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2  등록일 : 2000-10-06 오후 1:14:05

차는 차일 뿐 이예요
글 : 허신영 ()

지난번에는 비가 많은 나라라는 것과 먹는 얘기하다가 말았는데요.

오늘은 먹는 것하고는 좀 거리가 먼 것 같은 우리 집 승용차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오늘 슈퍼마켓에 식료품 쇼핑을 갔다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서 바라다 보게된 우리 집 차를 보고 갑자기 승용차 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다른 집들도 그렇겠지만 역시 우리 집도 승용차는 가족의 일원이나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데요, 더구나 외딴 시골이어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 승용차 소개를 잠깐 하자면 프랑스에서 89년에 태어났고 적 포도주색의 이름은 Renault 19 이예요. 그러니까 11살 째 되는군요. 한국 같았으면 진작에 바꿨겠다구요?

말해놓고 보니 차와 여자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보나마나 물론 그건 남자들이 지어낸 말일 텐데 그리고 그게 정말 그런가요?
으으음.

거기에 대해서 더 말하려다간 내가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을 못 할 테니까 일단락 하기로 하고.

쇼핑을 마치고 슈퍼마켓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향해 트롤리를 밀며 레놀을 향해 걷고 있었어요. 왜 커다란 주차장에 주차해 놓으면 나올 때 어디다 했는지 두리번거리게 되잖아요! 근데 우리 집 레놀은 다른 차들에게 싸여 숨어있지 않는 한 그럴 염려가 없어요.

멀리서도 누구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특이하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멋있길래???

그게 아니라 너무 보기가 흉해서요.

차 양옆 몸체에 붙은 긴 알루미늄 판데기가 왼쪽은 아예 다 떨어져 나간데다 찌그러지고 그 찌그러진 자리에 녹이 슬었어요. 문도 제대로 안 닫치고 그 뿐만이 아니에요. 왼쪽 날개부분은 지난번 사고 때 완전히 날아가 버려 폐차된 다른 은색 레놀의 그 부분만 어떻게 데이빗이 주어다가 때웠어요.

그래서 우리 집 레놀은 본의 아니게 퀼트처럼 패치워크가 돼 버렸어요. 차안은 어떻냐구요? 그건 물어서 뭐해요.

물론 성할 리가 없지요. 기어 스틱의 봉오리가 자꾸만 떨어져나가 접착제로 붙여쓰다가 그래도 계속 떨어져 아예 봉오리는 떼어버리고 스틱만 남겨 둔 채 사용하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그러니 멀리서도 눈에 띄게 안 생겼나...

작년에는 앞 범퍼가 떨어져나가 범퍼 없는 곳에 종이로 번호판을 만들어 써 붙여 가지고 다녔어요. 콘프레이크 다 먹고 난 상자 오려서 안쪽에 검정 싸인펜으로 번호를 썼는데 정해진 규격에 쓰다보면 앞 글자는 커다랗고 뒤에 가서는 작아지는 현상이 있잖아요. 다시 이번에는 고쳐 잘 쓸까 하다가 하루만 그렇게 해 가지고 다닐 걸로 생각하고 그냥 말았는데 그 조잡스럽고 창피스런 종이 번호판을 한 달은 달고 다녔나봐요. 그땐 내가 보기에도 정말 살벌했어요. 차고에 가서 고치면 되겠지만 왼쪽 날개 수리를 포함한 이런 일들을 데이빗은 직접 해 내거든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하려다가 그렇게 늦어진 거죠.

이곳 검소한 아일랜드에서는 10여 년 된 덜거덩거리는 차를 운행하는 사람들이야 워낙 많지만 오죽하면 이곳 사람들도 입을 반쯤 벌리고 두 번씩 쳐다보았겠어요!

레놀이 그렇게 수난을 겪은 데는 주인을 잘못(?)만난 탓이지요.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물론 중고였었지만 멀쩡했고 제법 번쩍번쩍 윤도 났었는데 내가 운전을 배운답시고 결국은 레놀을 그 꼴로 만든 거예요.

그냥 도로 위를 달리면 될 것인데 왜 옆(인도)에 가만있는 쇠기둥은 들이받고 남의 집 벽을 건드리고 그러며 다녔는지 나도 내가 참 한심스러웠어요.

길거리에서 폼잡고 걷다가 넘어져봐요. 누가 봤나 창피해서 무릎 아픈 건 느껴지지도 안찮아요. 다행히도 아주 작은 사고들이어서 아무도 다치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얼마나 창피하고 자신이 없어지는지 몰라요. 다시는 운전 안 하겠다고 실의에 찬 척(?!) 코를 석자쯤 늘여 빼고 있으면 (데이빗 보기 미안해서 작전상 더욱더) 데이빗은 늘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곤 했어요.

"차는 차 일뿐이고 사고 낼까봐 겁나서 운전을 못하겠다면 밖에 나가지도 말고 집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구요.

나는 아직까지 운전면허는 따지 못 한 채 가면허로 다니고 있거든요.

영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곳에서 가면허를 가진 사람이 차를 운전할 때는 L(Learner의 약자)이라고 빨간색으로 쓰인 스티커를 차 앞뒤에 붙이고 다녀야 해요. 가끔씩 주미가 스티커를 떼서 뒤집어 붙일 때면 ㄱ자로 변한 채 다니기도 하지요. 주미 말이 났으니 말인데 요 지지배가 내가 기둥을 들이받던 날 차안에 있었거든요. 다들 무사했지만, 어쨌든 나는 주미에게 간곡히 말했어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고. 특히 길 건너 사시는 시어머니 아일린에게 말하지 말라 했더니 글쎄 보자마자 엄마가 사고를 내서 유리창도 깨지고 차가 망가졌다고 광고를 하는 거예요. 그때가 겨우 두 살 반이었는데 데이빗 회사 바래다주고 나오는 길에 그랬거든요 근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침저녁 사고지점을 지날 때면 꼭 한마디씩 하는 거예요. "엄마, 여기서 엄마가 차 사고 냈지? 조심해야 돼"

물론 지금도 여전히 L자를 붙인 초보지만 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괜한 기둥 들이받고 다니지는 않으니까요.

정작 하고싶은 말은 난 이 레놀에 아주 정이 들었어요. 정말 눈에 띨 정도의 외모를 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까지도 정이 들어 버렸나봐요. 물론 좀 창피할 때도 있지만.

참! 한가지 한국에서 큰 호텔에 가면 소형차는 주차를 못 시키게 한다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난 이말 듣고 얼마나 흥분하고 괜한 말 한 사람한테 열을 올렸는지 몰라요.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사람의 인격이나 기준을 승용차에 두다니요. 차는 차일 뿐인데...

데이빗도 그렇고 나도 우리 집 아이들까지도 레놀에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데이빗이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인사말처럼 차 안 바꾸느냐고 물어오긴 하지만은요. 특히 한국사람은 더 자주 물어와요.

가끔씩 데이빗이 출장하게 될 때면 렌트카로 집에 올 때가 있는데 그걸 본 동네 사람들 입이 벌어지며 한결같이 "와우~ 데이빗 쉬한 드디어 차 바꿨다" 그래요. 하긴 그것도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안 속아요.

아직까지 운전하는데 불편함 없이 잘 움직여 주고 차가 해내야 할 목적을 잘 이행하고 있으므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요.

지금도 데이빗은 이렇게 말해요.

현재 레놀도 아침마다 시동이 잘 걸리고 잘 달려 회사까지 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새 차를 사더라도 정확히 레놀이 했던 일들을 그대로 해 낼 것이니 새 차던 헌 차던 다 똑같은 목적 달성을 해내는 바에 무엇 하러 굳이 새 차를 사겠느냐구요.

일주일에 세 번 아침저녁으로 데이빗을 바래다주러 갈 때마다 회사 주차장에 세워진 사원들의 차를 보며 웃음이 나와요. 왠 웃음이냐구요!

데이빗은 회사 중역쯤 되는 위치에 있지만 하다 못해 공장의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조차도 데이빗보다 훨씬 더 좋은 차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허드렛일 하는 사람이 좋은 차 가지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렇다 이 말이에요.

여북하면 그 사람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데이빗에게 그 지위로 회사차를 신청해 보라고 권유하겠어요. 그러면 데이빗은 이렇게 대답한데요. "아, 물론 회사차를 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나는 차 값 대신 그 돈을 다 주식에 넣어놓았지. 차는 사는 즉시 가치를 잃어버리지만 주식은 넣어 놓는 날부터 값이 상승해서 지금은 꽤 많이 모아졌으니까." 물론 그건 농담으로 하는 소리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말인줄 알고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와우~ 무서운 놈" 이런 표정을 짓는데요. 하하.

참고로 데이빗은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에 근무해요.

올해부터 아일랜드에 승용차에 대한 새로운 법이 생겨났어요.

승용차 테스트 법인데요, 간단하게 말해 운전하는데 아무런 지장 없이 안전한가의 여부를 테스트하는 건데 여기에 통과를 해야지 운행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우리 레놀은 테스트 운전해볼 필요도 없이 겉모습만 보고도 떨어질게 뻔한데 하긴 이제 바꿀 때도 되긴 했죠?

요즘은 어떤 차를 살까 데이빗이 궁리 중에 있으니까 테스트 용지가 나오기 전에 빨리 바꿔 놔야겠어요. 정든 레놀을 버리고 새 차를 살거라 생각하니 약간은 슬프고 사실은 겁이 더 나요. 레놀이야 워낙 상처투성이인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으니 부담없이 끌고 다닐 수 있었는데 새 차는 잘못해 긁히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벌써부터 염려스러워서요. 데이빗은 별 걱정을 다 한다고 하면서 차는 차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비록 ㄱ(L 하긴 그거나 그거나)자는 여전히 달고 다니지만 내 운전 실력도 조금은 향상 된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실력인지 교만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 같았으면 나를 제외한 다른 운전자들은 다 옳다고만 생각했었고 실수를 하더라도 당연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봤었는데 (왜냐면 내가 그러니까) 요즘 들어 내 앞에서 얼쩡대며 헤매거나 신호등에서 제대로 못 빠져나가는 차가 있을 땐 나 혼자서 중얼중얼 잔소리를 해 댄다니까요. 개구리 올챙이쩍 모른다더니 내가 그짝이네요. 그것도 L자 붙이고 그러니 더 가관이죠?

오늘은 백 미러를 통해 뒤 차 운전자의 얼굴을 훔쳐보다가 혼자서 막 웃었어요. 그 남자가 머시라고 중얼중얼 대길래 옆 좌석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나 보다 했거든요. 근데 옆 좌석이나 뒷좌석에도 아무도 없고 혼자서 그러는 거예요. 입 모양을 가만 봤더니 쭉 늘여 빼기도 하고 오므리기도 하며 인상을 찡그리는 듯 한 폼을 보아하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하고 있구나 싶더라구요. 물론 그 사람 차안의 음악을 들을 수 없으니 입만 빵긋빵긋 한 모양이 얼마나 웃겨요. 한국에는 쇼 프로그램들도 많은데 요즘 젊은 아이들 날뛰며 노래부르는 장면 나올 때 소리를 완전히 줄이고 화면만 보세요. 얼마나 웃기는지. 아니면 헤드폰 끼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사람모습이나.

눈치 안 채이게 끽끽대며 웃다가 도대체 어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까 궁금해 졌어요. 뉴스를 듣고 있었던 나는 그래서 얼른 음악이 나오는 방송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봤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은 이 노래를 인터넷에서 찾아 한번 들어보세요.

Foreigner 의 I've been waiting for the girl like you.

우리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는 노래인 것 같아요.

나도 좋아하는 노래예요.

내 뒤차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운전자 아이리쉬도 물론 좋아하는 노래겠죠?

다시 차 얘기로 돌아와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번쩍번쩍 윤이 나는 새차들로만 메워진 도로를 보며 정말 나는 매번 놀라워해요. 우리 한국인들이 이렇게 부유해진 건지 아니면 분에 넘치는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사람은 차는 3년에 한번씩 갈아줘야 된다고 그러면서 4년 된 차를 고물취급하며 부끄러워하더군요.

그렇지만 여자도 3년에 한번씩 갈아줘야 된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새 옷, 새 차, 새 집, 신식 새것... 글쎄요, 나는 구식 생각을 가진 사람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새것도 좋지만 왠지 손때도 묻고 정도 들고 추억이 담긴 그런 옛 것들이 부담 없이 더 좋아요.

가치의 비중이나 기준은 꼭 새것에 더 많거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진정한 자존심과 배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함께 생각해봐요.

워터포드에서 허 신영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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