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번호 11  등록일 : 2000-10-13 오후 2:54:08

제니퍼를 위한 노래 2
글 : 허신영 ()

모든 것들의 장소와 물건에는 사람 각자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뜻과 사연, 추억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특히 노래는 그 어떤 사람을 생각나게 하거나 그때 당시의 추억(Nostalgia)이 배어나게 한다.

앞으로 내게 있어 로비 윌리암(Robbie William)의 "Angel"이라는 노래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긴 금발머리 소녀 제니퍼를 생각나게 할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면 당연 희극을 쓸 것이나 그렇지 못함을 무척 유감으로 생각하며 그때 당시 일을 생각하니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제니퍼의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그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렇지만 내가 아는 죽음은 늘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나 한정된 것으로만 내게 다가왔었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제니퍼의 생일이 지나고 정확히 열흘 후 5월 19일 제니퍼는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제니퍼의 긴 금발머리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소식에 가슴아파했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했다

"But, Why Jennifer?"

그 다음날은 제니퍼의 시신이 교회로 옮겨졌고 제니퍼를 위한 마스(mass)가 있었다. 수백 여명이 교회에 꽉 들어차 교회 밖으로까지 줄을 이었다.

교단 맨 앞줄 제니퍼의 관을 마주하고 앉은 절딘, 카아알, 린다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비통함, 그리움, 애달픔, 서러움, 배반감, 사무침, 가슴이 찢기는 아픔이라고 말할수도 있었고 또 그렇게 표현하기는 너무도 부족한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그 무엇이었다. 난 다행이 그 무엇을 아직까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했으면 한다.

마스가 끝나고 사람들은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인사를 하느라 길게 줄지어 섰다. 내 차례가 가까워 오면서 나는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앉아서 조의를 받던 절딘은 나를 보자 일어섰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고 나는 내 다짐과는 너무도 무관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겨우 이런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Geraldine! I am so sorry. I am so sorry"

절딘 역시 이렇게 대답했다.

"I know. I know"

절딘은 눈물도 침도 말라버렸는지 작고 여린 목소리로 힘들여 말했다.

그리고 월요일은 장례식이 있었다. 시내 교회에서부터 까만 영구차를 따르는 차들은 끝이 없었다.

17번째 생일을 혼수상태 속에서 맞이하고 결국 깨어나지 못한 딸아이를 묻기 위해 새 무덤 앞에 선 절딘과 카아알은 이성을 잃지 않고 조문객의 인사를 받으며 참담하게 서있었다. 수백 여명이 참석한 그 날 장례식에서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노래 'Angel'이 틀어졌다.

우리는 깊게 파인 흙무덤 옆에 놓여있는 제니퍼의 관을 보며 침묵 속에서 그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카아알, 절딘은 모두 정장을 했고 특히 린다는 곱게 화장을 한 어린 숙녀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결코 울지 않았다. 우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포함한 조문객들이었다. 나는 또 카아알과 절딘을 번갈아 가며 안고 훌쩍거렸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저가 가고자 했으니 보내줘야지요" 카아알이 말했다.
"안녕! 주미, 우리집에 놀러 와야지?" 절딘이 주미에게 말했다. 그리고
"신영. 제니퍼 방에 스텐실 해줄 거지요?" 라고 나를 향해 덧붙였다.
"물론, 물론이고 말고요" 나는 울면서 대답했다.

세월만큼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장례식이 끝나고 수주가 지난 뒤 조심스럽게 나는 절딘의 집을 방문하였다.

절딘은 제니퍼의 방을 보여주었고 그 방은 제니퍼가 병원에 실려가던 날까지 쓰던 그대로 놓여있었다. 나는 그 방을 빈틈없이 샅샅이 눈여겨보았다. 17세의 소녀방 답게 치장되어 있었다. 잘생긴 축구 선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이것저것 시 구절이랑 포스터도 벽에 붙어 있었다. 절딘의 벨벳(Velvet)으로 만들어진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틀어 올려 포즈를 취한 제니퍼 사진도 걸려 있었다. 그 사진에 내 눈이 멈추자 절딘은 짧게 설명했다. 올해 1월 어느 날 제니퍼는 절딘의 옷을 입고 린다는 제니퍼에게 화장과 머리 치장을 시킨 다음 두통으로 누워있는 절딘의 방에 들어왔다고 한다.

"엄마! 나 어때요?"
"오! 제니퍼 정말 예쁘구나! 아빠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하지 그러니?"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었다.

던즈(Dunnes Store)에 파트 타임으로 일자리를 구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던 제니퍼의 던즈 유니폼도 벽장 고리에 걸려 있었고, 방 한쪽에는 굽 높은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 걸려있는 미남 배우 사진이 들어있는 달력은 제니퍼가 그 방을 떠났던 5월 달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주인이 없어진 방이지만 절딘은 그 방을 꾸미고 싶어했다. 제니퍼는 요즈음 이곳에서는 한창 유행인 한자가 섞인 디자인의 자기 방 침구 세트에 맞춰 벽에 한자와 동양적인 무늬를 넣고 싶어했다. 나는 진작에 해 주겠다고 제니퍼와 약속을 했지만 디자인 선택을 서로 미루다가 여태껏 못하고만 것이었다.

침대에는 제니퍼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놀던 곰인형들로 꽉 차 있었다.

"빈 침대를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인형들로 채워놓았어요."

절딘은 제니퍼의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일일이 설명도 해 주었다. 말과 찍은 사진들이 유독 많았다. 절딘은 언제나처럼 태연하게 나를 대했지만 깊게 그늘진 모습은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제니퍼의 방을 틀림없이 꾸며줄 것을 약속하고는 이런 말을 남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 집을 걸어 나왔다.

"우리 한국에 이런 말이 있어요.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요"

제니퍼가 죽은 후 절딘의 집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인 날이 없었다. 친척, 친구들의 위로 방문으로 그 집 앞에는 차들이 두세 대씩 늘 서있곤 했다. 어느 날 난 절딘의 전화를 받았고 절딘은 저녁 시간에 잠깐 들리겠다고 했다.

마스카라와 푸른색 아이 샤도우로 늘 연한 화장을 했던 절딘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눈자위는 늘 붉게 젖어 있었고 부어오른 듯해 보였다.

나는 절딘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우리는 일상의 얘기를 했다.

그러다 난 감히 이런 말을 했었다.

"절딘, 내가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오만일 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나도 경험해 봤고 그렇기에 아주 조금은 당신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다고요."

"알아요. 무슨 말인지. 신영! 그리고 지난번에 말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한국 속담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 말이 내 심정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 같아요. 난 제니퍼가 저 천국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난 그래도, 그래도 내 아기 제니퍼가 내 곁에 있어주길 원해요. 한번도 어디가 아프다고 투정했던 적이 없었을 정도의 건강한 아이였는데 왜 이런 일이 제니퍼에게 있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어요, 결코 이해할 수 없어요."

"그건 정말 아무도 이해 못할 일이에요.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 못할 일들이 너무도 많아요, 이해를 한다고 해도 가슴 아프기는 매 한가지죠"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니퍼의 무덤에 다녀올 때마다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요. 얼굴은 안 봐도 좋으니 전화라도 할 수 있다면, 편지라도 띄울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절딘!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그러게 말예요. 차라리 눈물이 메말라서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절딘! 나도 매일매일 눈물을 흘리며 보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그건 보이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속 깊게, 그리고 크게 자리잡고 있으면서 마음을 아프게 해요.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응어리는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으로 가라앉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아요. 하얀 눈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들이 내 것과 섞여 걸어왔다 어느 기점을 두고 이번에는 혼자 돌아간 흔적을 보며 난 그 응어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는 것 같은 그리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꼈어요. 그래도 난 그 흰눈이 녹지 않길 바랬지요. 눈이 녹으면 발자국도 녹아버릴 테니까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취였기에 내겐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거든요. 결국 눈과 발자국은 녹아 사라졌지만 그리움과 슬픔은 내 가슴속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제니퍼의 방은 당신에겐 흰눈 같은 존재 일거예요. 흰눈이 녹지 않고 예쁘게 보존될 수 있도록 하고싶은 절딘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의 아픈 기억을 멀게 혹은 가깝게 회상하며 홍차 잔 옆에 놓인 화장지 박스를 서로에게 건네주기에 바빴다.

며칠 전 절딘과 함께 던모어(Dunmore)로 아침 산책을 나갔었다.

조용한 아침의 던모어 마을과 바닷가는 언제나처럼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다행이지요, 신영! 던모어가 상업적인 동네로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으니까요"

"맞아요. 절딘! 정말 오락 시설 하나 없는 게 맘에 들어요. 자연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 같아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비린내나는 작은 어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점점 해가 갈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니 말이에요."

.........

.........

"신영. 드디어 제니퍼를 꿈속에서 봤어요. 워터포드 시내에서 교복을 입고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있었어요. 제니퍼는 머리를 어깨선까지 잘랐는데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난 너무 행복해요. 지금 돌아가야 하는데 다음에 또 인사하러 올게요. 약속해요 엄마. 꼭 다시 찾아올게요.> 나는 집에 함께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올 수 없다는 걸, 보내기 싫었지만 가야만 한다는 걸 꿈속에서도 잘 알고 있었지요."

린다도 제니퍼의 꿈을 꾸었다. 제니퍼는 엄마 절딘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린다! 나 어때? 멋있지? 정말 예쁘지? 난 너무 즐겁고 행복해."
"그래, 제니퍼! 정말 예뻐."

자연과 동물들을 늘 사랑했고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담겨있어 더 아름다웠던 17세의 소녀 제니퍼는 사랑이란 이런 거라고 말했다.


"Love"

Love is like a warmth which surrounds you
when you know someone c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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