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 때문에 죽을뻔 했던 일이 있고선 난 꼬막을 먹지 않지.
아주 오래 전 일이야. 한번은 내 누이하고 썰린에 꼬막을 캐러 갔었던 적이 있었어. 모래밭에 조그맣게 뚫린 작은 구멍들은 꼬막들의 숨구멍이야. 그 숨구멍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네. 재수가 좋으면 대합이 걸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꼬막 구멍이야.
대합은 입 부리가 길고 뾰족한 황새들이나 잘 잡아먹어. 그 구멍 속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면 영락없이 꼬막이 단단하게 매만져지고 그렇게 캐내는 건 재미있고 쉬운 일이야. 한데 간혹가다 꼬막이 모래밭 위에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어.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 때 미처 몸을 제대로 숨기지 못한 놈이야. 물이 빠지고 나면 단단해진 모래밭 위에 그냥 남아 있다가 죽은 놈인데 이렇게 죽은 꼬막은 상했으니 독약이나 마찬가지야.
근데 내 누이가 모래밭 위에 나와 앉아 죽은 놈을 주워 담았지 뭐야. 난 집에 와서 그 꼬막을 삶아 먹었으니 독약을 먹은 거나 다름없었지. 심한 복통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지고 식은땀이 흐르며 숨을 쉴 수가 없었어.
난 생각했지. 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 이렇게 해서 죽는 거구나. 그래도 그런 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싫어서 나는 안간힘을 다해 기다시피 해 아래 펍까지 내려갔어. 그리고 전화를 했지. 물론 의사한테. 그때만 해도 전화는 펍에나 있을 때였으니까. 나는 의사한테 거의 숨넘어가는 소리로 내가 곧 죽을 것 같으니 빨리 죽기 전에 와서 살려달라고 했어. 의사가 오긴 오겠지만 시내에서 여기 외딴곳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의 진찰을 받기도 전에 죽을 것만 같았어.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생각했지.난 목구멍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억지로 구토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든 독 꼬막을 토해냈더니 차차로 제 정신이 돌기 시작하며 이젠 살았구나 싶더라고.
나중에 온 의사가 한 말을 나는 이제껏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 당신 목숨을 당신이 살렸군요. 토해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영락없이 죽은목숨이었소! 라고 말야. 난 그 이후로 절대로 꼬막을 먹지 않아. 자네도 명심하게. 모래 위에 앉은 꼬막은 죽은 놈이니 절대 주우면 안 돼. 그건 독약이나 마찬가지거든."
80이 넘은 노인 윌리는 순서 하나, 표정 하나 틀리지 않고 늘 그가 해 왔던 대로 꼬막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친다. 특히 그 중에서 "내 누이가 모래밭 위에 나와 앉아 죽은 놈을 주워 담았지 뭐야."...."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당신 목숨을 당신이 살렸군요." 라는 대목을 말할 때는 얼굴 표정 또한 사뭇 진지해지고 동의를 구하는 듯 상대를 빤히 1-2초간 쳐다보는 버릇 역시 변함이 없다.
의사가 했던 말 대목에 가서는 무릎을 탁 치는 제스처와 음향효과까지 매번 잊지 않고 섞는 윌리를 나는 수도 없이 봐왔다.
윌리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윌리의 꼬막 이야기는 두어 번 정도 들었을 것이다.
윌리는 우리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길옆 작은 초가집에 혼자 사는 윌리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책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가 겪은 삶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므로 나는 무척 흥미롭게 귀 기울이곤 했었다. 그건 2차 대전 당시를 포함한 다름 아닌 아일랜드의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일랜드는 2차 대전 참전국은 아니었지만 영향은 큰 것이었다.)
고집스런 외곬수, 단순한 삶을 살았고, 그 삶에 충실했던 사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언제 어디서든 노래부르기를 마다 않던 윌리. 그는 [크로피 보이. Croppie Boy]라는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었는데 그 노래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13세살 때 배웠다는 이 노래의 가사 내용은 대충 이렇다.
영국의 식민지 하에 있을 때 크로피(Croppie. 바가지형) 머리 스타일의 한 어린 소년이 웩스포드(Wexford)와 워터포드(Waterford)를 잇는 파세지(Passage.Waterford)에 살았다. 영국군들은 웩스포드주에 포위망을 치고 반란군(아이리쉬 독립운동자들)과 혈전을 벌였고 그 전쟁통에 목숨을 잃은 아이리쉬들은 부지기수였다.
그 통에 부모와 형제를 잃은 어린 소년 크로피 보이는 지난번 고해 이후 그동안의 자신의 죄를 사죄해 줄 것과 자신도, 싸우다 죽은 형제들의 뒤를 따르겠노라고 신부를 찾아가 고해한다. 그 고해 중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의 생명 중 미워하는 사람이 제겐 없지만 저는 왕(영국)보다 내 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불행히도 그 고해를 들은 신부는 신부옷으로 변장한 영국 장교였고, 그리고 그 어린 소년은 조국을 사랑한 죄목으로 그 다음날 총살당했다.
이 소년을 기리기 위해 [크로피 보이] 라는 노래가 지어졌다고 한다. 그때 당시 어린 소년들은 보통 바가지형 머리 스타일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크로피 보이는 그가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고있다. 윌리는 서러운 선율의 그 노래를 당신 목소리로 끝낼 때마다 전설처럼 슬픈 이야기를 되풀이해 몇 번이고 내게 들려주었다.
"블랙앤탄(Black & Tans)은 정말 잔인한 시절이었어. 내가 아마 10살이 좀 넘었을 때였지(1920년). 국제 정세를 잘 모르긴 했어도 그때 어른들이 했던 말들은 기억이 나. 아일랜드 내에 혁명군들의(IRA. Irish Revolution Army)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영국 정부에서는 사람들을 뽑아 경찰이라는 이름을 붙여 아일랜드에 내어 보냈지. 그때 영국 사회는 실업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던 때였거든.
일당 10 쉴링(Shillings) 이 급료였으니까 큰돈이었지. 그 경찰로 뽑힌 영국인들은 1차대전이 끝나고 직업을 못 구하던 실업자들이 주를 이루었고 또 다른 대상은 감옥의 죄수들이었어. 그들에게 이런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네. 이를테면 이대로 감옥에 갇혀 지내겠는가 아니면 아일랜드에 가서 폭군들을 진압하는 일을 하겠는가 하고 말이야. 자네가 죄수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그들 죄수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정도의 횡재였지. 거기다 돈까지 받았으니.
그들은 아일랜드에 들어오자마자 강탈과 횡포를 부렸지. 강간은 말할 것도 없고, 도둑질하고, 집을 불태우고, 맘에 안 드는 아이리쉬 남자를 보면 IRA 혐의를 입혀 무참히 교수형 시켰어. 블랙앤탄 이름은 경찰복이 모자라서 대신 카키색의 군복을 입었다 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라네"
윌리는 불꺼진 파이프를 한껏 빨아들이며 옛날을 회상하는 듯 얼굴색마저 침울해진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그의 전용어처럼 쓰이는 말을 덧붙여 마무리짓는다. "Them days are gone" 옛날은 갔어 라고 다행이라는 뜻의 말이지만 Those days are gone 이라고 하지 않고 그가 쓰던 옛날식으로 말하곤 했다. 윌리는 또 습관처럼 끝말과 함께 은은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불을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곤 했었다.
"들판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 내 생전에 들어보지 못한 굉음이 하늘에서부터 터져 내리는 것만 같았으니까. 나는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달아날 생각조차도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소리나는 쪽을 겨우 올려다보았지. 공중에는 두 대의 비행기가 쫓고 쫓기는 형국으로 날고 있었는데 특히 뒤에서 쫓는 비행기에서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어.
결국 앞에서 쫓기던 비행기는 뒤에서 쫓아오던 비행기의 총격에 의해 트라모어 바다 모래산에 추락하고 말았어. 비행기가 폭발하며 활활 타오르는 불의 위력은 멀리서 보기에도 대단했었지. 물론 2차 대전 당시의 일이었는데 격파된 비행기는 독일군 비행기였고 그 뒤에서 쫓던 .비행기는 영국군 이었다는군"
윌리의 증언은 마치 2차 대전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겐 들렸다. 전쟁 영화가 모두 그렇듯 아군은 용감하게 싸워 이기고 적군 (독일 나치군)은 늘 바보처럼 지기만 하는 상투적인 내용의 영화 같은 그런 내용의 영화 이야기 말이다.
"생각해보게! 이 작은 초가집에서 어떻게 12식구가 살았겠나를.
내 아버지와 어머니, 알리스, 로렌스, 메리조, 카트린, 하니, 마기, 스테이시아, 윌리, 브라이디, 파트릭. 우리 형제는 모두 열 이었지.
내가 아마 4살 때였을 거야. 집이 이렇게 작았으니 한방에서 식구 모두가 자야만 했지. 어느 날 아침이었어. 우리 형제 모두는 여니 때처럼 일어났는데 맨 막냇동생 파트릭은 간밤에 잠들었던 그대로 누워 일어나질 않는 거야. 나는 그날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네.
어머니는 파트릭이 누워있는 침대 맡에 앉아 2살짜리 파트릭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부둥켜안기도 하며 울고 계셨으니까.
파트릭은 홍역을 앓다 그렇게 죽었어.
파트릭이 죽고 우리 식구는 11명으로 줄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이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이 집은 그러니까 100년 정도 된 집이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사셨고 내가 이 집에서 80년을 넘게 살았으니 실은 100년도 넘은 집이지,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어. Them days are gone"
윌리가 사는 집은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기만 한 작은 초가집이었다. 수년마다 한번씩 손을 봐야하는 초가지붕을 윌리는 마지막으로 슬레이트를 얹음으로서 더 이상 손보지 않아도 되도록 노후 대책을 한 것이었다. 이제 당신 자신도 기력 없는 노인이 되어 가고 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윌리였다.
나무로 된 낡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씽크대가 놓여있는 세면대 겸 현관이 있었고 그 옆으로 길쭉하게 자란 제라니움이 겨우 한두 송이의 가냘픈 모습으로 피어 있고는 했었다.
그 작은 씽크대가 있는 현관에서 거실 겸 부엌으로 통하는 유리 철창문은 보안상 언제나 잠겨 있었다. 가끔씩 윌리의 집을 방문할 때면 난 어김없이 이 유리 철창문을 두드려 나의 방문을 알렸고 그 때마다 벽난로 가에서 졸고있던 윌리는 깊게 앉은 소파에서 깨어 두어걸음이면 될 거리를 여나뭇차례의 발걸음으로 걸어와 쇠고리를 풀어 문을 열어주었다.
"헬로우 신! 어서 들어오게. 코리 날씨는 어떤가? 코리도 여기처럼 비가 많이 오나?"
윌리는 내 이름을 "신" 이라고 불렀고 코리아를 "코리" 라고 불렀다.
그는 결코 코리아의 날씨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워터포드 주를 딱 한번 단일로 벗어나 본적이 있다는 80이 훨씬 넘은 윌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코리의 날씨를 궁금해 할 리가 만무했다. 윌리가 사는 그의 초가집은 그에겐 세계의 중심지였고 워터포드는 세계였다.
윌리는 또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토를 다는 사람이었고 그 토를 달고싶어 시초 내게 늘 그런식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때 그때의 날들을 심각하게 비평하곤 했다.
"오늘은 햇볕이 너무 강하게 비춰!
이런 날은 너무 눈이 부셔서 바깥에 나갈 수가 없어.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불어 안 좋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집안에만 있어야 돼.
그런대로 오늘은 괜찮은 날씨야.
오늘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었어"
윌리에게 있어 날씨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TV의 뉴스가 끝나고 일기예보가 시작되면 의례 그는 앉은 몸을 앞당겨 심각하고 조금은 경건한 태도로 TV를 향해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윌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숨소리도 크게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아는 바였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앓아 누워본 적이 딱 한번 있었어. 내가 8살 때였지. 홍역에 걸려 이틀 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어. 그리고 그 이틀이 지난 다음날 난 침대에서 일어났지. 어머니는 내게, 아직 낫지 않았으니 더 누워있으라고 하셨어. 난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지. '어머니 배가 고파요.' 어머니가 날 보더니 '배가 고프면 됐다. 다 나은 거야' 하시고 저녁상을 차려주었어. 그 이후로 내 나이 80이 넘도록 아파 누워 본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이 정도면 건강했다고 봐야되지 않겠나?"
윌리는 자신을 알리는 이야기하기를 참 좋아했다. 그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용감 무쌍했던 일들을 특히 즐겨 말하곤 했다.
"수십 년 전이야.
어느 날 젖소의 젖을 다 짜고 저녁 먹으러 자전거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어. 어떤 못된 장난꾸러기가 돌멩이를 길 한복판에 놔둔 거야. 내 자전거 바퀴가 돌멩이에 걸려 자전거도 나도 모두 나동그라져 떨어지고 말았지. 턱 밑이 찢어져 피가 펑펑 쏟아지고 이빨 모두가 부러졌으니 큰 사고라고 봐야지. 앰블란스에 실려 더블린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으니까.
더블린까지 가는 앰블란스 안에는 환자가 나말고도 또 하나 있었어. 만삭이 다된 임산부였는데 가는 도중 아기를 분만한 거야. 나는 그 갓난아기를 안고 더블린까지 갔으니까 나도 대단했지. 더블린에 도착해서 치과의사한테 진료를 받는데 이빨 모두를 뽑아야 한다고 했어. 그러더니 그 치과의사는 기운 센 장정 간호사 둘을 불러놓고 내 팔다리를 잡고 있으라는 거야.
너무 아파서 가만히 못 있을 거라 생각한 거지. 나는 양손을 맞잡아 걸어 배 위쯤에 잡고 조용히 치과의사한테 말했지.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영 아파 못 참겠거든 내 이렇게 팔꿈치로 살짝 당신을 건드릴 테니 그 신호는 너무 아프다는 뜻으로 알아들으세요' 나는 내 이빨이 모두 뽑힐 때까지 그런 자세로 그대로 앉아 있었어.
물론 팔꿈치로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으니까. 나중에 그 의사가 하는 말이 '내가 다루어본 환자 중 당신은 가장 용감하고 훌륭한 환자였소' 라고 말하더군"
키가 작지만 유난히 손이 큰 그는 무척이나 부지런했고 손재주가 좋았다고 자타가 공인했다. 그러므로 단연 그의 부지런함과 손재주에 관한 이야기는 바닥나는 법 없이 언제나 풍부했다.
그가 자신의 초가집은 물론, 동네 사람들의 지붕을 직접 만들어 주던 일, 벽난로와 굴뚝을 만들었던 일, 유리창을 만들어 끼웠던 일, 진열장과 서랍을 만들었던 일, 새벽이면 일어나 소젖 짜던 일, 그 우유로 직접 버터를 만들던 일. 버터를 농협에 내다 팔던 일, 늦여름이면 건초를 베고 다발을 만들던 일, 당신 자신보다 두배의 몸집의 장사하고 싸워서 이겼던 일, 동네 사람들 머리를 잘라주던 일 등 수없이 많았다
"저 유리 창문은 내가 직접 만들었지.
무슨 일이든지 첫 단계는 계획을 세우는 거야, 그래서 나는 항상 잠들기 전에 내일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생각하곤 해. 저 유리 창문도 만들기 전날 내 생각 속에서 나온 거야. 창문을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구상하고 설계까지 생각하고 나서 그 다음날은 실천에 옮기는 거야. 그렇게 저 유리 창문을 만들고 난 며칠 후,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듣게 됐지. 집수리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초대된 미장이가 하는 말이 집안 미장은 직접 자기손으로 다 한다고 해도 유리 창문 만들어 다는 일은 전문인한테 의뢰해야 한다고 하는 거야. 나는 그 미장이가 하는 말을 듣고 내가 만들어 단 유리창을 바라보았지.
그러면서 할 수만 있으면 전화라도 해서 '당신 말은 틀렸소. 나는 내 집 유리창을 직접 만들어 달았다오' 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깝더군"
윌리가 직접 만들어 달았다는 유리창은 창틀의 깊이가 근 한자는 됨직 할 만큼 깊게 들어가 있었다.
윌리의 집은 그만큼 벽이 두터웠다. 그 창틀위에는 비쩍 마른 제라니움이 작은 화분에 담아져 항상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귀가 떨어져 나간 조그만 접시들이나 신문, 볼펜, 메모지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곤 했다. 윌리가 만든 유리창은 이제 윌리처럼 나이가 들어 귀퉁이엔 금이 간데다 창은 뿌옇게 진한 안개가 끼어 있었고 창틀은 겹겹이 덧칠한 페인트가 벗겨져 거칠거칠 나불거렸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윌리를 실망시켜 본적이 없을 만큼 그 임무는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 속의 미장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그 유리창만큼은 알고 있을 터였다.
윌리는 유리창 얘기를 할 때마다 아직도 그 미장이 말이 마음속에 걸리는지 못내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은 몇 시에 일어나는가? 나는 8시에 일어나서 벽난로에 불을 붙이지.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저녁 식사는 1시에 해. 저녁 5시 티타임 때에는 간단히 식사한 후 아일린(나의 시어머니) 집으로 마실 나갔다 9시가 넘으면 집에와 밤 10시 잠자리에 들지."
윌리는 이번에도 역시 내가 몇시에 일어나는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몇시에 일어난다고 하던 간에 상관없이 당신의 말을 재빨리 이어 말하기 시작한다.
윌리는 매일 저녁 아일린 집에 들러 신문을 읽고 9시가 되면 홍차 한잔과 비스켓 하나를 먹은 뒤 자리를 뜨곤 했다. 나는 9시 정각이 되면 윌리에게 홍차 시중을 들었었다. 윌리는 비스켓은 먹지 않겠다고 사양하곤 했지만 정말로 먹지 않고 남겨둔 적은 없었다. (데이빗과 나는 우리집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시어머니 아일린 집에 살 때였다.) 메리와 나는 현관으로 나서는 윌리를 따라나가 그의 볼에 키스함으로써 굿나잇 인사를 하곤 했었다. 나는 아직도 확신한다. 그가 나와 메리의 키스를 무엇보다도 반가워했다는 것을.
윌리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진다.
벽난로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모양이 다른 소파가 각기 놓여있었는데 윌리가 항상 앉는 지정석은 오른쪽의 마른 가을낙엽 같은 색깔의 소파였다. 팔걸이가 나무로 돼있고 낮은 그 소파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색이 바랜 낡아빠진 소파였다.
왼쪽에 있는 소파는 좀더 깊고 푹신한 소파였지만 형세는 오른쪽 소파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원래의 색깔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그 소파는 팔걸이는 새까맣게 반질거렸고 군데군데 실밥이 뜯어져 누르스름한 솜이 삐져나와 있었다. 손때가 타지 않은 구석은 진한 녹색인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소파의 원래 색깔은 녹색 계통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내가 처음 윌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소파에 앉기를 얼마나 망설였었는지 모른다.
소파 옆 거실 중앙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이 있었고 식탁 위에는 버터와 마멀레이드 그리고 빈 홍차 잔이 받침컵에 엎어져 언제나 다음 식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난로와 식탁이 있는 그의 거실과 맞대어 그의 침실이 하나 있었고 그게 집안 구조 전부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을 때도 역시 침실은 하나였다고 한다.
정말 그랬다.
윌리는 시간에 지배받으며 살았고 시간에 복종하며 충실했다. 특히 식사시간은 더욱더 그러했다. 윌리는 오른쪽 소파에 앉아 이야기 도중 중간중간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는 게 습관처럼 돼 있었다. 그리고 마주앉은 사람의 시간과 맞추어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윌리가 시간을 충실히 지켜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식사시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식사시간은 나이든 윌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의 저녁 식사시간인 오후 1시는 하루 중 가장 크게 먹는 식사여서 점심이라 하지 않고 저녁이라 불렀다.
윌리의 평생 저녁 메뉴는 두세 가지로서 이 삼일 마다 바꿔가며 먹었다. 소금에 절인 삶은 베이컨과 삶은 완두콩, 그리고 삶은 감자와 버터. 또는 오븐에 구운 닭과 삶은 완두콩, 그리고 삶은 감자와 버터. 삶은 햄과 삶은 완두콩, 그리고 삶은 감자와 버터.
윌리는 배가 고프든 아니든, 현재 시간이 12시 55분이든 59분이든 정확히 1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1시를 넘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티타임도 마찬가지였다.
5시에 하는 티타임은 버터와 마멀레이드를 바른 식빵과 홍차가 전부였지만 그 전도 후도 아닌 정확히 5시에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는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만 했다.
"숙녀 앞에서 파이프를 피워도 되겠나?
난 숙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땐 언제나 허락을 구한 다음에 피우지. 어떤 사람은 파이프 담배 냄새를 싫어하거든.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난 후, 자기 전에 사탕 하나를 빨고 잔다네. 입안의 담배 맛을 없애기 위해 서지. 신! 사탕 하나 먹겠나?"
윌리는 파이프 담배를 심심찮게 피웠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피우는 재미보다는 파이프를 비우고, 담뱃가루를 꺼내고, 파이프 안에 쟁여 넣어 꾹꾹 누르고, 성냥을 챙겨 그어대고 하는 손 놀이를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근 십여분의 준비 작업에 걸쳐 댕겨진 파이프는 서너 차례의 빨림에 겨우 불이 당기기 시작했고 그러면 이제 알았다는 듯 거기서 멈추고 마는 것이었다.
식사시간의 법칙처럼 윌리는 파이프도 꼭 정해진 이(Teeth)에만 물었다.
그건 윌리의 틀니 위아래 이가 맞대질 때 생기는 타원형의 닳아진 흠집이 잘 증명 해주고있다.
"내 아내는 1959년에 죽었어. 그 이후로 거의 40여년 동안 여태껏 혼자 살아왔지. 아내가 죽던 그 날도 여니 때처럼 소젖을 다 짜고 집안에 잠깐 들어왔었어.
아내는 머리가 너무너무 아프다고 머리를 쥐고 있었는데 난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까지 붉은 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어. 나는 급히 펍에 내려가 의사한테 전화를 했지. 전화를 하고 펍에서 돌아왔을 때는 아내는 바닥에 쓰러진 채 이미 죽어 있었어.
나중에 온 의사 말이 고혈압이라고 하더군.
근 40여년 동안 독신생활을 해 왔지만, 그래서 혼자 사는 것에는 익숙해 있지만 외로움만큼은 익숙해지지가 않아. 특히 명절(크리스마스)때면 나는 너무너무 외로워. 원래 명절이라는 것이 가족이 함께 모여 즐기는 것인데 내겐 함께 즐길 가족이 없거든.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가 낀 이맘때면 더구나 더 외로워지지. 나 같은 사람에겐 명절 때가 가장 싫은 법이야."
윌리의 부인은 릴리(lilly)라고 했다. 둘은 사이가 좋았었다고 한다. 윌리는 그가 릴리에게 프로포즈했던 로만스(Romance)도 내게 들려줬었다. 둘은 겨울이면 벽난로가에 앉아 늘 책을 읽고, 또 읽고 난 책 이야기를 하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고 한다.
결혼 9년 만에 릴리는 그렇게 고혈압으로 윌리 곁을 떠났고 사랑하는 부인 릴리의 죽음은 윌리에겐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윌리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결혼한 형제 중에서 태어난 조카들이 전부였다.
회색 하늘, 비바람 부는 아일랜드의 11월과 12월이오면, 먹구름 아래 갇혀 지내는 윌리네 집을 나는 더 자주 방문하였다. 윌리는 나의 말동무가 될 수 없었고 말주변 없는 나 역시 그에게 있어 적절한 말동무일 수 없었다. 더구나 내가 그를 방문할 때마다 그가 그동안 내게 수십 번도 더 들려주었던 똑같은 이야기들을 순서도 틀리지 않고 할 것이라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그를 자주 방문한 이유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워하는 그에게 얘기할 기회를 주고 싶은 한가지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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