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13  등록일 : 2000-10-21 오후 3:50:46

윌리 이야기 2
글 : 허신영 ()

"신영! 윌리는 내게 있어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시지. 부모님은 가난했고 우리들은 아직 어렸을 때그나마 아버지는 자주 집을 떠나셨어.그럴 때마다 어머니 혼자, 졸망졸망한 우리 세 남매의 끼니 걱정을 해야 했었지. 윌리는 그런 우리 형편에 많은 도움이 되 주셨어. 윌리는 젖소와 닭을 키웠는데 나와 크리스티(데이빗 남동생)는 자전거를 타고 매일 윌리집에 가서 계란과 우유를 받아오곤 했었지.
철 고물을 모아다가 고치고 부수며 늘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교회의 문도 만들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어머니 집 대문도만들었어.그래도 아버지는 늘 나를 못마땅해 했어. 내가 작업실에서 일하는걸 무척이나 싫어했었는데 어느 날 기어이 작업실에 있는 도구들을 모두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지. 그때 윌리는 기꺼이 나를 받아 주었고 작업실을 만들어 주었어. 그 작업실이 이제까지 윌리집에 있고 아직까지도 쓰고 있잖아. 윌리는 고맙고 좋은 이웃이야."

데이빗이 윌리를 내게 소개해 주기 전에 한 말이었다.
이 지역에서 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윌리는 유명했지만 쉬한(데이빗 성) 가족하고는 두드러지게 각별한 사이였다. 날씨가 좋은날이면 윌리는 어김없이 시어머니 아일린 집에 걸어 올라와 겨울에 쓸 땔감을 자르거나 제초제를 뿌리거나 뒤뜰의 감자밭을 호미로 메거나 하는 일들을 거드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었다.
윌리는 언제나 빵모자(Cap)를 머리에 썼는데 습관처럼 그는 모자의 짧은 챙을 잡고 고쳐 쓰는 시늉을 했다.
윌리의 손때가 뭍은 그 모자는 특히 그가 잡고 고쳐 쓰는 오른쪽 이마 위 챙 쪽이 유독 반질거렸다.

"내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일이야. 그때 학교 선생들은 신부이거나 크리스챤 브라더(Christian Brothers)였지.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침 등굣길 아이들은 학교 가기 싫어서 중간에 이곳 저곳 숨어 놀곤 했었어. 선생인 신부는 언제나 나를 지목해서 그 아이들을 잡아오는 일을 시켰어.
나는 반에서 제일 몸집이 작았는데 내가 잡아와야 할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큰 아이들이었지. 나는 등교와 동시에 다시 학교를 나서서 중간치기(뺑뺑이?)하는 아이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실랑이를 해야했어. 그리고 그 아이들을 전부 몰고 다시 학교로 왔지.
뭐 꼭 번번이 아이들을 잡아온 것은 아니야. 덩치 큰 아이들을 잡아오기는 물론 쉽지 않았어. 그래서 어떤 땐 큰나무 밑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학교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지. 하여간 이런 일을 매일 아침부터 해야 하므로 나는 다른 수업을 다 놓치고 말았어.
어느 날 나는 선생인 신부에게 정중하게 따지고 들었어. 내 수업을 다 놓치며 다른 아이들을 잡아와야 하는 것은 나에게 공평한 처사가 아니니 이일은 그만 시켜달라고 말이야. 선생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내가 싫었겠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지.
나는 항상 이치에 맞는 말을 했거든.물론 그 날로 아이들 잡아오는 일을 그만 두었지"

윌리는 어려서부터 성실한 사람이었으므로 늘 신부의 심부름을 독차지하곤 했었다. 그건 물론 윌리처럼 성실한 사람들에겐 불공평한 일이었다.
목소리가 유난히 굵으며 낮은 톤의 윌리가 이야기 할 때면 작은 초가집이 웡웡 울리곤 했다. 정말이지 몸집이 작은 윌리를 함부로 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에겐 무슨 일이든 원리가 있었고 그 원리는 늘 정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나 정직하지 못하고 무례한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헤지스쿨(Hedge School.덤불 학교)이라는 게 있었어. 영국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을 때였지. 아이리쉬 아이들에겐 절대 교육시켜서는 안 된다는 영국법에 의한 금지령이 내렸어.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아이리쉬들로 만들기 위한 작전이었지. 하지만 신부들은 숨어서 아이들을 가르쳤어.
영국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덤불 속에서 숨어 가르쳤다 해서 덤불 학교라고 불렸지.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 잡히면 선생인 신부는 교수형에 즉각 처해졌고 실지로 그렇게 교수형 당한 신부들도 있었으니까. 카아발리(Carbally.이곳 근처의 지명)에도 덤불 학교가 있었어.Them days are gone"

윌리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덤덤하게 다시 한번 초가집을 메운다.

"아마 내가 11살 때였을 거야. 집 앞에 아주 커다란 사과나무가 있었어.
그 사과나무는 워낙 큰데다 집 앞 바짝 붙어 있어서 내가보기엔 아주 위험해 보였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그 가지들이 초가집 지붕을 마구 때리곤 했었거든. 나는 아버지한테 말했지. 저 사과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얼마 안가 우리 초가집은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아버지는 듣지 않았어. 결국 나는 우리집이 무너져 내리는걸 방치해 둘 수만은 없어서 밧줄로 나무를 묶고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지.
나중에 아버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아버지 친구 분이 찾아오셨을 때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긴 했지. `저 쪼그만 윌리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야. 나는 저 녀석을 사실 무서워한다네' 하고 말야"

윌리의 아버지는 키가 장신인데다 풍체가 좋았다고 한다. 윌리의 정당한 이치는 그의 아버지까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오래 전 일이야. 일요일이면 돈이 없어 이발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준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 아예 매주 일요일이 되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머리를 자르기 위해 집 앞까지 줄을 서곤 했었으니까. 그러니 매주 쉬지도 못하고 남들 이발해 주느라 하루종일 서있어야 했었어.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10마일 밖에서도 찾아왔지. 물론 무료였거든.
그 중에서 면도를 하기 위해 매주 찾아오는 동네 사람이 있었어. 그는 잠시도 입을 가만 두지 않는 수다쟁이었지. 면도를 하는 중에도 항상 조잘거렸기 때문에 면도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어.
어느 일요일 그날도 역시 그는 찾아왔고 나는 그의 턱수염 면도를 하고 있었지.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않고 조잘대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기어이 한마디 해 주고 말았어. `이봐 자네, 면도할 때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게, 날카로운 칼날이 자네 턱과 목에 있다는 걸 명심해서 말이야.
잘못하다간 실수로 자네 목을 자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물론 그는 그 다음부터 면도할 때는 끽 소리도 하지 않았지."

윌리의 이야기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듣고 있으면 재미있었다.
물론 이제까지 나열한 이야기는 똑같은 내용을 수십번도 더 들은 이야기였지만, 그래서 그의 표정만 봐도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짐작이 갔고, 이야기마다 자신의 자랑 섞인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지겹거나 결코 교만하게 들리지 않았다.

처음 윌리를 만났을 때 나는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이든 윌리의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고 억양 또한 그랬다. 특히 그가 쓰는 영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들을 구사하거나 구식 영어를 그대로 쓰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거실로 통하는 철창문을 두드릴 때면 그는 느리고 촘촘한 걸음으로 걸어나와 빗장을 열고 늘 이렇게 물었다.
"Who have I?" 물론 "이게 누구요"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이제껏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반적인 표현은 Who is this?, Who are you?)
그가 그렇게 물을 때면 나는 내 이름을 댄 적이 없었는데 그건 그를 혼동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였다.
"나는 데이빗 아내예요"
"오! 그래 데이빗 아내, 찾아와줘서 고맙네, 어서 들어오게"

나를 "신" 이라고 불렀던 윌리는 그 간단한 신 마저 기억할 수 없게 되어 그를 알고 그를 방문하기 시작 한지 5년 만에 어느 날 다시 내 이름을 물었었다.
나는 잔잔하게 웃으며 "신영" 이라고 발음해 줬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일 뿐 따라하지 않았다.
윌리에게 "신영"을 발음하라고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 무리였다. 그래서 나의 존재는 신영이 아닌 Mrs. David이었다.
그렇게 윌리는 점점 기억과 청각, 시력을 잃어갔고 그런 윌리에게는 오직 한가지 날씨만 존재하기 시작했다.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여름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그 어떤 날씨도 윌리는 안개가 진하게 낀 날씨라고만 했다. 잡초와 화초를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는 윌리는 멀쩡한 정원의 화초와 나무들을 망쳐놓기도 했다.
100년이 넘었다고 그의 초가집을 소개하던 윌리는 어느 날부터는 1000년이 넘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골동품 같은 텔레비전이 고장나고 리못콘트롤(Remote Control)이 딸린 새 TV로 바뀐 것은 그의 단순한 삶을 혼동스럽게 했다. 리못콘트롤에 붙은, 켜고 끄는 버튼에 색깔을 칠해 표시를 하여 여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아무리 가르쳐줘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는 그가 늘 써오던 방식대로 톡 소리와 함께 켜고 끄고싶어했고 딱딱 소리내며 채널을 돌리고 싶어했다. 저녁이면 윌리의 전화를 받은 데이빗은 수시로 그의 TV를 켜주기 위해 그의 집을 들락거려야 했다.

일요일 저녁이면 한번도 빠지지 않고 동네 펍에 들려 한잔하던 윌리, 밤마실 겸 신문을 보기 위해 아일린 집에 하루도 빠짐없이 오던 그는 어느 날부턴가 그것마저도 기력에 부쳐 중단하고 말았다.
모든 매사가 그에겐 힘이 부쳤고 그가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닌 편리하다고 하는 것들은 그를 오히려 혼동스럽고 당황하게만 했다.
윌리의 삶과 그의 철학, 혹은 그가 아는 세계는 오로지 그의 작은 초가집으로 한정되었다.
저녁식사는 1시에, 오후 티타임은 5시에, 벽난로에 땔 석탄 배달부가 오는 날은 화요일, 조카가 시장을 봐주는 날은 수요일이라는 것이 그가 삶에서 알고 지켜야할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모든 것이었다.

그는 미디어의 뉴스 거리와 현실을 착각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7.80년 전 일은 고스란히 기억해도 1분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자립심이 강했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 귀찮은 존재였다.
그는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했다.
그의 뇌세포가 점점 죽어갈수록 그는 점점 고립되며 죽어 갔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늙음'이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산물이었다.

윌리는 내게 하루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해선 오늘 날짜를 묻고 했었는데 그 횟수가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때때로 그는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도 모르고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끝내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오늘이 몇 요일 며칠인가?. 아~ 그래 나도 알긴 알았는데 확실치가 않았어. 오늘 날씨는 괜찮은 편이야. 나는 오늘 하루종일 아무도 못 봤어. 혼자 있는게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하고 얘기가 하고 싶어져서. 으음, 그래."

나에게 아이 둘이 생기고 나서는 윌리의 집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가끔씩 이지만 그의 집을 들를 때면 그는 오늘도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그래서 외롭다고 어리광 부리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그의 집을 아침저녁으로 방문하는 조카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았다. 그는 단지 그걸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어서 오게! 찾아와줘서 고맙네.... 이웃집에 데이빗 쉬한이라는 젊은 남자가 살고 있는데 요즘 통 얼굴을 볼 수 없구만. 가끔씩 내 머리를 잘라주러 오곤 하지. 매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집에 식사하러 가곤 했었는데 이젠 현관문을 여는 것도 힘이 부쳐. 나는 너무 늙었어.....
데이빗은 직장때문에 먼 나라에 갔다가 그곳 여자와 결혼했다고 들었어. 그 나라이름은 모르지만 먼 나라라는 것은 알지. 좋은 젊은이 인데 부인이 얼마 전 아이를 낳았다고 한 것 같은데 하나인지 둘인지 모르겠어, 자네도 그 사람을 알고 있나?"

내가 어느날 그를 찾아갔을 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네, 윌리! 나도 그 사람 잘 알아요. 조만간 머리 잘라주러 온다고 했어요"

나는 모른 채 했다.
우스운 일 이었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아릿하게 지려오는 듯 했다.
윌리 말대로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는 매번 아일린 댁에서 해오다 우리 집이 완성되고 난 후부터는 윌리를 포함한 식구 모두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해왔다. 윌리의 식성은 나를 놀라게 했었다. 커다란 접시에 수북히 쌓인 칠면조 가슴살과 햄 그리고 감자와 그 밖의 야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고 "Thanks for the God. I'm bursting" 이라는 말과함께 식사를 끝냈다.
"주여 배불리 먹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지만 Full 이라고 하지 않고 Bursting 이라고 했으니 속뜻은 터지게 먹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였다. 이 표현 역시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들어보지 못했다.

"난 전화상에서 그렇게 무례한 사람을 처음 봤네. 내가 전화를 걸면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잣말만 막 하더군. 그렇게 무례하다니 번번이 내가 전화할 때마다 그 무례한 남자가 받고 바꿔주질 않아"

워터포드주에 전화번호 갱신이 있던 때였다. 변두리 번호는 기존 번호 앞에 3을 추가하도록 바뀌었는데 그걸 윌리가 기억할 리 없었다.
윌리는 예전대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고 그럴때마다 컴퓨터에 자동 저장된 목소리가 나와 기존 번호앞에 3을 추가해서 할 것을 알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날 윌리의 전화 메모장 번호들 앞에 3자를 모두 써 놓고 돌아왔다. 물론 더 이상 윌리는 무례한 남자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윌리는 이제 하루에도 평균 예닐곱번 내게 전화를 했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을걸 뻔히 아는 나는 아침마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잠에서 깨어나 윌리 만큼이나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달력을 더듬기도 했다. 어떤 땐 올해가 몇 년이냐고도 물었다.
나는 그렇게 전화벨 소리에, 잠자리에서, 샤워실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뛰쳐나오기가 일쑤였다. 전화통에 대고 본의 아니게 고함을 쳐야만 하는 건 그래도 괜찮았지만 그가 끝내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면 기운이 빠졌다.

저녁식사는 1시에, 티타임은 5시에, 석탄 배달부는 매주 화요일에.

내가 만일 `나는 늙음과 무관한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그의 늙음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윌리의 단순한 삶에 왜 정확한 날짜를 알고 지내야 하는지 오늘이 11일이든 12일이든 그 삶에 달라질게 뭐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그의 5분 간격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늙음을 이해했고 그의 전화가 다시는 걸려오지 않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 날은 내 생각보다 빨리 오고 말았다. 그의 조카가 그 사실을 알고 윌리의 전화 메모장에 적힌 내 번호를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윌리를 돌보며 그의 대소변 뭍은 옷까지 빨아주던 그 착한 조카딸은 윌리가 나를 귀찮게 한다고 생각해, 나에 대한 친절을 베푼 것이었지만 나는 죄책감 같은 것에 영 속이 개운치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윌리는 온몸을 비틀며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앰블란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윌리, 그가 수십 년 전 어느 날 이빨 모두가 부러지고 턱이 찢어졌을 그때도 앰블란스에 실려갔다는 것을 그는 그 안에서 기억했을까! "내가 영 아파 못 참겠거든 내 이렇게 팔꿈치로 당신을 건드리겠소"
라고 말해 의사로부터 용감하고 훌륭한 환자라고 칭찬 받은 젊은 시절의 윌리.

그가 입원한 병실은 노인들의 심장마비만을 간호하는 심장 환자실이었다.
평생 집을 떠나본 적이 없던 윌리가 병실 생활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그를 편안하게 했다.

"그 현관문을 닫게나! 쥐가 들어올지도 몰라. 감자가 다 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그 냉장고를 좀 열어보게, 거기에 감자가 들어있는지 몰라.
석탄 배달부가 올지 모르는데, 지금이 몇 시인가, 식사시간이 됐을텐데, 이 거추장스럽게 달린 것(심장 박동소리를 체크하기 위해 가슴에 붙인 가는 선들)들은 뭔가, 좀 치워주게나. 저 벽난로(Radiator히터)앞에 선 사람은 누구야. 저렇게 벽난로 앞에 서 있다간 타죽겠어"

윌리는 이렇게 병실에 있으면서도 그의 초가집으로 착각하며 지냈다.
벽에 붙은 히터를 벽난로로 생각했고 병실 카비넷을 냉장고라고 했다.
내가 그를 마지막 본 것은 병 문안했을 때였는데 내가 보기엔 그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늘 눈곱이 끼어 흐르는 듯했고, 입 주위는 침이 흘러 무르고 더럽게 번들거렸으며, 얼굴과 목은 주글주글한 거북이 목 껍질 같았다. 수년 동안 깍지 않은 그의 발톱은 누런빛의 갈고리처럼 뒤틀리고 비틀어져 보기에도 민망스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인가부터 나는 그의 볼에 더 이상 키스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윌리는 노인들만이 가는 병원(Saint Patrick)으로 옮겨 입원되었다. 이 파트릭 노인 병원에서 완쾌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터, 윌리 역시 그가 이 병원을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관속에 누워 나오는 길뿐이었다. 늙어서 죽는 것은 복된 죽음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그 후 윌리를 보기 위해 데이빗을 포함한 가족들은 한두번씩 그 병원을 다녀왔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를 했다.
나는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 데이빗의 의견대로 내가 다녀온 후 과연 얼마큼 감정 처리를 잘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이해가 될까.
살아 있으되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죽음을 기다리는 곳, 비참한 모습을 한 그들의 모습을 대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고 하면 더 솔직하고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00년 3월 17일은 세인트 파트릭스 데이(St. Patrick Day)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바로 그 날 토요일 저녁 우리는 그의 부음을 들었다.
심장마비, 그의 나이 정확히 90세였다.

관속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은 잠자는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난 죽은 사람을 그때 처음 보았다.)
윌리는 더 이상 눈곱이 낀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입 주위의 번들거리던 침도 말끔히 없어졌으며 그의 주글주글거리던 피부도 팽팽히 펴진 듯 깨끗해 보였다. 윌리는 그가 태어나고 평생을 살아왔던 초가집 옆 교회에 묻혔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그 중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울보인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육신은 내 마음속에 오래 전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탓일까! 모두들 그가 살만큼 살았다고 말했다.
살만큼 산다는 건 90년을 말하는가!
90세 된 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

이제 윌리의 집은 비어있지만 내 마음속에 그를 기억하는 마음은 생생하다. 그 초가집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들어서 창문을 두드리면 그는 그의 촘촘한 걸음으로 걸어 나와 빗장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Who have I?"
벽난로를 중심으로, 원래의 색깔이 녹색이라고 짐작되는 까맣게 때가 탄 소파에 나는 앉을 것이고, 윌리는 맞은편 빛 바랜 소파에 앉아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꼬막 때문에 죽을뻔 했던 일이 있고선 난 꼬막을 먹지 않지....."

그리고 노래 한 곡 불러달라면 주저 않고 크로피 보이를 부를 것이다.
가사 한 구절 빼먹지 않고 이렇게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나서는 "Them days are gone" 이라고 끝맺을 것이다.



[크로피 보이]


낯선 소년이 성스러운
이 집(교회)에 찾아와 고해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안에 계시면 뵐 수 있을까요?

그린(Green) 신부님이 좋으신 분이니 내 말해 보겠소.
그분은 편안하셔서 말씀드리기 쉬우므로
그 성스러운 신부님이 시간이 나고, 들어주실 지
물어보고 올 터이니 가지말고 기다리시오.

소년은 텅 빈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네,
적막한 실내는 그의 사뿐한 발자국 소리만
울려 외롭게 들리고있네
어둡고 싸늘한 텅 빈 교회안에
두루마기 입은 신부님 혼자 앉아 있었네

소년은 고해하려 무릎꿇었네
"In Nomine Deo" 소년은 시작했네 (주의 이름으로)
"Mea Culpa" 소년은 한숨쉬듯 말하고(내 죄로소이다)
더듬거리며 나머지 고해하기 시작했다네.

신부님!
부활절이 지난 이후 저는 세 번 욕한 죄를 범했습니다.
예배시간에 친구들과 놀았던 죄를 범했습니다.
교회 뜰을 바삐 지나치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는걸 잊은 죄를 범했습니다.

로스(Ross)의 포위전(戰)에 아비가 죽고
고리(Gory)전(戰)에 사랑하는 형제들도 다 죽었습니다.
내 성씨 갖은 사람은 저 혼자 남았는데
저도 웩스포드(Wexford)로 가서
그들이 갔던 길을 밟아 따르겠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의 조국을 왕(대영제국)보다 더 사랑합니다.
신부님!
이제 저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셔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내 사명대로 죽음에 맞서도록 보내 주십시오.

신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네.
부스럭대는 옷 벗는 소리, 불길한 예감에
소년은 고개를 들어 올려보았네.
두루마기는 벗겨지고 그곳엔
붉은 제복(영국 군복)입은 영국 장교
분노의 눈빛으로 서 있었네.

분노의 눈빛과 성난 목소리는
용서와 은혜 대신 저주를 내렸네.
"이곳에 이렇게 찾아와 고해할 생각은 잘한 짓이다.
하지만 소년아!
이제 남은 시간은 너의 최후 인줄 알거라"

"저기 저 강물에 세척의 배가 떠 있구나.
너의 신부도 아직 총살되지 않았거든
저 배에 탑승했겠지.( 처형장은 강건너에 있으니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는 뜻)
이제 이 집(교회)은 우리의 주인
우리의 왕을 위한 것이니
오냐, 반역자는 모두 죽이련다."

제니바 계곡에 어린 소년 죽었다네
그 파세지(Passage)에 소년의 시체 누워있네
평화와 행복이 있는 곳에 사는 선한 사람들이여.
기도하세,
크로피 보이를 위해 눈물 흘리세.

* Roos와 Gory는 Wexford의 혈전이 있었던 곳 지명.

2000년 10월 윌리와 크로피 보이를 기리며.

신영.

(총 : 8 건)
오경아 2003-06-30 오후 7:50:40 삭제
윌리아저씨를 읽으면서 글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제가 윌리 아저씨를 방문하여 직접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벽난로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모양이 다른 소파가 각기 놓여있었는데 윌리가 항상 앉는
지정석은 오른쪽의 마른 가을낙엽 같은 색깔의 소파였다. 팔걸이가 나무로 돼있고 낮은
그 소파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색이 바랜 낡아빠진 소파였다.
왼쪽에 있는 소파는 좀더 깊고 푹신한 소파였지만 형세는 오른쪽 소파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원래의 색깔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그 소파는 팔걸이는 새까맣게 반질거렸고
군데군데 실밥이 뜯어져 누르스름한 솜이 삐져나와 있었다. 손때가 타지 않은 구석은 진한
녹색인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소파의 원래 색깔은 녹색 계통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내가 처음 윌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소파에 앉기를 얼마나 망설였었는지 모른다.
소파 옆 거실 중앙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이 있었고 식탁 위에는 버터와
마멀레이드 그리고 빈 홍차 잔이 받침컵에 엎어져 언제나 다음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난로와 식탁이 있는 그의 거실과 맞대어 그의 침실이 하나 있었고 그게 집안 구조 전부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을 때도 역시 침실은 하나였다고 한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윌리아저씨의 방의 분위기가 영화의 한 장면 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글쓴이가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방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글을 읽을 때에 글 자체보다는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영상을 떠올리며

읽는 습관이 있지만은 [윌리아저씨]는 영상이 명료하게 떠올랐고 아저씨의

목소리마저 떠올릴 수 있었음은 이글을 쓴 신영씨의 역량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닌 한 평범한 남자의 삶을 통하여 그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흥미로왔습니다. 제가 아일랜드 어학 연수

할 때의 우리 Class의 교재중에 'Encounter Ireland' 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책은 아일랜드의 역사 문화 사회 사람들을 다룬 책 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책이 저에게 어려웠지만 어떤 교재보다도 재미있게 공부를 했었지요.밤늦도록

사전을 찾아가면서......윌리 아저씨를 읽으면서 그 책 생각이 났습니다.

이 컬럼이 그 책처럼 두꺼운 책은 아니었지만 짧은 글 속에 아일랜드의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요.

윌리아저씨와 데이빗 가족들의 따뜻한 인간관계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의 다정하고 따뜻한 인간애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구요.

영국의 식민지하의 슬픈 아일랜드의 역사가 우리와 지도의 모양이 비슷한 것만이 아

니라 역사의 한 단편도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일랜드가 더욱 친숙하게 다

가옵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던 윌리아저씨도 노화에 의한 죽음의 처참한? 과정을

피할 수 없었을때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이 착잡해 집니다.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윌리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끝부분에서 눈물이 많이 나왔는데 윌리아저씨의 죽음 자체가 슬퍼서라기 보다는

그 최후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같은 생각이 더욱 저를 슬프게

했나봅니다.

윌리아저씨는 40여년동안 자식들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사셨어도 결코 외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데이빗 가족과 같은 따뜻한 이웃이 있었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분을 추억하고 글까지 써 주시는 신영씨 같은 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분이십니다. 좀 우습게 들리실지는 몰라도 이 글을

읽고 난 후 오후 1시가 되면 '윌리아저씨의 저녁식사 시간 이네!' 오후 5시가

되면 "아저씨가 차마실 시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실지로 어제는

5시에 윌리아저씨를 생각하면 Tea Time시간도 가져 봤다면 또 누군가가 이상한

여자라고 비웃을 까요? 윌리아저씨가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모르는 코리(아저씨

식 표현)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한 여자가 윌리아저씨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해 보셨겠습니까? 만일 저 세상에서 이 세상일을 알수 있

고 이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초능력의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아저씨는 신영씨

가 고마워서 신영씨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으실 것입니다.

윌리 아저씨가 즐겨부르시던 Croppie Boy 의 가사에 대한 설명이[윌리아저씨1]에

서 나왔을 때 그 가사를 알고 싶었는데 [윌리아저씨2] 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려면 그때 유행했던 노래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슬픔이 녹아있는 듯하여 가슴이 아픔니다.

먼 훗날 제가 제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이야기 해도 애정을 가지고 들어 줄

수 있고 또 그것을 글로 남겨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윌리아저씨처럼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온 삶도 아니고 자신이 없어집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따뜻하고 향기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마침니다.

좋은글을 써 주신 신영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달의 컬럼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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