또 한국에 가 있네요.

한국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언니한테 내가 족발 사 가지고 오겠다고 큰 소리 뻥뻥 치고 있는 없는 생색을 다 낸 후 사들고 와서 집에 와서 펼쳐 놓고 보니 새우젓을 빠뜨리고 온 거예요. 그때 얼마나 애통하고 언니 앞에서 얼굴도 제대로 못 들었었던지 그런 생각이 막 들더라구요. 나는 그래서 족발에는 새우젓이 얼마나 중요한가 잘 알아요.

이런 얘기를 어떻게 마티나한테 할 수 있겠어요.

슬프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부끄럽기도 한 얘긴데 이곳 아일랜드에서만 8년째를 살고있으면서도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친한 친구 하나가 내겐 사실 없어요. 8년씩 살았으면서도 아직까지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니 어지간히 무뚝뚝하니 붙임성 없고 멋대가리 없는 사람인가 보군 하시는 분도 물론 있을 거예요. 맞는 말인지도 모르죠.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이 뭐 일맥상통하는 머시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 통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아까도 말했듯이 "족발"하면 "새우젓"이 나오고, "풋고추"하면 상대방은 "된장"정도까지 생각이 드는 것 같은 거 말이에요.
나는 모든 비유를 먹는 것에 비하는 걸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렇게 내게 있어 먹는 것은 중요한데 그 먹는 문화가 전혀 다르고 생활 습관과 자라온 환경(추억)이 다른 사람들과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항상 한계를 느껴요. 언어 또한 그렇고요.

외국에서 10년(스페인에서 2년 포함) 살았다 하면 대부분 우리 한국 사람들 내게 하는 첫 마디가 "영어 잘 하겠네요!"라고 약간 부러운 듯 물어보는 예가 많아요. 모든 외국어가 그렇듯이 성인이 돼서 배우는 새로운 언어는 사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아실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영어를 어려워하고 있어요.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습관 예절이 다 포함돼있기 때문에 말만 배웠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상대가 어떤 얘길 했을 때 어떤 말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참 중요해요. 그래서 내겐 아직도 영어가 어렵고 또한 나처럼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은 친한 친구를 만들어 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특히 이곳 아이리쉬들은 친절하지만 보수적이어서 기존 친구나 가족 이외에 새로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좀 뜨악한 편 이예요

나는 말하다가 엉뚱한 샛길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이렇게 있는데 다시 친구들이 모인 식당으로 돌아가서.

다들 전체 요리(starter)와 주 요리(main)를 주문했고, 나는 홍합을 버터와 파슬리로 맛을 낸 전체 요리와 주 요리로는 닭고기를 주문했어요. 주문을 받는 웨이추레스에게 다들 고맙다는 말을 성의 있게 한 다음 와인 한 잔씩 들까지 받아놓고 얘기꽃을 피워요. 메리암은 결혼한 지 3년 동안 노력 끝에 드디어 임신을 해서 열심히 축하의 말들을 받아내고 있고요. 짓궂은 데이빗은 머클에게 한다는 말이 "헤이 머클! 그래 결국은 자지 않고 깨어있었던 날도 있었나 보군!" 그래서 다들 웃었어요. 머클은 좋아서 싱글벙글 이예요.

머클은 현대 "악센트"라는 차를 가지고 있어요. 머클이 말하기를 현대 차는 워터포드 내에서 운전하고 다니기는 괜찮은 차이지만 장거리 여행에는 그다지 좋은 차는 아니라고 하데요. 메리암은 자기가 운전하기는 아주 좋은 차라고 하고요. 그러면서 머클이
"데이빗! 너도 이제 차 바꿀 때 됐지?" 데이빗 넉살좋게 "이제 겨우 10년 밖에 안 됐는데!" 옆에 있던 나이젤이 짓궂게
"그럼, 앞으로 10년은 더 써야지"

마티나가 내게 말해요. "신영! 그 자켓 정말 예쁘고 너한테 잘 어울려!" "고마워, 마티나! 실은 로쳐스에서 쎄일 때 80파운드였는데 35파운드에 샀어.!" 나는 헤헤거리며 말해요.

옆에 있던 나이젤이 스테이크를 쓸면서 한다는 소리가
"데이빗! 절대 믿지마, 여자들은 무조건 다 쎄일 때 샀다고 그러니까!"

나는 까르륵대고 웃는데 마티나는 씽긋 한번 웃더니 그렇게 좋은 옷을 싸게 주고 샀다니 정말 잘 샀구나.

토요일 저녁이어서 인지 식당은 꽉 찼지만 다들 조용한 편 이예요. 가끔씩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 이외에는 큰 소리로 떠들거나 "여기 뭐 갖다 줘요!" 라고 소리지르는 사람 없어요. 뭐가 필요할 때는 웨이터나 웨이추레스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 얼굴을 조금 내밀고 "Excuse me"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정중하게 필요한 것을 부탁하고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가져오면 가져다 줘서 또 고맙다고 인사해요. 식사 중 웨이추레스가 와서 "음식은 맘에 드시고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라고 물으면 음식이 설령 입에 맞지 않더라도 "네, 맛있어요. 고마워요" 라고 말해요. 음식이 워낙 맘에 안들 경우에는 공손하게 다른 음식으로 가져다 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은 극히 드물어요.
"이따위로 음식 해놓고 돈 받아 쳐 먹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나중에 디져트로 파이나 케잌 따위를 따로 주문하고 (커피나 홍차는 디져트가 아닙니다) 맨 나중에 커피나 홍차를 마신 다음 계산서를 부탁해요. 물론 배부르면 디져트나 그 외 것은 사양해도 무방해요. 계산서를 가져오면 각자 분배해서 돈을 내고 웨이추레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계산서와 돈을 줘요. 팁은 직접 불러서 티내며 주지 않고 영수증이 담긴 접시 위에 슬며시 담아놓고 나와요. 나올 때 역시 웨이추레스를 향해 "Thank you very much, Good bye"라고 말해요.

"내가 내 돈주고 사먹는 밥인데 당연하지 고맙긴 뭐가 고마워, 손님은 왕이니까 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고맙다는 말에 음식값 깎아주는 것도 아니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말을 너무 너무 너무 안하고 살아요. 돈 드는 것도, 시간 걸리는 것도, 말하기 힘든 것도 아닌데 습관이 안돼서 그래요.

식사를 마치고 식당 옆에 있는 아주 조그맣고 오래된 펍(pub)에 들어갔어요.
주인 할머니가 열심히 맥주 탑(tap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요)을 잡고 파인트 잔에 술을 따르고 있다 우리가 들어가니 깜짝 놀라하는 거예요.

이 펍은 하도 오래된 펍이어서 단골 노인 분들만 오는데 젊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니 위협감을 느꼈나봐요. 할머니 옆에 아저씨(사위)가 우리를 받아줘서 한잔씩들 하게 되었어요. 대부분 맥주를 마시지만 머클은 여전히 기네스를 마셔요. 하지만 더 이상 졸지는 않는군요. 졸았다간 메리암한테 집에 가서 되게 혼나나봐요. 조는 버릇이 결혼하고 나서 싹없어졌거든요. 남자들한텐 결혼이 좋긴 좋은가봐요.

숙녀들은 싸이더(Cider 사과술, 알콜 농도를 무시 못해요. 이름은 같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사이다가 아니에요)나 럼(Rum)을 콜라에 섞어 마셔요. 주로 바카디 콕(Bacardi Coke). 나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어서 겨우 오렌지 쥬스를 마셔요. 이런 저런 여행 갔던 일, 회사일, 농담 이런 식의 살아가는 얘기들을 해요. 작은 펍은 꽉 찼지만 누구 하나 술에 취해 큰소리로 떠들거나 욕지거리 하며 싸우는 사람 없어요. 웅성웅성 얘기 소리 웃는 소리가 전부이고 12시쯤 되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집으로 향해요. 끝날 시간쯤에 주인 할머니가 우리 자리에 와서 앉았어요. 이름이 마타(Martha 성경에 예수를 영접하고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는 마르다로 나오죠) 자기가 젊었을 때(1940년대) 있었던 일들, 2차 대전 전시 이야기도 하고, 물론 아일랜드는 전쟁 국가가 아니었지만 영향은 있었지요. 보기에는 60을 갓 넘었으려니 싶었는데 81살이라는 거예요. 우리 모두 놀랐어요. 목에 진 주름은 나이를 못 속인다고 하는데 할머니 마타는 목에 잔주름 하나가 없었어요. 내가 물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좋을 수 있는지를. 비결은 햇볕에 나가기를 꺼려하고 밤마다 더운 스팀 타올로 얼굴을 닦고 잔데요. 또 마타는 하루에 4시간 정도밖에 안 잔대요. 거기다 담배를 무지 많이 피우시더라구요. 펍 문닫고 나면 유리창 닦고 청소하고 새벽 3시에 식사하고 그리고 잠자리에 든다고 해요. 마타랑 얘기하다보니 새벽 1시가 넘었어요. "Good Night Martha!"하고 그 펍을 나오면서 우리 모두 마타 얘기로 화제를 모았어요. 친구들은 우리만 빼고 다들 시내에 살아요. 음주 운전 때문에 키어린과 린은 택시를 타야 할 입장이어서 우리가 바래다주기로 했어요. 쿠와 폴린은 먼저 갔고 다른 친구들은 메리암이(임신 중이어서 금주 기간) 운전하는 현대 악센트에 탔고요.
물론 나는 술을 안 마시니까 외출한 날의 야간 운전은 꼭 내 차지예요. 차 속에서 키어린이 내게 묻네요. 운전 면허 시험 봤느냐고. "응, 봤어, 떨어졌어." 나한테 잘 보이고 싶었는지 운전 시험에 처음 떨어진 사람들이 운전을 더 잘 한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그러내요. 내 옆에 앉아 있던 데이빗과 뒷좌석의 린, 입을 모아 "무슨 소리, 나는 처음에 척 붙었어." "나도".

나도 질 수 없어 한마디하고 지나가요. 트라모어에서 워터포드까지 난 고속도로를 달리며 주도권을 쥔 사람답게 레놀의 운전대를 잡고 폼잡은 목소리로 "키어린만 빼고 다 내려"

린이 또 말해요. "신영! 어느 챠트에서 제일 섹시한 여자로 브릿트니 스페어즈(Britney Spears) 가 뽑혔대. 말도 안 돼, 남자들은 보는 눈도 되게 없어 그치"

"맞아, 린! 고양이 같이 생긴 게 뭐가 섹시하다고"

"잠깐 린! 남자들이 보는 눈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 키어린이나 나나 보는 눈이 좋아서 이렇게 근사한 부인들을 맞이했는데" 데이빗이 한소리 하네요. 린이랑 나랑 약간 비웃는 듯이 "하하"

린이 또 말해요 "근데 신영! 들었니? 미국에 백만장자가 7백5십만 달러를 주겠다고 브릿트니한테 하룻밤만 같이 자자고 했대. 그런데 브릿트니가 싫다고 했대"

내가 말해요 "멍청하긴, 그렇게 숫자(돈) 개념이 없는 계집애 일줄 이야"

다들 깔깔대고 웃어요.

"나는 돈 안 줘도 그런 제안 받아들이겠는데" 키어린이 기어이 한마디해서 또 웃었어요. 하긴 흉터 난 이마 생각하면 뭔 짓인들 못할까....

지난주 토요일은 그렇게 해서 보냈어요.

오늘은 Britney Spears의 I still believe 한번 들어볼까요?

글을 마치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할게요.

대부분 영어로 된 외래어를 우리말 중에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는데요, 그런 말들을 실제 상황에서 영어로 대화 할 때에도 당연 우리가 써오던 식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사실 많아요.

지난번 글에 들어가 있는 "슈퍼마켓"이나 위 글에 쓰인 "썬 글라스" 같은 말이 그런 예인데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표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썼긴 했지만 다 알고 있을 줄 알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서 설명해 보려고 해요.

"썬 글라스"는 역시 알면서도 실수 할 때가 많은데 "썬 글라씨스"라고 발음하세요. Sun Glass는 단수여서 안경알이 하나뿐이잖아요.

또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가게되면 절대 슈퍼마켓이나 슈퍼맨이라고 발음하지 마세요. 상대를 웃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셔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수퍼마켓" 혹은 "수퍼맨"이라고 발음하고 특히 "수" 할 때는 "쑤"에 가깝게 좀 강하게 발음하세요. 다른 언어도 그렇지만 특히 영어는 발음에 굉장히 민감해서 조금만 틀려도 웃음거리가 되거나 뜻이 전혀 다른 말로 변해버려요. 영어 문장에서 동사와 명사의 위치가 바뀌거나 전치사를 빼먹어도 어느 정도 이 사람들 알아듣지만 발음이 틀리면 아예 감도 못 잡을 정도여서 대책이 안 서요. 가령 Fried Rice를 말할 때 "라이스"(Lice, 머리 이)라고 혀를 천장에 대고 발음하면 볶은 밥이 아니라 "볶은 이"가 돼 버려요. 멀쩡한 사람 미개인 되기 너무 쉽고 억울하죠? 혀 쪼금 천장에 대고 발음했다고 사람 병신 만든다고 생각하면 정말 치사해요. 거기다 Fried를 프라이드라고 발음했다간 "쫀심있는 이" 가 돼 버려요. 생각만 해도 웃기죠? 식당에 가서 "자존심 있는 이로 주세요" 하고 주문한다면.

근데 이런 예는 무지 많아요. 참고로 R이 들어가는 단어 발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혀가 천장에 닿지 않도록 만 하면 될 거예요. Fried에서 F는 프와 흐의 중간 소리.

정말 감당하기 힘든 발음이네요.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어요. 꽤나 많이 조잘거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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