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15  등록일 : 2000-10-31 오후 3:57:53

" 생 일 "
글 : 허신영 ()

세상이 많이 바뀌었던가, 내가 많이 바뀌었던가, 아니면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던가 일게다.

부끄럽게도 한때는 어린아이들과 여자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때가 우리 시절(역사)에 있었다. 그때가 꼭 옛날만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어린아이와 여자 생일은 무시되었었던 일이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역시 내 생일이란 없었다. 내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날짜를 읽을 줄 알고부터라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내 생일을 나 혼자서 기억해 놓고 혹시나 하고 기다렸을 뿐 그냥 지나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내 생일은 오히려 실망스럽고 서러운 날이었었다. 그렇게 한번도 내 생일이랍시고 잔치를 벌여본 적도 변변한 선물을 받아본 적도 없었건만 이상하게도 난 내 생일이 특별한 날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했다.
그 고정관념을 그래도 실망시키지 않은 사람은 데이빗이었다.
나 혼자서나마 지켜왔던 내 음력 생일은, 해마다 양력 달력에 매번 다른 날짜에 얹혔고, 이미 철들은 나도, 올해는 이날이 내 생일이요 라고 광고하기도 낯간지러워 아예 양력으로 생일을 고쳐놓았다.

어언 12년전 데이빗을 만난 이후부터는 그렇게 해서 내 생일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챙겨 먹게되었다. 시어머니 아일린도 시누 메리도 생일 카드와 작은 선물들을 포장해 내게 전해주었고 데이빗은 번번이 커다란 플라워 부케를 한아름 들고 들어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잊지 않고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을 때는 공교롭게도 생일이라는 날이 그렇게 중요하고 특별한 날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때랑 비슷했다. 물론 그렇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해서 내 생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임은 서로의 생일을 챙겨줘야 하는 이유도 이유지만 선물 받는 재미도 사실 솔솔 했기 때문이었다. .

그렇듯 한때는 내 생일이 특별한 날로, 남들에게 기억되고 싶었었던 나는 내 첫아이 주미를 낳고 그 생일의 의미를 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 내 말을 받아치는 사람이 있어 조심스럽다. 그 사람, 나의 언니 수영은 이렇게 나를 반박한다.

"말 똑바로 해라! 네가 아이를 낳았냐? 의사가 꺼내 준거지! 너는 아이의 머리통이 생살을 찢고 나올 때의 그 아픔이 얼마큼 고통스러운지 모르는 얘니까 어디가서 애 낳느라 힘들었다는 소리 절대 하지 말아라!"

아이를 낳았던 꺼냈던 나도 해산의 고통을 맛보긴 했었다.
그 긴 15시간, 특히 마지막 두시간 동안 내가 겪은 분만의 고통을 짧게 설명하라면 내 배 위에 화기 물질을 붓고 불을 질러 그것도 모자라 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느낌이었었다. 분만은 그렇게 힘든 것이어서 이곳에서는 `분만실' 이라고 하지 않고 `Labour Room'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노동이라는 말보다 역시 훨씬 힘든 것이어서 그 말 역시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하여간 그 15시간동안의 해산의 고통도 보람 없이, 끝내는 비상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수술이 끝나고 전신 마취가 풀리며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했지만 눈을 아무리 뜨려 해봐도 뜨이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나는 데이빗의 목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데이빗이 한 말을,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신영! 아주 예쁜 여자아이를 낳았어. 정말 예쁘고 건강한 아이야. 고마워!"

나에겐 더없이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뜨이지 않는 눈 속에서 눈물이 뱅그르르 돌았고 나는 손가락 한 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대신 대답했다.

1995년 10월 18일은 내가 그렇게 주미를 낳은 날이고, 그러니 그 날은 바로 주미의 생일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분만의 고통을 맛만 보기만 했지만 생일이 어떤 날인가를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보통 Baby Blue 라는 가벼운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Postnatal Depression 이라고 하는데 호르몬의 변화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나도 그 호르몬 변화에 걸려 조금 우울했었다.

"내 어머니도 나를 이렇게 낳았겠구나. 아니 나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솥에 물 데워 놓고 한뼘짜리 방안에서 외롭고 힘들게 나았겠구나. 더구나 둘째도 딸을 낳았다고 대접은커녕 천대받았겠구나.
내 어머니도 우울증에 걸렸었겠구나. 어머니의 위로 받지 못할 우울증은 나보다 훨씬 힘든 것이었겠구나 바로 그 날이 내 생일이구나"

"해산의 고통? 그럼 고통스럽다마다. 그려도 그건 암것도 아녀. 산파가 딸이라고 헝게로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지금 당장 아들만 낳을 수 있다면 그까짓 고통은 눈 딱감고 참고 또하나 얼릉 낳겠더라만..."

바로 어제(18일)가 주미의 생일이었다.
주미는 생일 한달 전부터 손꼽아 어제를 기다렸다. 그리고 생일이 되면 바비 인형과 바비 생일케익을 사 달라고 했다. 나는 주미의 바비 인형과 바비 생일케익을 사 나르고 초청장을 만들어 주미 반 아이들 모두를 초대했다. 모두래 봤자 주미를 포함해 7명이었지만.
만 5살이 되는 날 아침 주미는 "오늘이 내 생일이다" 라고 외치며 좋아했다.
방과후 주미는 할머니, 삼촌, 고모로부터 선물 세례를 받았고 파티가 시작되고서는 친구들이 가져온 또 한차례의 선물 세례를 받았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광대처럼 놀아주었고 아이들은 내 얼굴에 온갖 색칠을 하며 좋아했다.
(이곳에서의 생일 파티는 간단히 놀러와서 먹고 가는게 아니라 엄마가 놀이 준비를 하여야 하고 못하겠거든 시간당 돈을 지불하고 광대를 불러와야 한다) 놀이가 끝나고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을 장만하여 먹인 다음 바비 생일케익에 다섯 개의 촛불을 꽂아 딸 앞에 내 놓았다.

파티는 끝났고, 아이들도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주미도 잠이 든 이후 그 많은 선물들을 치워놓기로도 근 1시간을 소요했다. 나는 긴 금발 머리와 잘록한 허리에 공주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은 바비 인형을 한참이나 들고 있으며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빈 까스명수 병에 광목 헝겊조각으로 치마를 만들고 둥글게 주머니를 만들어 거기에 눈. 코. 잎을 그려넣어 만든 인형을 갖고 너무도 좋아했던 나와 수영. 그건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인형이어서 더 좋아했을 터였다.
이모가 꿈자리 사납다고 어느 날 그 인형을 어딘가에 감춰버렸고 우린 그 인형을 찾아 온 집 안팎을 찾아 나섰던 일, 그 인형이 보고 싶어 그리워하다 어느날 인형을 찾고 뛸듯이 기뻐하며 행복했던 일, 왜 우리의 예쁜 인형이 이모의 꿈자리를 사납게 할까 궁금해하면서도 전전긍긍하며 그 인형을 꼭꼭 숨겨 놀던 일.

생일이라고 이렇게 예쁜 인형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주미가 부러웠다.
나도 이런 예쁜 인형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세상 많이 좋아졌지. 주미야! 엄마가 주미처럼 어렸을 때는 내 생일이 언제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단다. 선물이 어딨어. 가끔씩 미역국이나 식탁에 올라오면 그게 선물이었지.
하긴 삼시세끼 배곯지 않는걸 다행으로 알아야 했었지. 그리고 주미야! 네가 태어난 날은 내가 너를 낳은 날이란다. 그러니 너도 나한테 선물해야해."

주미는, 왜 엄마는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는지, 왜 선물을 받지 못했는지, 왜 밥하고 그 맛없는 미역국을 먹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갸우뚱대며 물어보다가 별로 이득 될 것 없는 대화라고 결론을 내린 듯 씽긋 한번 웃어 보이고 지 생일에 겨워 깡충대며 멀어져간다.

생일이란 생일을 맞는 사람이 축하 받을 일이 아니라 낳은 사람이 위로 받아야 한다는 나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후, 몇 년 전 지난 내 생일날 나를 낳아준 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 30여년전 오늘 나를 낳느라고 수고 많으셨어요. 고마워요. 엄마!"

"뭐라고야? 워매, 오늘이 네 생일이었냐?"

............???

생일을 맞이하시는 친구들!
`저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라는 위로의 말로
꽃 한 다발과 함께 어머니를 꼭 안아보는 사랑의 제스처를 보여봅시다.

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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