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번호 18 |
등록일 : 2000-11-23 오후 4:17:49 |
 |
| 미남 의사, 추남 의사 |
 |
| 글 : 허신영 ()
|
매년 이맘때만 되면 고정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 꼴도 보기 싫은 손님, 너무 미워서 종족을 말살시키고 싶은 손님, 하지만 난 그 손님이 차라리 나에게 찾아와 줬으면 싶다.
내 몸 속에 그리 길지만 않게 머문다는 조건 하에 그를 맞이하고 싶다. 내 몸이 좋아 더 길게 지내야겠다고 생떼를 쓴다고 해도 나는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 손님이 차라리 내게 머물렀다 갔으면 좋겠다.
숨넘어갈 것처럼 콜록대는 주미의 기침.
밤이면 듣기에도 쓰라린, 온 식구들 잠 못 이루게 하는 주미의 기침.
감기로 시작돼 천식으로 끝나는 주미의 기침.
그놈의 손님이 차라리 내게 찾아와 줬으면 내 마음만큼은 덜 아플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또 항생제를 먹여야하나!
"그래 오늘은 닥터 윌슨에게 가보자꾸나"
"Mammy! Dr.Willson is a clever and a good man.
He will make my cough better and he gives me and Joshua stickers.
Joshua! If you are bold, the Doctor will not give you stickers.
Isn't that right Mammy?"
"그래 그래, 맞아!"
닥터 윌슨은 진찰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I have been to visit the Doctor" 라고 쓰인 곰이나 토끼 따위가 그려진 스티커를 가슴팍에 붙여주곤 했었다.
윌슨은 그 동물 스티커 중에서도 순서대로 떼어주는 법이 없이 항상 제일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되는 스티커를 골라 붙여 주었다. 그래봤자 곰, 토키, 사자, 하마중에 하나였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느라 짐짓 심각한 의사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아이들에겐 그 스티커가 단연 주된 목적이고 최고였다.
특히 죠슈아는, 의사를 찾는 이유는 스티커를 받기 위함인 줄 알고있었다.
`그래, 그 스티커 비싼거다 잘 붙이고 있어'
나이가 지긋이 든 닥터 윌슨은 키가 작고 몸에 비해 목소리가 유난히 큰 사람이었다. 의사라는 낌새를 전혀 챌 수 없는 겸손하고 자연스런 사람이었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는 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만 같지만, 나를 무안하게 하기도 했었다. 아이 둘을 내 작은 몸속에서 빼어낼때마다 정신을 빼놓는 마취를 하고 났더니 정말로 정신이 나갔는지 머릿속이 머엉~해지곤 했었다. 어느 날 윌슨에게 진료를 받고 뭔가 질문을 하려다 그만 내가 뭘 질문하려고 했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나는 질문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노라고 말하자니 얼마나 나를 정신빠진 여자로 볼까 싶어 쭈삣쭈삣 더듬거리다 다음에 묻겠노라고 얼버무렸다.
친절한 윌슨은, 한사코 괜찮으니 말해 보라고 재촉하던 끝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뭔지 알겠어요. 피임을 물어보려고 하는거죠? 피임 방법은 콘돔부터 시작해서....." 윌슨의 말은 그날따라 확성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하필 콘돔이라는 단어에서는 볼륨을 최대한 올린 것 같았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하튼 몸둘 바를 몰랐었다. 내가 하려는 질문은 단연 그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 아니다라는 말도 못한 채, 제발 대기실 환자들이 듣지 않았길 바라며 얼른 진료실을 빠져나왔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내가 그때 하려던 질문을 생각해 내지 못했지만 그때 윌슨의 우렁찬 목소리는 기억에 생생하다.
GP(General Practitioner)인 우리집 주치의, 닥터 윌슨에게 (주미의 기침 때문에) 그래서 그 날 그렇게 찾아갔으나 더블린에 수세민지 세미난지를 참석 중이라고 한다.
길 건너 Dr.맥케난한테 가보라는 비서의 말대로 대롱대롱 아이들을 달고, 기침도 달고 의사댁에 들어섰다.
좁은 응접실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찰대로 차 있었고 적어도 두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 그 의사는 무료 보험가입자들을 상대로 진료를 해서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나중에 시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이었다.
진료비를 25파운드나 내고 그 비좁은 응접실에서 콜록대며 두시간이나 넘게 서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은 무료 보험에 해당되지 않으니 단연 우리 가족은 비싼 진료비를 내야한다.
바로 이런 게 진짜 공산주의 이론인데.....
이왕 돈 내고 진료 받는 거, 저 새로 지은 카우보이 닥터들이 모인 삐까번쩍한 빌딩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GP의사들이 여럿이 모여 진료를 하는 곳인데 얼마 전 새롭게 빌딩을 짓고 일반 의사들보다 진료비를 5파운드나 더 비싸게 받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카우보이 닥터라고 불렀다.
카우보이처럼 (돈을) 쓸어간다고 해서 붙은 말인 것 같다.
나는 또 대롱대롱, 콜록대는 손님을 위해 그 카우보이 빌딩에 들어섰다.
주치의를 제쳐두고, 지난번 여의사를 일부러 찾아왔던 일이 있었기에 나의 기록부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답게 모든 것들이 깨끗하고 신선하다못해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북적거리는 환자들도 그곳엔 없었다.
"의료 보험에 가입돼 있나요?"
"네, VHI가 있어요. 하지만 상관없잖아요. 진료비는 어차피 고스란히 치러야 하는데,"
일년치 진료비와 약값을 합친 합계가 200파운드를 넘을 경우 보험금을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험금 신청하려고 육장 드나들 수도 없고, 뭐 전액 환불이라면 또 모를까. 어차피 몇 퍼센트만 받을것이 뻔한데...그놈의 절차는 또 어떻고....앓느니 죽지.... 필요도 없는걸 뭣하러 또 물어봐, 지난번에도 물어보더구만. 아마 내가 공짜 손님인줄 알고 물어봤나부지?.... 정말 카우보이들이라니까.....
"닥터 쟉슨이 진료 할겁니다. 저쪽에서 기다리시오"
<지난번 봤던 여의사 닥터 샨텔 막나마라를 부탁할걸....뭐 상관없지 다 같은 항생제일텐데, 근데 닥터 쟉슨이라...마이클 쟉슨하고 무슨 먼 사촌지간은 아닐까!!>
나는 내 그림자를 두 개, 아니 세 개 나 달고, 현관문 옆의 쟉슨 진료실 문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Dr. Jackson 이라고 써붙은 문이 열리고 문패의 주인공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환자를 인도해 들어가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뭔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힐끔보다 좀 길게 자세히 나를 훑어보고는 새로운 환자와 함께 천천히 들어갔다.
<동양여자 처음봤나! 뭘 저리 쳐다보고 그러는거야? 근데 나쁘진 않군, 꽤 잘생긴 미남 의사인걸, 젊고 매력적인 저런 의사한테 진료를 시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성당에도 잘생긴 신부가 설교하는 곳엔 언제나 신도들이 미어터진다잖아?, 다음이 내 차례일 테니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흐흠, 그러고보면 나도 이제 농후한 아줌마가 다 된 건 틀림없어, 젊은 남자가 좋단 말야.....허험>
"미세스 쉬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죄송합니다만 Dr. 막나마라가 진료 할겁니다. 바로 저쪽이에요. 거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제기랄, 김 빠지게서리, 이왕이면 미남의사한테... 잘됐다 싶었더니 그 꼴을 못 보는구먼! 하는 수 없지, 근데 이 집은 막나마라 성씨 가진 의사가 세 명이나 된다 말야>
"닥터 퍼거스 막나마라와 샨텔은 부부이고 퍼거스와 코오막은 형제지간이지" 시어머니가 나중에 또 말해줬다.
털레털레 그림자들을 앞세우고 이번에는 Dr. Macnamara라고 쓰여진 문앞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머리가 흰 의사가 문을 열고 "주미 쉬한" 이름을 불렀다. TV프로그램에 가끔씩 나오는 낯익은 얼굴이다.
나는 또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롱대롱 달고 들어가 앉아 자초지종 병세를 설명한다.
웃통을 벗은 주미의 작은 흉부에 청진기를 여기저기 돌려가며 대보는 의사.
<의사가 돼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나도 저 청진기를 귀에 꼽고 뭔소리가 어떻게 들리나 한번 들어보고 싶단 말이야. 한번 들어보자고 빌려달랄 수도 없고...>
"천식의 원인은 수도없이 많다지만 제 아이의 경우는 감기로 시작되곤 합니다.
항생제로 일단 저 기침을 없애야 할텐데 Inhaler도 써야 됩니까?"
머리가 하얀 의사는 흰머리만큼 나이가 들은 것 같지는 않았으나 의사 특유?의 거만함이 고스란히 절여있는 중년 남자였다. 내가 하는 발음을 다시 반복해서 천천히 말해주는 친절함은 결코 친절함으로 받아들이기가 왠지 헛다리짚는 것 같다. 나같이 자존심인지 자만심인지 강한 여자, 나도 조금 심각한 듯 딱딱한 듯 되도록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꼿꼿이 질문했다.
<당신 원래 말하는 속도대로 빨리 말해도 내 알아듣는데는 문제없소, 모국어로 말하는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하긴 모국어도 아니지만, 그래봤자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영어밖에는 없을 것 같구먼, 거 되게 거만한 척 구네. 의사가 뭔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같잖은 사람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당신한테 돈을 주는 입장 아니겄소? 내 돈 먹으면서 뭔 거만이야....하긴 거만한 사람이라면 꼴못보는 이런 내 성격도 둥글둥글하게 빗어지려면 멀었어>
흰머리 의사는 처방 적은 종이를 건네주고 이제 진료가 다 끝났으니 나가보라는 듯, 무슨 서류인지를 들여다보느라 고개를 처박고있다.
진료실을 나오며 "탱큐 닥터"라는 말에 조금 과장되게 힘을 주어 말했다.
<예의라고는 모르는 무식한 사람, 아까 그 잘생긴 젊은 의사한테만 갔어도 친절했을텐데 모르긴해도 말야. 거 하필 접수실 여직원은 눈치도 없이.....>
현관문을 나서며 옆에 Dr. Jackson이라고 쓰여진 닫힌 문을 힐끔 쳐다보고 카우보이 빌딩을 나섰다.
약국에 가서, 흰머리가 적어준 처방을 내밀고 약과 Inhaler를 받아들었다. 16파운드, 그러니 오늘 의사와 약값으로 46파운드나 들었단 말이다. 그놈의 잘난 손님 덕분에....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점점 차도가 있는걸 보니 생돈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 효과도 없었다면 그 흰머리 안 남아날지도 몰라.... 하긴 난 뒤에서 궁시렁궁시렁 말이나 많았지 뒤가 물러서, 누가 큰소리로 뭐라고 하면 꼼짝도 못해.>
"데이빗! 오늘 카우보이 빌딩에 갔었는데, 거기서 거의 미남 의사한테 들어갈 뻔했다가 대신 추남에 흰머리 무례한 의사한테 갔다왔어. 세상에 환자 손님이 나가는데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람이 어딨어? 안그래?, 그 꼴 보려고 30파운드나 냈나 싶고....!"
"다행이지, 미남 의사한테 안 가길 말야. 주미는 제쳐놓고, 괜히 아프지도 않은 몸을 여기에 혹이 잡히네 어쩌네 옷 들춰가며 봐 달라고 의사한테 생떼를 썼을지도 모르잖아?"
"킥킥킥"
"하하하"
<그러고보니 그 흰머리, 닥터 막나마란지 막머거란지 애들한테 스티커도 안 줬네.>
|
Loading time : 0.063 sec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